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고 대란은 없었다. 언론의 반성도 없었다. 지난해 7월, 정부와 여당이 비정규직법 개정에 실패하면서 계약기간 2년이 만료되는 기간제 근로자가 무더기로 해고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출처는 다름 아닌 노동부였다. 노동부는 “1년 동안 최대 75만8천명이 해고될 것”이라면서 비정규직법 개정 실패의 책임을 노동계에 떠넘겼다. 보수·경제지들도 해고 대란을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끔찍한 전망을 쏟아냈다.


그리고 1년 뒤인 지난 14일 노동부는 “비정규직 해고 대란은 없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전국 9519개 사업장을 조사한 결과, 4월 말 기준으로 사용기간 2년이 만료된 기간제 노동자는 8847명이며, 이 가운데 해고는 16.2%(1433명), 정규직 전환은 16.9%(1494명), 계속 고용은 66.9%(5918명)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을 2년 이상 고용하면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83.8%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셈이다.

노동부는 해고 대란을 잘못 예측한 것과 관련, “시장 상황을 제대로 못 읽었다”면서 “비정규직 실태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객관적 통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무책임한 해명을 내놓았다. 만약 정부와 여당의 주장을 따라 비정규직법을 개정해서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2년 이상으로 연장했다면 지난 1년 동안 정규직으로 전환된 83.8%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아직까지 비정규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단순히 해명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노동부의 발표를 입맛대로 해석하면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 온 언론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부 언론은 반성은커녕 여전히 통계를 왜곡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66.9%의 ‘계속 고용’은 근속기간이 2년이 넘었지만 해고도 되지 않고 실질적인 정규직 전환도 없이 계속 일하는 상태를 말한다”면서 “법적으로는 정규직 전환자로 간주되지만 정규직 혜택이 거의 없는 ‘무늬만 정규직’인 셈”이라고 정규직 전환 효과를 평가 절하했다.

‘무늬만 정규직’이라는 물타기는 지난해부터 보수·경제지들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이들을 정규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비정규직법의 효과를 평가절하하는 교묘한 말 장난인 셈이다. “대량 해고는 없었지만 정규직 전환도 안 됐다”는 이런 뒤틀린 논리가 실질적인 정규직 전환을 꺼리는 사용자들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도 있다. 무늬만 정규직이 아닌 제대로 된 처우를 받는 실질적인 정규직이 되도록 압박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가 아닐까.

민주노총은 논평을 내고 “10년만에 처음으로 비정규직 규모가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과거 비정규직 해고 대란설을 유포하며 비정규직법 개악을 시도했던 노동부의 사기를 거듭 폭로해준다”면서 “이에 만족하기 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대책으로 기간제 노동자의 불법남용 자체를 막는 법과 더불어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을 촉진하거나 강제하는 법 등의 제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비정규직 규모가 일부 감소추세에 있지만 이는 통계적 착시일 뿐 간접고용 형태의 파견이나 초단시간 시간제근로가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노총은 “이는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의지는 없고 편법대응으로 일관했다는 것을 말해준다”면서 “간접고용 확대 등 모든 고용 유연화를 중단하고 비정규직 축소를 위한 법을 마련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올바른 고용정책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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