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 부위원장의 권력 승계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남쪽에서는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10월 1일 공식 취임한다. 마침 시기가 비슷하기도 하지만 3세 구도라는 측면에서 김정은 부위원장과 구본준 부회장의 취임은 비교할만한 대목이 많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LG의 고뇌, 창업자의 손자가 LG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남한과 북한의 기묘한 권력 승계를 비꼰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LG를 회복시키는 일은 북한을 회생시키는 것만큼 힘든 작업이 아니지만 둘 다 최고 권력승계라는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코노미스트는 구 부회장을 겨냥해 “바보는 아니지만(Mr Koo is no fool) 참신한 인재라고 볼 수도 없다(hardly a breath of fresh air)”라고 비판했다. 또 “노키아는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핀란드인 경영진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스티븐 엘롭을 사장으로 영입한는데 LG는 결국 재벌 창업주의 손자를 선택했다”고 비꼬았다.
이 같은 비판은 LG 입장에서는 최근의 실적 부진과 맞물려 더욱 뼈아프다. 한화증권에 따르면 LG전자의 3분기 매출액은 2분기 대비 5.7% 줄어든 13조6000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영업이익은 1600억원 이상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화증권은 4분기에도 영업적자를 예상하고 있는데 다른 증권사들 예측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해외 언론이 이처럼 냉소적인 시각을 보이는 것과 달리 국내 언론에서는 비판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배경에는 LG그룹이 삼성그룹에 이어 국내 최대 광고주라는 사실도 무관하지 않다. 심지어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같은 신문들조차도 LG의 3세 구도에 대해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LG는 LG전자의 휴대전화나 가전제품 사업 부문은 물론이고 LG유플러스(옛 LG텔레콤)의 통신 사업 부문 등 어느 한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5%에 그쳤고 전략 상품인 옵티머스 원에 대한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LCD 판매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만년 3위인 LG유플러스의 입지도 계속 좁아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LG전자가 1000만대 판매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옵티머스 원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경쟁 제품은 강력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고 대만기업인 HTC의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면서 “(옛 LG 상호인 럭키금성에 빗대어) 구 부회장이 LG에 행운(lucky)을 가져다준다면 그는 최고상(gold star)을 받을 만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내 언론 보도 가운데 구 부회장의 3세 구도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경제지들은 구 부회장의 현장 경영 운운하면서 앞 다퉈 낯 뜨거운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머니투데이 등은 오히려 이코노미스트가 구 부회장을 폄훼했다면서 구 부회장을 두둔하기도 했다.
아시아경제는 “강한 리더십 오너 경영 장점 살려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구 부회장의 LG전자 사령탑 선임은 그동안 LG전자의 단점을 상당부분 보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전자신문도 “이른바 공격경영이라는 구 부회장 특유의 스타일상 큰 변화가 예상된다”고 높이 평가했다.
한국경제는 “그룹 최고의 전자 전문가”, “샤프한 외모, 서민적인 입맛” 등의 부제목을 내걸고 거의 LG 사보 수준의 기사를 쏟아냈다. 이 신문은 “구 부회장은 중국과 서양 역사, 문화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췄다”면서 “직원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고 “강한 카리스마와 세심한 배려를 겸비한 보스 기질 덕분에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구본준 부회장이 카리스마가 강한 리더십의 소유자인 만큼 LG전자의 개혁 작업을 본격화하는 데 오래 시간을 끌진 않을 것”이라며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진용을 재정비해 새 출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구 부회장의 자질에 대한 냉정한 평가나 후계 구도의 정당성 논란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