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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는 처음 3분간만 좋다.

(이코노미인사이트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아이패드가 매력적인 제품인 건 분명하지만 애플의 세련된 마케팅 전략 덕분에 다분히 과대평가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패드는 분명히 혁신적이지만 엄청난 기술이 필요한 물건은 아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곧 만들어 낼 계획이다. 나는 아이패드 마니아라고 자부하지만 아이패드를 둘러싼 세간의 평가가 다분히 과장되고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본다. 아이패드가 불티나게 팔릴 거라는 전망에 동의하지만 충동구매한 사람들 가운데 실망하는 사람이 상당할 거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일단 아이패드는 아이폰과 다르다. 아이폰은 결국 전화기다. 좋든 싫든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면서 100번 이상 들여다 보고 침대에 들 때도 머리맡에 두고 잔다. 누구나 한 대씩 사야 하기 때문에 이왕이면 다들 좋다고 난리법석인 아이폰을 사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할부를 끼고 사면 딱히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고 예쁘기도 하고 기능도 많고 충분히 가격 이상의 만족감을 준다.

그러나 단 10분이라도 떼어놓을 수 없는 아이폰과 달리 아이패드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그런 물건이다. 나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컴퓨터가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아이패드를 살 필요가 없다고 충고하고 싶다. 아이패드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컴퓨터 그 어느 쪽도 대체하지 못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휴대성이 떨어진다. 언제 어디서나 꺼내 쓸 수 있는 스마트폰과는 애초에 용도가 다르다.

아이패드는 거실 탁자 위에 놓아두고 쓰기 좋다. 지하철 안에서 메일을 확인하고 트위팅을 하는 정도라면 스마트폰이 훨씬 편리하다. 책상 앞에 앉아있다면 굳이 아이패드를 꺼내들기 보다는 노트북을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나 같은 경우는 집에서 늘 컴퓨터를 켜놓기 때문에 웹 서핑이나 메일 확인은 컴퓨터가 더 편리하다. 아이패드의 화면은 꽤나 넓은 편이지만 영화를 볼 때는 컴퓨터의 대형 모니터로 보는 게 더 좋다.

사실 아이패드는 처음 3분이 가장 경이롭다. 선명하고 화려한 넓은 화면이 감탄을 자아낸다. 음질도 기대 이상이다. 전자책을 펼쳐서 페이지를 몇 장 넘기는 걸 보여주면 주변의 부러운 시선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러나 그 뿐이다. 빈둥거리면서 음악을 듣거나 가끔 유튜브에 접속하고 출퇴근길에 웹 서핑과 메일을 확인하는 정도. 그러나 이런 기능은 이미 대체 가능한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딱히 아이패드가 아니면 안 된다, 그런 정도는 아니다.

아이폰은 버스를 기다린다거나 커피 물을 끓인다거나 심지어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잠깐잠깐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기에 좋다. 아이폰은 아이폰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지만 아이패드는 여러 가지 대체재가 많다. 인스턴트 메신저로 수다를 떨기에 아이패드는 불편하다. 머지않아 애플TV나 구글TV 같은 스마트TV가 쏟아져 나오면 아이패드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들을 TV로 할 수 있게 된다.

아이폰이 버스와 지하철, 약속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을 파고 들었다면 아이패드는 거실과 침대 머리맡, 빈둥거리는 한가한 주말 오후를 공략한다. 아이폰은 독보적이지만 아이패드의 영역은 제한적이고 그나마도 계속해서 도전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패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물건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대중화하고 네트워크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변종일 수도 있다.

내가 컴퓨터 게임을 즐기지 않는 따분한 사람이라서 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종이 책을 좋아하고 설렁설렁 넘겨보면서 아무렇게나 밑줄을 긋고 무엇보다도 책장에 빼곡히 쌓인 책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고리타분한 사람이라서 일지도 모른다. 게임은 그냥 심드렁하고 아이패드의 전자책은 신기하긴 하지만 종이 책을 대체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잠깐 갖고 놀다가 그냥 툭 던져 놓게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아이패드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일단은 매력적인 디자인과 세련된 마케팅 전략, 그리고 얼리어답터들과 언론의 비상한 관심이 무한 ‘뽐뿌’를 자극한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견고하고 단단한 존재감, 터치와 동시에 반응하는 효율적인 인터페이스, 무엇보다도 수십만종에 이르는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이 아이패드의 매력이다. 아이패드는 값비싼 장난감에서 생활 필수품으로 넘어가는 그 중간 단계에 있다.

나는 아이패드의 미래에 부정적이지만 인쇄물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굳이 아이패드가 아니라도 아이패드 같은 새로운 기계들이 종이의 시대를 넘겨받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나는 마우스 스크롤보다는 한 눈에 기사 전체를 들여다보고 기사의 경중을 확인할 수 있는 신문 편집 스타일이 훨씬 익숙하지만 이제 조금씩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아이패드로 또 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아이패드를 교육용 교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하듯이 한글을 익히고 구구단을 외우는 어플리케이션이 출시될지도 모른다. 침대 맡에서 아이가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줄 수도 있다. 비싸서 사주지 못했던 그림책을 절반 이하의 가격에 내려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칭얼대는 아이에게 아이패드를 던져주고 놀라고 할 수도 있다.

