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14일 “외환은행 매각 당시 외환은행에 대규모 자본확충 필요성이 있었는지, 론스타와의 협상 절차나 매각 가격이 적정했는지 등에 대해 변씨에게 임무위배 행위가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옳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상당수 언론이 변씨의 무죄 사실을 보도하면서 외환은행 헐값 매각이 합법적이라고 인정받은 것처럼 해석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일부 언론은 법원이 변씨에게 면죄부를 준 것을 계기로 공직자의 행정적 판단을 단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늘어놓고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검찰은 이번 판결을 ‘포퓰리즘 수사’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합리적 증거와 의심을 소홀히 한 채 외국 자본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대 수사를 벌였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도 사설에서 “공직자들의 행정적 판단을 사법적 잣대로 옭아매려는 잘못된 관행이 더 이상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단 변씨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것과 외환은행 헐값 매각이 합법인지 여부는 전혀 별개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과 관련한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고 특히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 즉 산업자본인 것으로 확인될 경우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원인 무효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변씨 등의 책임 여부를 두고 다시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남아있는 핵심 쟁점은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여부다. 론스타는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 규정, “부실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된다는 판단에 따라 외환은행을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만약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면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고 따라서 외환은행 인수가 원인 무효가 된다.
은행법에 따르면 산업자본은 금융기관의 지분을 4% 이상 보유할 수 없거나 4% 초과지분에 대해 의결권이 제한된다. 산업자본이 아닐 경우에는 10%까지 보유할 수 있고 예외조항에 따라 초과보유와 의결권 행사도 가능하지만 산업자본은 이에 해당사항이 없다. 그런데 금융감독위원회는 이 예외조항을 적용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했다.
산업자본이란 비금융회사의 자본총액이 전체 자본총액의 25% 이상이거나, 또는 동일인 중 비금융회사의 자산총액이 2조원을 초과하는 경우를 말한다. 론스타의 지분 구조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론스타펀드 4호가 보유한 비금융회사 자산이 7천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나머지 5개 펀드의 자산을 더할 경우 2조원을 훌쩍 넘을 가능성이 크다.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를 가리는 재판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산업자본으로 판명난 바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지만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만약 론스타가 산업자본으로 판정나면 외환은행 보유 지분 51.02% 가운데 9% 초과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제한되고 이 초과 지분에 대해 매각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김준환 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운동본부 사무처장은 “비금융회사 자산이 2조원이 넘으면 산업자본으로 분류되는데 론스타 홈페이지에 나온 것만 따져 봐도 13조원이 넘는다”면서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외환은행 매각은 원인 무효가 되고 론스타는 원금에 이자만 받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도 이날 성명을 내고 “변씨 등은 외환은행을 부실은행으로 만들기 위해 잠재부실을 과장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했고 불법로비와 회계조작 등의 불법을 저질렀다”면서 “이를 두고 담당 공무원의 선의의 정책판단이라고 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없다고 우기는 억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