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중반부터 ‘레임 덕’ 현상이 시작되는 것일까. 6·2 지방선거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역점사업들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특히 야당 출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4대강 개발사업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궤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잘 돼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 기조와 ‘강부자’들을 위한 감세와 규제완화, 복지축소 등 MB노믹스의 기본 골격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4대강 사업은 국토해양부 관할이라 지자체가 발목을 잡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지자체 차원에서 재정을 부담하거나 관리를 담당하는 사업이 많아 지자체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김두관 경남 도지사 당선자가 3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4대강 사업과 관련돼 있는 광역단체장과 환경전문가들과 잘 의논해서 정부에 강력하게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겠다”고 밝힌 것도 향후 중앙 정부와 지자체의 갈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김 당선자 외에도 안희정 충남 도지사 당선자와 이시종 충북 도지사 등도 모두 4대강 사업 전면 중단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북과 경기도를 제외한 4대강 사업의 나머지 구간을 모두 야당이 장악한 셈이다. 이들 지역의 지자체장들은 4대강 사업의 업체 선정과 관리‧감독 권한을 갖게 되는데 이들이 공사 차량에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거나 준설토를 쌓아둘 적치장 허가 등을 거부할 경우 사업의 진행 속도가 늦춰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4대강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4대강사업에서 나오는 준설토는 남산의 11배에 해당하는 5억7천만㎥에 이른다. 4대강 사업은 지난해 11월 착공에 들어가 벌써 공정률이 15%에 이른다. 준설량도 1억㎥로 19년에 걸친 새만금 사업의 토사 운반량 1억2천만㎥에 맞먹는 규모다. 특히 보 설치 공사는 30% 이상 작업이 진척된 상태인데 여름 장마철이 다가오기 이전에 대책을 세우지 않을 경우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세종시 역시 제동이 걸렸다. 안희정 충남 도지사 당선자는 당선 소감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기획한 행정복합도시는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국가백년대계 사업”이라면서 세종시 원안 추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시종 충북 도지사 당선자도 “공약대로 세종시 원안을 반드시 지켜내 무너진 도민의 자존심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4일 일부 언론에서 정운찬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청와대는 즉각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정정길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퇴한데 이어 ‘3정 시대’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지만 정 총리는 “이명박 정부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고 작지 않은 성과도 거뒀지만 실상이 아직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고 우회적으로 사퇴설을 일축했다.
감세와 규제 완화 등 MB노믹스의 근간도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올해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을 추가 인하할 계획이지만 여론의 반발을 무시하기 어렵게 됐다. 주류세와 담배세 등 이른바 죄악세 신설도 전면 백지화하거나 대폭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술과 담배 같은 서민들 기호품의 세율 인상은 굉장히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종합부동산세 폐지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에서 압도적으로 한나라당에 표가 몰리기는 했지만 강부자를 위한 정부라는 비난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부자감세’ 기조는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등도 검토됐지만 오히려 무상급식 확대 등으로 세원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상급식이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연간 2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추가 조달해야 한다.
여론을 의식해 지방선거 뒤로 미뤘던 개방형 영리 의료법인 도입을 비롯한 서비스 선진화 방안,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자격사 진입장벽 완화 등도 벽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큰 상황이다. 노동정책도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당장 7월부터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타임오프제가 도입될 예정인데다 공공기관의 임금 피크제 등도 반발이 거세다.
출구전략 시행 시기도 관심이다. 저금리의 폐해가 잇따르고 있고 이미 시중의 실질금리가 크게 치솟은 상황이라 더 늦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은데 당장 금리인상을 단행할 경우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부동산 경기가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난 가계부채도 걱정거리고 한계기업들의 연쇄 도산도 우려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최대한 출구전략을 늦추고 싶겠지만 이 같은 주먹구구식 대책이 오히려 부실을 키운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MB노믹스의 충실한 파트너였던 보수‧경제지들도 패닉에 빠졌다. 조선일보는 야당의 4대강 속도조절론과 관련, “야당 당선자들이 선거기간 중에는 현 정부와 각을 세우기 위해 반대를 했지만 막상 당선되고 나면 지역민들의 요구를 반영해 사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강천석 주필은 5일 칼럼에서 “이 정도가 됐으면 고집도 접을 때가 됐다”면서 4대강 사업의 궤도 수정을 요구하는 상반된 논조를 보이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일선 교육현장이 교육정책의 충돌로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라면서 “일선 교육 현장이 교육정책의 실험장이나 대결장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도 경제정책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이 신문은 “지방선거를 의식해 미뤄뒀던 주요 경제정책의 추진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는 3일 사설에서 “세종시는 국가적 과제인데다 입주 예정 기업들이 투자를 결정하지 못해 속을 태우는 상황이고 보면 하루 빨리 매듭을 지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제도 “경제회복을 위한 정책기조가 흔들리거나 추진력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면서 “아직 경제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경제는 다시 추락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