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자.”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 그것 참 꿈같은 이야기다. 무상의료? 빨갱이들이나 하는 소리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족 가운데 큰 병 앓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 보장 비율은 이미 60%가 넘어섰다. 병원비가 100만원이 나온다면 실제로 당신이 지불해야 할 돈은 40만원이 채 안 된다는 이야기다. 무상의료는 이미 저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다.


17일 오후 4시30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공식 출범한다. 이들은 건강보험 보험료를 월 1만1천원씩 더 내면 보장률을 90%까지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90%면 거의 무상의료에 가까운 수준이다. 단돈 1만1천원으로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왜 안 하고 있었던 걸까. 벌써부터 찬반 양론이 엇갈리면서 진보진영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이들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건강보험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평균 1만1천원씩 더 내면 건강보험공단 재정이 12조원 정도 늘어난다. 이 늘어난 재정으로 입원비와 선택 진료비, MRI(자기공명영상) 촬영, 초음파 진단 등의 비급여 치료 부문을 급여 치료 부문으로 전환하고 환자들의 본인 부담금을 연간 최대 100만원으로 한정하자는 이야기다. 이 정도면 거의 무상의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보수진영에서는 무상의료가 실시되면 환자들이 툭하면 병원을 찾아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더욱 늘어날 거라고 주장한다. 진보진영에서도 왜 국민들 호주머니를 터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국고 부담을 늘리는 게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취지는 좋지만 1만1천원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진보진영의 희망사항일 뿐 정부가 이를 절대 수용하지 않을 거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오건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 정말 1만1천원만 더 내면 무상의료가 되나. 쉽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1만1천원은 평균이다. 소득 등급 20분위 가운데 하위 3분위는 감면이 되기 때문에 보험료가 늘어나지 않는다. 하위 4분위는 5천원 정도를 더 내게 되고 상위 1분위는 월 10만원 이상을 더 내게 된다. 평균적으로 1만1천원이라는 이야기다. 3인 가족이면 연간 40만원 정도가 된다.”

– 그러나 직장인들은 3만원 이상을 내야 할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럼 연간 거의 40만원 정도를 더 내야 되는데, 반발이 크지 않을까.
“집집마다 민영 보험 든 게 얼마나 되나. 월 10만원 이상 내는 사람도 많다. 만약 3만원을 더 내고 무상의료를 할 수 있면 그게 훨씬 더 이익 아닌가.”

– 평균 1만1천원으로 보장성을 90%까지 높이는 게 정말 가능한가.
“입원 환자의 경우 90%까지 보장할 수 있고 통원 치료비는 70~80%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1만1천원이 아니라 1만5천원이나 그 이상을 더 낼 수 있다면, 그런 사회적 합의만 된다면 보장성을 더 높일 수 있겠지만 일단은 병원비가 많이 드는 중증 환자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고 본다.”

– 왜 국민들 호주머니를 터느냐, 정부 재정지출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지금 건강보험 재정은 직장 가입자의 경우 가입자와 사용자가 5 대 5로 부담하고 정부가 2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정부가 내는 2를 3이나 4로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하면 정부는 들은 척도 안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만큼 더 낼 테니 정부도 이만큼 더 내라고 하면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가장 좋은 건 정부가 다 하라고 맡겨두는 거지만 지금까지 봐서 알겠지만 지지부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기 위해 1만1천원씩 더 내자는 이야기다.”

– 공짜 진료가 되면 나이롱 환자들이 늘어나고 결국 의사들만 좋은 일 시키는 것 아닐까.
“오히려 과잉 진료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본다. 지금은 건강보험 급여 항목과 비급여 항목이 나눠져 있는데 의사들 입장에서는 나중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평가를 받아야 하는 급여 항목보다는 비급여 항목이 편하다.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공단이 지원하지 않는 환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항목을 말한다. 이를 테면 CT(컴퓨터 단층) 촬영은 급여 항목인데 MRI 촬영은 비급여 항목이다. 의사들은 당연히 MRI를 선호하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MRI 촬영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 만약 건강보험의 재정이 늘어나고 MRI가 급여 항목으로 포함되면 이 역시 심사평가를 받아야 한다. 과잉진료가 어느 정도 제한되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본다. 행위별 수가제 때문데 근원적 통제는 불가능하겠지만 사후적으로 강력한 규제를 할 수 있게 된다. 영리 영역에 있던 의료행위가 공공의 영역으로 완전히 흡수돼 가입자들이 통제권을 갖게 되는 셈이다.”

–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것인가가 관건이 되겠다.
“사실 1만1천원은 시작일 뿐이다. 국민들은 단돈 1만1천원으로 무상의료가 구현되는 걸 보고 복지 시스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될 것이고 향후 이런 시스템이 사회 전반의 다른 영역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단돈 1만1천원을 더 내지만 실제로 받는 혜택은 훨씬 더 크다. 당장 재벌 계열 보험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민영보험 시장이 송두리째 무너질 것이고 그들의 폭리는 다시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무엇보다도 ‘능력에 따라 차등으로 비용을 내고 필요한 만큼 서비스를 받는다’는 윈칙이 실현되고 사회적 연대의 성과를 체험하고 나면 향후 아동수당과 임대주택, 무상보육 등의 실험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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