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당연히 TV 수신료도 안 낸다.) 그래서 나는 ‘개그콘서트’나 ‘무한도전’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뉴스를 봐야 할 때는 PC에 연결된 외장형 TV 수신기로 볼 수도 있지만 웬만해서는 TV를 안 보고 산다. 그나마 보는 거라면 수요일 저녁 ‘라라라’와 목요일 저녁 ‘백분토론’ 정도였는데 ‘라라라’는 폐지됐고 ‘백분토론’은 어딘가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일요일 저녁이면 어딘가 허전해서 ‘CSI 과학수사대’를 틀어놓고 책을 읽곤 한다.
보통 집에서는 아이팟을 랜덤으로 돌려놓고 음악을 듣는데 늘 듣는 음악이라 싫증날 때가 있다. 클래식 음악을 듣기에는 ‘라스트에프엠’이나 ‘마그나튠’도 좋지만 역시 오래 듣다 보면 비슷비슷한 음악이 반복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라디오를 한 대 장만하기로 했다. 마침 유학가는 친구가 내놓은 티볼리 라디오를 싸게 넘겨 받았다. 다이얼 튜너에 모노 스피커, 원목 하우징, 그야말로 아날로그 감성에 충실한 라디오다. 음질도 기대 이상이다.
덕분에 요즘은 집에 들어오면 93.1MHz KBS 클래식 FM을 계속 틀어놓는다. 고등학교 때부터 듣던 김미선 아나운서의 ‘당신의 밤과 음악’은 거의 30년이 다 돼 가는 프로그램이다. 퇴근 길 운전 중에 듣는 ‘세상의 모든 음악’도 좋고 새벽에 바로크 음악을 주로 틀어주는 ‘새 아침의 클래식’도 좋다. 다만 클래식 전문 채널로 바뀌면서 ‘전영혁의 음악세계’와 ‘정은임의 영화음악’, ‘세계의 유행음악’ 같은 프로그램들이 사라져서 아쉽다.
티볼리는 오디오를 수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라디오를 듣기 가장 좋은 제품으로 꼽힌다고 해요. 몇천만원짜리 오디오를 사던 사람도 나중에 결국 티볼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말도 있을 정도지요. 저도 사고 싶은데, 싸게 사셨더니 정말 부럽습니다.
저도 93.1을 자주 듣는데, 우연히 라디오에서 마음에 듣는 곡이 나와 메모지에 적을 때의 기분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라디오가 사라진다는 건 생각만 해도 너무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