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에 영화를 3.15편 정도 본다. 영화산업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관 관객 수는 1억5980만명, 2008년보다 4.0% 늘어난 규모지만 2007년 1억5877만명에는 못 미친다. 업계에서는 영화산업도 이미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해 입장권 가격이 한 차례 오른 덕분에 영화관 흥행 수입이 사상 최초로 1조원을 넘어섰지만 영화산업의 수익구조는 매우 취약한 상태다.

일단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 관객 수는 4년째 1억5천만명 수준에 머물러 있고 지난해에는 통계 집계 이래 최초로 스크린 수가 줄어들기도 했다. 2001년과 비교하면 관객 수는 75% 늘어났는데 스크린 수는 163%나 늘어났다.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이른바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업계 전반이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고 있다. 멀티플렉스가 더 들어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관람 행태가 크게 바뀌지 않는 이상 1년에 영화 관람 회수가 평균 3편 이상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한계를 넘어 포화상태에 들어선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올해 들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4월과 5월 관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4.8%나 줄어들었다. 두드러진 흥행 영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조적인 변화라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도 큰 걱정거리는 불법 다운로드가 확산되면서 영화 산업을 떠받치고 있던 부가 판권시장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는데 있다. VHS 비디오 테이프는 물론이고 DVD 대여 등 홈 비디오 시장은 이미 사양산업에 접어든지 오래다. 2000년 기준으로 8천억원 규모의 홈 비디오 시장은 지난해 4분의 1 이하로 급격히 위축됐고 4만개에 육박했던 DVD 대여점은 20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

영진위 조사에 따르면 DVD 대여점은 2008년 2300개에서 지난해에는 1962개로 줄어들어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DVD 대여 건수는 지난해에만 50% 가까이 급감했다. 대부분 도서 대여점 형태로 전업을 한 상태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DVD 직접 판매건수도 20~2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비디오방은 1300개에서 487개로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제작자들은 전적으로 영화관 관객 수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작품성과 무관하게 일단 관객을 끌어 모으면 돈을 벌고 그렇지 못하면 적자를 내는 기형적인 구조다. 전체 영화산업에서 영화관 입장료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웃도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인도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은 영화관 입장료 수입이 20% 정도, 나머지는 일본도 40% 정도밖에 안 된다.

이 때문에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는 무리해서라도 개봉관을 많이 잡을 수밖에 없고 이른바 블록 버스터 영화들이 스크린을 독식하는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된다. 10개 안팎의 영화들이 전국의 영화관에 동시에 걸리기 때문에 관객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선택권도 줄어들게 된다. ‘롱테일’이 아닌 전형적인 ‘숏테일’ 현상인 셈이다. 영화 배급사와 영화관의 불공정 거래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이 모든 변화의 주범은 이른바 웹하드 서비스라고 불리는 인터넷 파일 공유 사이트들이었다. 이들 사이트에서는 최신 개봉영화를 150원이면 받아볼 수 있다. 영화관 입장권의 60분의 1 가격인 셈인에 이 150원은 이 웹하드 업체와 이 콘텐츠를 무단 도용해서 업로드한 사람이 나눠 갖게 된다. 저작권보호센터는 이 같은 불법 다운로드 시장이 2007년까지만 해도 6천억원 규모로 불어났다가 최근 절반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나마 합법 다운로드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 희망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영진위는 합법적인 온라인 영화 시장이 2008년 150억원에서 지난해에는 300억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불법 다운로드는 영화 한 편에 150원 밖에 안 하지만 갈수록 더 깊숙하고 음침한 어둠의 경로로 숨어들고 있다. 반면 합법 다운로드는 2천~3천원 정도, 약간 부담스러운 수준이지만 검색만 하면 바로 찾을 수 있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내려받아 볼 수 있다.

