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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수는 왜 대기업 전문기자를 그만뒀나.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를 일관되게 비판해 왔던 한겨레 곽정수 기자가 대기업 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반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곽 기자는 지난해 11월 “삼성 관련 기사의 출고가 이유없이 늦어지거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자본권력을 감시 견제해야할 한겨레가 제 역할을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는 현실에 대기업 전문기자로서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곽 기자와는 스웨덴 출장도 함께 다녀온 바 있다. 존경하는 선배 기자 가운데 한 명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 광고를 한겨레가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트위터에 올렸던 날, 하루 종일 한겨레 기자들의 전화를 받았다. “사실과 다르다, 한겨레는 삼성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변명 또는 항의가 대부분이었다. 그날 오후 곽 기자도 전화를 했다. 곽 기자는 “있는 그대로 아프게 써 달라”고 했다.

한겨레 노동조합에서 발간하는 ‘한소리’에 실린 한겨레의 내부 비판은 다음과 같다. 미디어오늘 기사 참조.

1.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위장해체를 지적한 경제개혁연대 논평이 실리지 않았고.
2.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과 관련, 기사 비중이 줄어들었고.
3.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2주년 관련 기획이 없었고.
4. 경향신문이 김상봉 전남대 교수의 칼럼을 누락시켰다가 1면에 사고를 낸 사실 역시 기사화되지 않았고.
5. 광고 단가를 터무니 없이 높여서 김용철 변호사의 책 광고 게재를 거부했다. 이 광고는 결국 실리지 못했다.

참고 : “한겨레, 광고도 못 받고 기사 각도 못 세워.” (미디어오늘)

“당시는 한겨레와 삼성이 2월부터 광고를 재개하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협의하던 때였다. 광고를 안 실을 수는 없지만, 기사(2월1일치 사회면 톱에 실린 책 소개 기사) 때문에 삼성 내부에서 동요가 있어서 그 주에 싣는 건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그 다음 주에 광고를 게재할 생각을 했고, 기업단가를 제시해 시간도 벌고 가격도 적당히 받는 쪽으로 절충했다.” (한겨레 광고 담당자)

한 편집위원의 이야기도 주목된다. “삼성 관련 이슈를 다룰 땐 솔직히 마음 한 구석에서 삼성 광고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서로 말은 안 해도 다른 편집위원들도 마찬가지이지 않겠냐.” 한 편집국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편집국 데스크들은 ‘얘기되는 (삼성) 기사 발제가 없다’고 하는데, 현장에선 ‘기사 채택이 잘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 문제에 관한 한 언제부턴가 편집국에 암묵적 침묵의 분위기가 흐른다.”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경영진도, 편집국도 삼성한테 2년 간 당해왔다. 삼성이 조금 있으면 (광고) 준다, 준다 할 때마다 그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식이었다. 결과는 2년 간 광고 하나도 못 받고, 삼성에 대한 기사에 각을 세우지도 못했다.” “‘삼성 이슈’가 잇따랐지만 한겨레 지면은 이전과 달리 침착하고 드라이했다”거나 “삼성 역시 한겨레 보도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우리 경영진은 삼성 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글을 읽고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3일 칼럼에 썼던 ‘내면화된 굴종’과 ‘한국의 진보언론이 겪는 존재론적 아픔’이란 말이 생각났다. 신문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 한겨레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어느 언론사도 삼성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자본은 눈에 띄지 않게 내면화된 굴종의 형태로 언론을 잠식해 가고 있다. 한겨레 마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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