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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더 죽어야 하나.

KEC 구미공장 노동자 200여명은 직장폐쇄에 맞서 지난 21일부터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여왔다. 30일 저녁 금속노조 구미지부 김준일 지부장이 경찰에 강제 연행되는 과정에서 몸에 시너를 끼얹고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 지부장은 온 몸에 심한 화상을 입고 31일 새벽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됐다. 김 지부장은 생명에는 지장은 없는 상태지만 얼굴에 3도 화상을 입고 기도에도 심한 손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김 지부장이 30일 저녁 노사협상을 마치고 농성장으로 복귀하는 도중 경찰이 연행을 시도해 화장실로 도피했으나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고 하자 김 지부장이 몸에 불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협상이 진행 중일 때 경찰이 노조 지도부의 신분 보장을 해 왔던 관례에 비춰 보면 이번 사태는 경찰의 무리한 연행 시도가 원인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지난해 쌍용자동차 파업 때도 경찰은 노사협상은 보장했다.

KEC는 지난 6월부터 타임오프 도입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회사 쪽에서 노조 전임자 5명을 3명으로 줄이겠다고 통보했으나 노조에서 이를 거부하자 경영진이 지난 6월30일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노조는 직장폐쇄 공고가 없었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은 팩스로 공문을 접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노조는 타임오프 수용의사를 밝혔는데도 직장폐쇄가 풀리지 않자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한편 이날 협상이 회사 쪽 교섭대표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 김 지부장 등을 농성장에서 끌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회사 쪽이 4개월 가까이 교섭에 응하지 않다가 지난 28일 처음으로 교섭을 시작한 상황이라 향후 노동계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음식물 반입도 허용하지 않아 농성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강제해산을 선포했을 때부터 이미 충돌은 예견돼 있었다. KEC 사태는 용산 참사와 쌍용차 파업을 연상케 한다. 이미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을 계속해서 몰아붙이면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다. KEC 노조는 이미 타임오프 수용 의사를 밝힌 바 있고 농성자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다. 노사협상을 이제 막 시작한 상태에서 경찰이 무리하게 강제연행을 시도한 건 명백한 과잉진압이었다.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2000일 가까이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은 농성장 철거에 나선 굴삭기에 올라 내려오지 않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하청회사 동희오토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들도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100일 이상 노숙 농성을 펼치고 있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노숙 투쟁도 1천일이 넘었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이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KEC와 기륭전자, 동희오토, 재능교육, 그리고 이 땅의 수많은 대기업 하청업체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하면서 문자 메시지 하나로 잘려 나가는 파리 목숨으로 살고 있다. 이들은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노사교섭의 권리, 파업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도 모자라 공장을 점거하고 굴삭기 위에 올라갈까. 오죽하면 자신의 몸에 시너를 끼얹고 불을 붙일까.

올해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 40주기다. 평화시장 봉제공장 노동자였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분신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땅의 많은 노동자들은 삶과 죽음의 극단적인 경계에 내몰려 있다. 근로기준법은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며 권력은 자본의 편에 서서 갈 곳 없는 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전태일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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