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의 굴욕이 계속되고 있다. 온갖 시대착오적 규제를 남발하다가 변화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거나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어정쩡한 상태로 침묵을 지키는 경우도 많다. 정부 부처들끼리도 손발이 맞지 않아 불협화음을 내고 있고 이미 유명무실한 제도를 끌어안고 해묵은 논리를 강요해 비웃음을 사고 있다. 정보통신강국이라는 자부심이 무색할 정도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가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거부했던 게 지난해 4월의 일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유튜브는 노골적으로 거부 입장을 밝혔고 아예 한국 계정의 동영상 업로드와 댓글 기능을 차단해 버렸다. 유튜브는 “국적을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로 바꾸면 본인 확인 없이도 모든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고 버젓이 우회 경로를 공지해 방통위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를 두고 “유튜브를 쓰려면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는데 논란이 있던 며칠 뒤 청와대가 보란 듯이 유튜브 계정을 신설해 손발이 안 맞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도대체 청와대의 국적은 어디냐를 두고 네티즌들 관심이 집중됐는데 정작 청와대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 홍보를 목적으로 개설했기 때문에 채널 설정을 한국이 아닌 ‘세계(worldwide)’로 설정했다”고 밝혀 실소를 자아냈다.

당시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유튜브의 인터넷 실명제 거부는) 우리 법 체계를 지극히 지능적으로 이용한 편법이자 탈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LG전자 등에서 만든 스마트폰에 유튜브 업로드 기능이 제한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용자들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애플 아이폰에서는 되는데 왜 국내 스마트폰에서는 안 되는가. 방통위는 다시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해 방통위가 유튜브의 편법을 묵인했던 건 유튜브가 해외 사이트인데다 국적이 우리나라가 아닐 경우 이를 차단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아이폰에서는 국적이 우리나라로 돼 있더라도 아이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버튼 몇 번이면 간단히 업로드할 수 있다. 애초에 아이폰은 세계적으로 동일한 펌웨어를 쓰기 때문에 우리나라만 특정 기능을 차단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차단하려면 아이폰도 차단해야 하는데 아이폰은 차단할 방법이 없다. 아이폰을 허용하면 다른 스마트폰도 모두 허용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허용하면 웹 접속도 허용해야 하고 결국 유튜브를 전면 허용하는 수밖에 없다. 한때 아이폰의 유튜브 업로드를 차단하는 다양한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방통위는 고심 끝에 “유튜브는 인터넷 실명제 대상이 아니다”라는 굴욕적인 결론을 내놓았다.

1년 만에 입장을 바꾸면서 내놓은 논리도 옹색하기 짝이 없다. 방통위는 “지난해는 국내에서 유튜브에 접속할 때 주소가 kr.youtube.com이었는데 현재는 www.youtube.com으로 바뀌어서 실명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버는 해외에 있고 제공하는 서비스도 같은데 단순히 접속 주소가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실명제 대상이 됐다가 안 됐다가 하는 셈이다.

방통위 조해근 팀장은 “유튜브는 해외 사이트기 때문에 제한적 본인 확인제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아이폰 뿐만 아니라 다른 스마트폰에서도 유튜브 업로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방통위는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이 국내에서 마케팅과 광고 영업을 하고 있지만 콘텐츠 운영과 모니터링 등은 미국 본사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법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방통위의 논리에 따르면 해외 인터넷 사업자들이 국내 법인을 설립하고 영업을 하더라도 서버가 해외에 있고 실질적인 운영을 해외에서 한다고 주장한다면 본인확인제를 피할 수 있게 된다. 같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지만 국내 사이트는 본인확인제를 적용해야 하고 유튜브는 안 해도 되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 업계에서는 “서버를 옮겨서 해외 망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 정도다.

방통위의 입장이 알려지자 KT는 유튜브 업로드 기능이 있는 LG전자의 안드로이드폰의 출시를 보류했다가 기능 변경 없이 출시했다. 그러나 SK텔레콤에서 출시된 모토로라 모토로이 등은 유튜브 업로드 기능이 제한돼 있어 사용자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역차별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다. 모토로이 사용자들은 펌웨어 업데이트 등을 통해 기능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남용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방통위 조해근 팀장은 “본인확인을 위해 꼭 주민등록번호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고 아이핀이나 휴대폰, 신용카드 등으로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 팀장은 “제한적 본인확인제 적용대상이 아닌 사이트들도 대부분 주민등록번호를 관행적으로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전반적인 인터넷 보안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방통위의 굴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산업진흥법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게임은 사전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구글 안드로이드마켓에서는 수천개의 게임이 심의 없이 거래되고 있다. 구글은 “세계적으로 같은 서비스를 하고 있을 뿐”이라며 사전심의를 거부하고 있다. 애플은 아예 국내 앱스토어에서는 게임 카테고리를 없애 버렸지만 많은 사용자들이 미국 앱스토어 등을 이용해 게임을 내려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식경제부가 “마이크로소프트 이외의 운영체제에서도 공인인증서 없이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자 다음날 금융위원회가 “절대 그런 일 없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도 이런 답답한 현실의 연장선에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인터넷뱅킹과 전자상거래 보안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굳이 외국 사례를 따라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한가한 해명을 내놓아 네티즌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밖에도 해묵은 규제가 기술변화와 충돌하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위치정보법에 우리나라에서 위치기반서비스를 하려면 방통위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때문에 지난해 애플 아이폰의 출시가 지연되기도 했다. 한국형 무선인터넷 플랫폼인 위피(WIPI)를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해 무선 인터넷의 발전을 지연시킨 것도 방통위의 대표적인 패착으로 꼽힌다. 최근 논란이 됐던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규제도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선거운동 기간에 인터넷 게시판 등에 실명인증을 의무화한 공직선거법 역시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지난달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실명확인을 의무화하는 것은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헌재는 “양심의 자유나 사생활 비밀의 자유의 보호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소수의 여론왜곡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손실과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적합한 조치”라고 합헌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유튜브에는 익명으로 댓글을 쓸 수 있지만 언론사 게시판에 쓸 수는 없다. 트위터에서는 실명확인을 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포털에서는 실명확인을 해야 한다.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고 애초에 규제자체가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트위터를 이용한 사전선거운동을 단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 기준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가 된 경우라도 처벌 근거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실명제 도입을 거부했다가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인터넷 신문 민중의소리 이정무 편집국장은 “그 뒤로 실명제 기능을 설치만 해놓고 실명인증을 하지 않아도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별다른 제재조치가 없다”면서 “선관위도 적극적으로 단속을 한다기 보다는 적당히 면피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벌금을 내더라도 실명제를 단호히 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관위 관계자는 “규제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은 있지만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명백한 위반 행위만 제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진보네트워크 장여경 정책실장은 “사회적 비판자나 소수자가 의견을 밝히려면 신원이 노출돼 불이익을 당할 위험성을 무릅쓰거나 의견 발표를 포기해야만 한다”면서 “이것이 표현의 자유 침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오죽하면 국경없는기자회가 최근 우리나라를 ‘인터넷 검열 감시 대상국’에 포함시켰을 정도다. 국경없는기자회는 “한국은 엄격한 법규로 인터넷 사용자들의 익명성을 위협하고 자기검열을 부추기는 등 지나치게 많은 통제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가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는 69위다. 정부가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블로거(미네르바)와 기자들(YTN 노조)을 탄압한 것을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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