불법의 온상이었던 웹하드 업체들도 합법 콘텐츠를 늘려가는 추세라 이 시장은 한동안 가파른 성장 추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맥락에서 웹하드가 IPTV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웹하드는 직접 파일을 PC에 저장하는 반면 IPTV는 스트리밍 방식이다. 물론 PC로 보는 것과 TV로 보는 것의 차이가 있겠지만 PC와 TV의 경계가 사라지는 추세라는 걸 감안하면 IPTV 역시 웹하드 서비스와 결합한 형태로 갈 가능성이 크다.

뉴미디어 분야에서는 이미 혁신적인 실험이 진행 중이다. 홈초이스라는 회사는 케이블 사업자들과 제휴를 맺고 주문형 비디오 형태로 최신 개봉 영화를 서비스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관에서 종영한 뒤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하기까지의 ‘홀드백’ 기간이 1~2주 정도로 단축되는 추세다. 향후 쌍방향 디지털 방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주문형 비디오 시스템도 보편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곰TV나 판도라TV 같은 인터넷 방송도 새로운 콘텐츠 유통 창구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 사이트들은 이미 케이블 채널은 물론이고 지상파 채널과도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드라마와 쇼·오락 프로그램 등의 콘텐츠 재전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트리밍 방식의 영화 서비스 매출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포털 사이트들도 뒤늦게 이 시장에 합류했다. 네이버와 다음 등에서도 2천~3500원 수준이면 영화 한 편을 내려 받을 수 있다.

합법 다운로드? 방송사들은 여전히 불만.
과금 누락 만연, 웹하드 업체에 면죄부 될 수도.

합법적인 다운로드가 늘어난다고 하지만 방송사들은 여전히 불만이 많다. 한동안 불법 복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영화 제작사나 배급사들은 그거라도 어디냐는 분위기인데 향후 과금 체계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저작권보호센터의 실태조사 결과 온라인 불법 콘텐츠의 90% 이상이 웹하드 서비스에서 적발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불법 콘텐츠는 17억8천만건으로 전체 23억9천만건의 74.3%에 이른다.

SBS콘텐츠허브 이도구 과장에 따르면 국내 웹하드 서비스 업체는 332개에 이르는데 이들 가운데 90여개 업체가 합법적인 다운로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들 웹하드 업체들은 여전히 수많은 불법 콘텐츠를 유통하고 있지만 저작권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특정 제목으로 검색할 경우 불법 콘텐츠를 차단하거나 합법적인 유료 콘텐츠가 뜨도록 하는 이른바 필터링 솔루션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웹하드 업체에서 파일 이름을 바꿔서 올리고 목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필터링 솔루션을 우회하는 사용자들이 넘쳐나지만 제대로 된 단속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웹하드 업체 입장에서도 굳이 불법 다운로드를 전면 차단할 의지는 없다. 합법 다운로드 시장이 훨씬 작기 때문이다. 불법 콘텐츠를 대량으로 업로드하는 ‘헤비 업로더’는 월 수입이 수천만원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지난달 1일 저작권 포럼에서는 “웹하드 업체 저작권 문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강도 높은 문제제기가 쏟아졌다. 이 과장에 따르면 SBS콘텐츠허브가 지난 3월 웹하드 업체들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과금 누락이 61%, 정산 누락이 5%, 미계약 저작물 유통이 35%로 나타났다. 이 과장은 “저작권 침해에 따른 법률적 리스크를 회피한 뒤 과금 누락과 정산 누락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불법적인 수익을 보장받도록 하는 면죄부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 위원회 김혜창 팀장은 “저작권 보호 장치가 너무 허술하다”고 지적한다. 법적인 절차가 까다롭고 소송 비용과 기간도 부담스럽고 정작 과태료가 터무니없이 낮아 범죄를 억제할 정도가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에도 3만3644건의 시정 권고가 있었지만 이 가운데 단순 경고가 1만2612건이었고 삭제 또는 전송 중단이 2만995건, 계정 정지는 37건 밖에 없었다. 불법 콘텐츠의 유통 규모에 비교해 모니터링 역량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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