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7.6%, 10년 만에 최고 기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공약으로 내걸었던 747 공약이 실현되는 것일까. 한국은행은 지난달 27일 경제지표를 발표하면서 “우리 경제가 예상보다 강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어 금융위기 이전의 정상 수준 회복에서 나아가 어쩌면 확장 국면에 진입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도 기업들 수출이 호황이다. 올해 2분기 재화수출은 7.1% 늘어났다. 수출의 성장기여도도 0.1%포인트를 기록해 지난해 2분기 이후 지속되던 마이너스 행진을 끝냈다. 민간소비와 민간고정투자, 재고를 더한 민간부문의 성장기여도는 지난해 4분기 1.2%포인트에서 올해 1분기 1.1%포인트, 2분기 2.2%포인트로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분기 취업자는 2417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만3천명이 늘어 2004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5월 설비투자지수도 126.2로 지난해 5월 103.2에서 22.1%포인트나 올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분기 상용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241만6천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2% 늘어났다. 실질 임금이 늘어난 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분기 만에 처음이다.
설비투자도 늘고 수출도 잘 되고 취업자 수도 늘고 임금도 올랐다. 반면 물가상승률은 2.7%로 안정돼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촉발한 금융위기를 가장 빠른 속도로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경제지표만 보면 이보다 좋을 수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 정작 국민들은 좀처럼 경기회복을 체감하기 어렵다. 이유가 뭘까.
우선 상반기 경제성장률 7.6%는 지난해 경기가 급격히 위축된 탓에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는 이른바 기저효과가 크다. 2008년 2.2%에 지난해 0.2%, 올해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5.8% 성장목표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3년 평균을 내면 3%에도 못 미친다. 올해 2분기 기준으로 이제 겨우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한 정도다.
기업들 수출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내수는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수출업종의 성장률은 17.3%인 반면 내수업종의 성장률은 4.3%에 그쳤다. 올해 1∼5월 수출은 1798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5.6% 늘어났는데 상반기 민간소비는 5.0% 수준에 그쳤다. 취업자 비중은 수출업종이 16.7%, 내수업종이 83.3%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의 매출액 세전 순이익률은 2008년 3.3%에서 지난해 5.9%로 크게 늘어났는데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2.7%에서 2.0%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2분기 기준으로 대기업의 제조업 생산지수는 150.5를 기록했지만 중소기업은 124.5에 그쳤다.
고용 통계에도 허수가 섞여 있다. 통계청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주 36시간 미만 근로자가 320만3천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13.2%를 차지한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늘어난 일자리 가운데 33.4%는 35시간 미만 단기간 일자리였다. 실업률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구직 단념자도 22만9천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7만8천명 늘어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도 가속화하고 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2008년 3월 60.5%에서 올해 3월 54.7%로 낮아졌다. 소득 상위 10% 소득 대비 전체 평균 소득의 비율은 2003년 2.57배에서 올해는 2.72배까지 늘어났다.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도시가구 기준으로 지난 2003년 0.270에서 지난해 0.294로 뛰어올랐다.
김명록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보다 충격은 적었던 건 그나마 중국이 버텨줬기 때문”이라면서 “만약 미국이 더블딥에 돌입하고 중국의 경기 둔화가 시작되면 우리 경제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20.53%로 대미 무역의존도 9.71%의 두 배가 넘는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도 비슷한 의견이다. 하 교수는 “화려한 경제지표 이면의 구조적인 한계 요인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우리 경제는 수출 대기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데다 기업의 이익이 경제 전반으로 환류되고 내수가 기업을 뒷받침하는 선순환 구조가 끊겨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더 늦기 전에 부동산 시장 거품을 꺼뜨려 가계 부채를 해결하고 경제 전반의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정부가 최근 들어 부쩍 ‘친 서민’과 ‘친 중소기업’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기득권을 해체하고 양극화를 해소할 적극적인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기업은 현금을 쌓아두고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고 가계는 빚더미에 깔려 부동산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라면서 “기업들 이익이 늘어나면서 경제지표는 개선되겠지만 이런 시스템은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홍 소장은 “지금 세계적인 화두는 재정 안정성”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재정이 안정적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중국 경제가 둔화되고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부자감세와 복지축소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재정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대기업 수출에 의존하는 성장 모델은 한계가 분명하다”면서 “양극화가 성장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연구원은 “경제지표가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지표가 실물경제를 완벽하게 반영할 수는 없으며 그나마도 대부분 기저효과와 착시현상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연구원은 “수출도 잘 되고 기업들 이익도 늘어나는데 성장이 정체돼 있다는 건 그만큼 편중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홍 연구원은 “선진국들이 공공부문과 복지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것도 내수 시장을 키우고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국가 차원의 성장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양극화 해소와 내수 활성화라는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질적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화려한 경제지표가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 통계적 착시거나 구조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꺼지기 직전의 백열전구가 가장 밝은 것처럼 2010년 한국 경제는 절체절명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