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적인 통화절하를 자제하기로 합의한 G20 경주회의 이후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서 벌써부터 일본과 캐나다 등이 환율 개입을 시사하고 나서는 등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G20 경주회의의 최대 수혜자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다시 환율전쟁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재무상은 26일 “필요할 경우 시장에서 단호하게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환율 개입을 시사했다. 일본 입장에서는 엔화 가치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강제력 없는 G20 경주회의 합의를 계속 따를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일본 뿐만 아니라 캐나다와 유럽연합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마크 캐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외환시장 긴장이 커지고 있어 이 같은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선택적 대안들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은 “경상수지 상한을 두고 제재를 가하는 안은 독일의 수출 경쟁력에 대한 벌칙이나 마찬가지”라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밖에도 브라질 재무장관이 경주회의에 불참한 것을 두고 균열이 확산되는 조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제티 악타르 아지즈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총재도 “환율이 급격하게 변할 경우 개입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프라납 무커지 인도 재무장관도 “경상수지를 조정하는 가이드라인은 글로벌 경제의 정상적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장국인 우리나라 역시 답답한 상황이기는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환율전쟁이 확산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계속 추락하고 있는데 다른 나라들의 환율개입을 만류해야 하는 입장에서 섣불리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출 시장에서 엔화 강세의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지만 한동안 수출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KTB투자증권 정용택 연구원은 “환율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자청한 의장국 입장에서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정한다거나 규제하는 국가라는 인식을 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위한 정부의 운신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고 조치가 취해진다고 하더라도 G20 정상회의 이후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투자증권 유익선 연구원은 “향후 환율문제 논의는 자국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흥국의 경우 자국통화의 강세는 용인하면서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점진적으로 축소되는 방향을 추구하되 해외 자본 유입이 확대되는 것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통화강세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근본적으로 과도한 수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3.4%로 G20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2위인 독일은 33.6% 밖에 안 된다. 멕시코가 26.2%, 중국이 24.5%씩이다. 미국과 일본은 7.5%와 11.4%다.
IMF 외환위기 이후 높은 환율과 가격 경쟁력으로 수출 주도 경제 성장을 이뤄왔지만 대외적인 충격에 취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정 부분 원화가치 상승을 용인하고 내수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계속됐지만 이명박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명분으로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을 고수해 왔다.
결국 G20 정상회의는 우리나라에 양날의 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의장국이라는 명분만 얻었을 뿐 별다른 실속은 챙기지 못했고 치열한 환율전쟁의 와중에 미국과 중국의 들러리를 서는데 그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양보를 해야 할 미국은 거의 아무 것도 내놓지 않고 있고 참가국들 불만도 거센데 우리나라만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