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가까이 눈에 파묻힌 채로 세워뒀던 차를 동생에게 넘겼다. 필요할 때마다 번갈아 가면서 타기로 한 거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2년 전 차를 살 때 왜 하필이면 SM3를 골랐을까 싶다. 물론 잔 고장이 없는 가격 대비 성능이 훌륭한 차고 애정도 많이 남지만 늘 삼성을 비판하던 내가 삼성 차를 팔아준다는 건 어딘가 이율배반적인 일이다. 정치적 성향과 합리적 소비는 과연 별개일까.
나는 삼성의 노동 탄압과 중소기업 착취, 그리고 이건희 전 회장 일가의 온갖 불법 행위와 편법 승계,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돈이면 다 된다는 천박한 물신주의를 비판해 왔다. 물론 삼성은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명실상부한 국내 1위 기업이고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성공은 우리 사회가 부딪히고 있는 시장의 모순과 성장의 한계를 은폐하고 승자독식과 극단적인 양극화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소비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삼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은 삼성이 만든 제품을 사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나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묵살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을 생각이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온갖 꼼수를 부리는 비도덕적인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의 제품을 거부할 생각이다.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고 이 전 회장의 특별 사면을 반대하는 것만큼이나 나 혼자서라도 단호하게 삼성 불매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다소 과격한 어조로 ‘등신 꼬레안’을 비판하는 꿈틀꿈틀님의 말씀이 맞다. 국민=소비자가 무서운 줄 알게 만들어야 한다. 한동안 ‘사회책임투자(SRI)’가 진보진영의 화두가 됐지만 ‘사회책임소비(SRC)’가 더 시급하다. 착한 기업의 제품을 사주는 것도 좋지만 나쁜 기업의 제품을 외면하는 것이 더욱 강력한 효과를 갖는다. 아무리 품질과 성능이 좋아도 그 제품이 올바른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면 그 제품은 사면 안 된다.
요즘은 유행처럼 ‘착한 소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착한 소비를 넘어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비’가 필요할 때다. 코스타리카에서 건너 온 공정무역 커피를 사주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는 당장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불의를 직시하는 것이 우선이다. 코스타리카의 아동노동을 반대하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 노조 설립조차 못하는 기업에서 만든 냉장고와 세탁기와 컴퓨터를 쓴다는 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게 별개라고 생각하는가.
매순간 소비로서 우리는 투표를 하고 있는거죠.
그렇게 생각하니 함부로 아무거나 살 수 없더군요.
소비자로서 물건과 서비스를 선택할 때,
조금 비싸더라도, 튼튼하고, 공정하게 생산된 제품을 사는 것이
나는 이런 제품이 있는 사회를,
이런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