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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의 수상쩍은 아이폰 기사.

한국일보가 11일 1면에 “아이폰으로 사생활 엿볼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최태원 SK텔레콤 회장에게 애플 아이폰 출시를 유보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가 삭제한지 며칠 뒤라 이 기사는 더욱 눈길을 끌었다. 정정보도를 내지 않고 기사를 삭제한 것과 관련, 논란이 제기됐지만 한국일보 이종재 편집국장은 “외부 압력은 없었고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일보는 이날 “스마트폰을 이용한 컴퓨터 해킹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아이폰을 통해 노트북이나 PC 앞에 앉아 있는 이용자의 행동, 목소리 등을 실시간 감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면서 “컴퓨터 바탕화면 등을 수시로 체크하며, 원격 제어까지 자유자재로 실행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아이폰이 남의 사생활을 훔쳐볼 수 있는 도·감청 장비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의미부여를 하기도 했다.

이 기사가 다루고 있는 사례는 사실 아이폰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애초에 시뮬레이션에 쓰인 노트북 PC가 악성 코드에 감염됐기 때문에 외부에서 이 노트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인데 그게 굳이 아이폰이라서 가능한 건 아니다. 악성코드 파일의 확장자가 AVI라서 백신 프로그램이 인식할 수 없다거나 IP 추적이 불가능해 범인을 찾을 수 없다는 등 기초적인 IT 지식도 갖추지 못한 기사였다.

물론 모바일 보안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기사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PC의 악성 코드와 관련된 것으로 아이폰이나 스마트폰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기사 마지막 부분에 아이폰으로 PC를 원격제어하는 기능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역시 아이폰의 유용한 기능이긴 하지만 애초에 윈도우즈 운영체제에 내장된 기능을 이용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일보는 이를 “아이폰을 이용한 PC·노트북 해킹 사례”라고 비틀어 설명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폰으로 해킹을 하는 게 아니라 이미 해킹된 PC나 노트북을 아이폰으로도 접근·제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트위터에서 @doax는 “아이폰이 PC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오히려 칭찬으로 볼 수도 있다”고 비꼬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댓글에서 “과일 깎는 과도가 나쁜 일에 사용됐다고 해서 과도가 문제라고 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기자의 미숙함이라고 보기에는 한국일보 편집국이 이 정도의 게이트키핑도 안 된다는 게 답답하고 안타깝다. 왜 이 기사를 굳이 1면에 끌어 올렸을까도 의문이다.

온라인 판에서는 제목이 바뀌었다. 원문은 여기. 참고 : 백신 방어·IP추적 불가능… 해킹범 못찾아.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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