오늘 막 출간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을 종이 책의 절반 정도 가격에 내려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종이 책을 포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 새로운 시장은 새롭게 구축되고 있는 거대한 디지털 콘텐츠 유통 플랫폼의 일부일 뿐이다. 아이패드 뿐만 아니라 HP의 아이슬레이트 같은 태블릿 컴퓨터들, 아마존 킨들이나 국내에서 출시된 누크나 비스킷 같은 전자책 리더들이 모두 이 시장의 경쟁자들이다.

나는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7년 전부터 컴팩의 태블릿 컴퓨터를 사용해 왔는데 아이패드와는 애초에 용도가 다르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운영체제가 내장된 초기의 태블릿 컴퓨터는 키보드를 탈착하거나 뒤로 접을 수 있게 돼 있었다. 정전용량 방식의 아이패드는 손가락 터치를 인식하지만 태블릿 컴퓨터는 전자펜으로 자판을 터치하거나 직접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돼 있다.

아이패드도 흔히 태블릿 컴퓨터로 분류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애플 역시 굳이 아이패드를 컴퓨터와 구분 지으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물론이고 애플 운영체제에서 구동되던 어플리케이션을 모두 거부하고 앱스토어라는 독자적인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고수하고 있다. 아이폰도 마찬가지지만 아이패드에서는 애플이 허용하지 않는 어플리케이션을 아예 설치조차 할 수 없다.

아이패드의 혁신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바로 이 콘텐츠 생태계에서 나온다. 지금까지의 태블릿 컴퓨터는 새로운 입력장치가 달린 또 다른 컴퓨터일 뿐이었지만 아이패드는 콘텐츠 플랫폼 위에 운영체제를 덧씌운 형태다. 아이패드는 필요한 콘텐츠를 검색하고 내려 받아 소비하는데 최적화돼 있다. 기존의 컴퓨터에서도 모두 가능했던 일이지만 훨씬 직관적이고 쉽고 편리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만들어 팔았던 애플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애플의 이런 독점 시스템의 굳건히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이패드는 지금까지 출시된 태블릿 컴퓨터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제품이지만 한계도 많다. 외부 어플리케이션이나 콘텐츠를 허용하지 않고 멀티 태스킹을 지원하지 않으며 USB 포트 같은 기본적인 입출력 장치도 연결이 안 된다. 외부 키보드를 연결할 수 있지만 마우스 지원이 안 되기 때문에 업무용으로 쓰기에는 적절치 않다.

배터리 용량은 충분하지만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애플은 10시간 정도 버틸 수 있다고 실제로는 훨씬 더 빨리 닳는다. 반복 충전 회수가 1천번을 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인데 결국 수명이 5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애플은 배터리 수명이 다 할 경우 99달러를 내면 새 제품으로 교환해 준다고 밝히고 있지만 보증기한은 1년 뿐이고 이를 늘리려면 별도의 서비스 패키지를 구입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건은 역시 비용이다. 와이파이 전용 아이패드는 499달러부터 시작한다. 3G 64GB 모델은 829달러다. 한 달에 한두 권 정도 책을 읽는 사람이 아이패드로 책을 보겠다는 건 다분히 허영이고 사치다. 아이패드 마니아들은 출근길에 신문 사는 돈만 아껴도 본전을 뽑겠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지만 그러려면 신문을 1천부 이상 사봐야 한다. 1주일에 5일 출근을 한다면 얼추 5년이 걸린다.

지난 3월 모건스탠리 알파와이즈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트북을 구매할 예정인 소비자의 44%가 노트북 대신에 아이패드를 구입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조사에서는 데스크톱 컴퓨터 대신에 아이패드를 사겠다는 응답이 27%, 전자책 리더 대신에 아이패드를 사겠다는 응답이 28%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아이패드가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컴퓨터 시장을 상당부분 대체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 설문조사는 아이패드 출시 이전 시장의 기대를 과도하게 반영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아이패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컴퓨터의 시장 점유율이 줄었다는 통계는 없다. 아이패드는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컴퓨터를 대체할 수 없다. 오히려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컴퓨터, TV와 스마트폰이 아이패드를 닮아가면서 경계가 무너지고 서로의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패드는 반짝 인기를 끌고 있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어중간한 제품으로 머물 가능성이 크다. 애플의 폐쇄적인 콘텐츠 플랫폼이 아이패드의 가장 큰 경쟁력이지만 이 역시 지속가능하다고 보기 어렵다. 애플은 앱스토어를 표준으로 밀면서 태블릿 컴퓨터 시장을 송두리째 독점하고 싶겠지만 아이패드의 한계를 보완하는 태블릿 컴퓨터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애플의 아성은 계속해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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