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경제정의실천연합과 토지정의시민연대는 부동산 정책에서 상당한 입장 차이를 보여왔다. 경실련이 분양가 원가 공개와 상한제를 밀었다면 토지정의는 부동산 보유세 강화를 해법으로 내걸었다. 경실련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판적인 반면 토지정의가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태경 토지정의 사무처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보금자리 주택이 최근 집값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는 경실련 김헌동 단장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처장은 “지난 정부에서는 온갖 규제를 쏟아냈는데도 집값이 뛰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규제를 다 풀었는데도 집값이 떨어지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보라”면서 “이걸 두고 노 전 대통령이 잘못해서 올랐고 이 대통령이 잘해서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라고 지적했다. 이 처장은 “결과적으로 집값이 크게 오르긴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많다”고 강조했다.
– 보금자리 주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반값 아파트를 쏟아내서 집값을 끌어내릴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
“보금자리 주택이 투기 심리를 위축시켜 집값을 끌어내리는 효과도 일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결코 근본적인 해법은 될 수 없다. 지금은 집값이 주춤하는 시기라 다행이지만 집값이 뛸 때 보금자리를 쏟아냈으면 투기 광풍을 부채질 했을 게 분명하다. 보금자리 주택은 로또 당첨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부자들의 불로소득도 문제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불로소득도 문제라고 본다. 반값 아파트를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고 그래도 되나.”
– 그럼 근본적인 대책이 뭔가. 여전히 종합부동산세가 대안이라고 보나.
“종부세가 유일한 해법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분양가 상한제만으로 안 되는 것처럼 종부세만으로도 안 된다. 금융 규제도 필요하고 이와 별개로 서민들 주거권 보호도 필요하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고 핵심적인 대책이 돼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종부세가 유명무실하게 됐지만 정권이 바뀌면 다시 부활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나. 노 전 대통령 시절 집값이 사상 최대로 급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노무현이 잘못해서 집값이 올랐고 이명박이 잘해서 집값이 내렸다고 보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이분법이다.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분양원가 공개를 거부한 것을 문제 삼는데 나는 그게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분양가 부풀려져 있다는 걸 누가 몰랐나. 비싸다는 걸 알면서도 시세차익의 기대가 있으니까 몰려드는 거 아닌가. 분양원가 공개해서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 건설회사들은 내버려두고 집 가진 사람들에게 세금을 쏟아 부어 집값을 잡겠다? 애초에 한계가 있었던 거 아닐까.
“거꾸로 생각해 보자.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건설회사들 폭리구조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부동산이 가장 확실한 재테크 수단인 나라에서 억지로 분양가를 낮추면 공급을 위축시켜서 소수의 로또 당첨자를 만들 뿐이다. 불로소득을 환수하자는 건 집을 사고팔아서 이익을 남길 수 없도록 하는 동시에 토지를 보유하면서 얻는 유무형의 혜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자는 이야기다.”
– 토지정의시민연대는 너무 시장 중심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결국 정리하면 부동산은 그냥 시장에 맡겨두고 세금만 왕창 때리면 된다, 그런 이야기 아닌가.
“시장 중심적이라기보다는 수요 공급의 원리를 받아들이자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억지로 가격을 끌어내리려 하거나 거래를 제한하면 오히려 투기 심리를 부추기게 된다. 무엇보다도 부동산이 재테크 대상이 아니라는 확고한 원칙과 기준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시장에 맡겨두고 마음대로 사고팔게 하되 시세차익에 무거운 세금을 물리면 된다. 시세차익을 얻기 어렵게 되면 투기적 가수요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거품이 빠지게 된다. ”
–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으면 뭐하나. 노 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부동산 정책은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거나 오히려 더욱 후퇴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동산 철학은 확고했다고 본다. 다만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에 미숙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종부세를 강남 부자들에게만 부과할 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집 가진 사람들에게 부과했어야 했다. 종부세의 과세목적을 반영하려면 누진세가 아니라 비례세로 부과하는 게 맞다. 많은 사람들이 종부세를 오해했고 심지어 집없는 사람들까지도 종부세를 반대했다.”
– 토지임대부 건물분양을 대안으로 제시했는데 아직도 유효한가. 우리나라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비판도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값이 계속 떨어질 텐데 그런 집을 누가 사려고 하겠나.
“토지임대부 건물분양이란 토지는 공공의 소유로 하고 건물만 소유하는 방식이다. 토지 임대료는 내야겠지만 건물만 사면 되기 때문에 분양가를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집값은 감가상각에 따라 계속 떨어진다. 지은 지 10년 이상 된 집은 반의 반값에도 살 수 있다. 싸게 사서 10년, 20년 마음 편히 살라는 이야기다. 집 사느라 평생을 빚 갚는데 바칠 이유도 없고 집이 투기수단으로 변질될 우려도 없다.”
– 너무 이상적인 발상 아닌가. 누구나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을까.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래서 부동산 보유세 강화와 동시에 가야 한다. 토지를 가진 사람은 토지를 점유하는 대가로 세금을 내고 토지가 없는 사람은 건물의 감가상각만 부담하면 된다. 정부가 확고한 원칙을 확립하고 국민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부동산이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라는 신화를 깨면 굳이 부동산을 소유할 필요가 없게 된다. 불로소득을 환수해서 그걸로 무상교육이나 무상의료를 확대할 수도 있다. 국민들을 설득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 민주당에 그런 비전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 전망을 어떻게 보나.
“노무현 이후 진보진영이 아무런 구체적인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대로라면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정권 재창출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부동산 경기가 주춤한 상태지만 다시 불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득권 계급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집값을 끌어올리려고 할 것이다. 지금이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고 왜곡된 경제 구조를 바로 잡을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