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www.wikileaks.org)라는 이름의 웹 사이트가 이름을 알린 건 지난 4월 미국 군대의 아파치 헬리콥터가 로이터 사진기자 등을 무참히 사살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면서부터였다. 2007년 7월에 찍힌 이 동영상에는 헬리콥터 조종사들의 대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들은 누르 엘딘 기자가 둘러 맨 카메라를 무기로 착각해 사격 요청을 했고 명령이 떨어지자 총알을 쏟아 부었다. 트럭이 다가오자 미사일을 쏘기도 했다.


이들은 마치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처럼 “죽어 나자빠진 놈들 좀 봐라”, “나이스”라고 외치기도 했다. 트럭에 어린이들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자 “전쟁통에 왜 애들을 끌고 오는 거냐”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오인 사격이었지만 이 동영상은 이라크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위키리크스는 익명의 내부 고발자에게 이 동영상을 제공받아 공개했다. 사고 이후 2년 9개월 만이었다.

위키리크스는 고발·폭로 전문 소셜 미디어다. 협업 문서 작업에 쓰이는 위키 기반의 사이트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 비슷한 구조다. 익명의 제보를 받아 정보를 수집하되 이미 공개된 내용이나 단순한 소문은 다루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자체적인 검증 시스템을 통과한 소식만을 사이트에 올린다. 무차별 고발·폭로가 아니라 철저하게 사전 확인을 거친다는 이야기다.

위키리크스는 취재원과 제보자 보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웨덴과 아이슬란드 등 취재원 보호가 법적으로 보장된 나라에 서버를 두고 해킹과 개인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최첨단 보안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키리크스의 창업자는 줄리안 어샌지 역시 한때 잘 나가는 해커 출신이다. 상근 직원은 5명 뿐이지만 위키리크스를 돕는 자원봉사자만 800여명, 후원금도 세계 전역에서 답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키리크스가 지난 6월 공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밀문서는 사상 최대의 기밀 유출이라고 할 만하다. ‘카불 전쟁일지(war diary)’라는 이름이 붙은 9만여건의 이 방대한 기록에는 작전과 총격, 폭발, 범죄 등 그야말로 아프간 전쟁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민간인 사망자가 최소 195명에 이른다는 사실도 이 문서로 처음 드러났다. 사망자 가운데는 어린이와 여성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위키리크스는 미국의 뉴욕타임즈와 영국의 가디언, 독일의 슈피겔 등에 이 문서를 사전 공개했는데 새로운 사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이 아프간 반군, 탈레반에게 미사일을 판매했다는 기록도 나왔고 파키스탄이 미국에서 지원금을 받아 탈레반을 지원하는 이중플레이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 폴란드 군인들이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던 마을에 박격포 공격을 퍼부은 사실도 공개됐다.

탈레반 요인을 체포·암살하기 위한 특수부대, 태스크포스 373의 현황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들은 2천명 이상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재판도 없이 탈레반 요인들을 체포 또는 사살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어샌지는 문건 공개 직후 영국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새롭게 이해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미화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고 싶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발칵 뒤집힌 건 당연한 결과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충격적인 일”이라면서 “아프간 주둔 미군을 위험에 빠뜨리고 군의 기밀 유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군대를 추가 파견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조기에 끝낼 생각이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입지도 좁아졌다. 미국 국방부는 즉각 유출자 색출에 나섰고 어샌지에 대해서는 체포 영장이 떨어졌다.

어샌지의 나이는 올해 39세,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지만 머리는 백발, 신비한 외모의 청년이다. 어샌지는 아프가니스탄 문서 폭로 이후 영국과 독일, 스웨덴 등을 옮겨 다니면서 한 곳에서 이틀 이상 머물지 않는 등 신출귀몰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월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수천여 건의 문건을 더 갖고 있다”고 추가 폭로를 시사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가 어샌지의 체포를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센지는 위키리크스의 소개 글에서 미국 대법원 판례를 인용, “오직 자유로운 언론만이 정부의 비리를 효과적으로 폭로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자유로운 언론의 책임 가운데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국민을 타지에서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게 하거나, 테러 및 폭격에 의해 상해를 입게 하는 등 그 어떤 것이라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어센지는 “자유와 정의가 결핍된 곳에서는 윤리적으로 무장된 시민의 저항이 불가피하다”면서 “우리는 모든 독재정권과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기관 및 비윤리적인 기업들에게 있어 단순히 국제적 외교관계, 선거, 정보의 자유에 대한 제재뿐 아니라 보다 강력한 수단을 통한 압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한 정부나 기관들 내부에 존재하는 개개인의 양심과 윤리관에 의해 가능할 것”이라는 게 위키리크스의 기본 철학이다.

위키리크스는 이라크 전쟁 관련 기밀문서도 확보하고 있는데 이미 공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밀문서의 세 배 분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어샌지를 압박하는 건 이들 문서에 민감한 개인정보가 담겨 있으며 이라크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첩보요원이나 현지 정보원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위키리크스는 개인정보는 삭제한 뒤 공개한다는 방침이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는 어샌지가 정부 기밀문서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스파이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즈는 그러나 “미국 정부 정보를 보호하도록 만든 법률이 미국 시민이 아닌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어샌지는 오스트리아 출신이고 위키리크스는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처벌할 법적 근거가 모호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터져 나온 어샌지의 성추행 논란은 그 배후를 의심하게 만든다. 지난 8월 스웨덴 검찰이 어샌지를 상대로 성추행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가 취소한 사건이 있었다. 어샌지는 스카이프와 트위터를 통해 “미국 정부가 우리의 작업을 멈추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폭로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더러운 수작이 있을 거라는 경고를 받은 바 있는데 이게 그 첫 번째인 것 같다”고 밝혔다.

스웨덴 언론에 따르면 위키리크스 스웨덴 지부에서 일하는 두 명의 여성이 어샌지를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스웨덴 검찰은 아직까지 드러난 사실은 없다고 번복했다. 어샌지는 최근 이들 가운데 한 명과 성관계를 가졌던 사실을 시인했으나 “어느 쪽과도 스스로 원하지 않은 관계를 가진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를 두고 어샌지의 도덕성이 실추됐다는 견해와 근거 없는 중상모략일 뿐 위키리크스의 폭로와는 무관한 사안이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위키리크스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뿐만 아니라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의 온갖 기밀 문서가 집중되고 있다. 기업 비리에 대한 제보도 쏟아지고 있다. 엄격한 제보자 보호와 철저한 사전 검증,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폭로하는 용기, 여기에는 어떤 타협도 거래도 없다. 다만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질 뿐이다. 위키리크스는 집단지성과 미디어가 결합한 대안적인 실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위키리크스가 아니었다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추악한 실상이 오랫 동안 또는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위키리크스는 어느 언론보다 더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쏟아냈고 추가로 쏟아낼 계획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위키리크스가 진실을 거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미국 정부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정부와 기업들이 위키리크스를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것도 그들이 숨기고 싶은 추악한 진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샌지는 미국 대법원 판결문을 인용해 “자유로운 언론의 책임 가운데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국민을 타지에서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게 하거나, 테러 및 폭격에 의해 상해를 입게 하는 등 그 어떤 것이라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서 “원칙있는 폭로는 역사의 물줄기를 좋은 쪽으로 바꿨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한다. “용기에는 전염성이 있다”는 위키리크스의 구호도 의미심장하다.

(LG엔시스 사보 10월호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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