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 이후 가장 현실적이고 유력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세계은행 부총재 출신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정리한 위기 해법이다. 실제로 지난해 G20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렸던 G20 서울 민중회의에서는 이 책을 손에 든 사람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었다. 더 민주적이고 더 공정하며 더 평등한 세상에 대한 전망을 담은 그야말로 교과서 같은 책이다. 계속해서 밑줄을 쳐가면서 읽게 된다.


스티글리츠는 이 책에서 “더 안정적이고 풍요로우며 균형 잡힌 세계 경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장기적인 개혁이 지금 시작돼야 한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또 다른 전 지구적 위기의 재발을 막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스티글리츠는 “한 나라의 경제 실패는 곧바로 세계적 차원의 경기 후퇴나 불황으로 이어진다”면서 “조속히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가장 큰 고통은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시장에 대한 간섭이 없어지면 시장이 자율적으로 신속히 자기 조정을 이루고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믿음이 만연했지만 이번 위기는 시장 기능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엄청난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스티글리츠는 “특히 금융시장의 실패는 실물 경제의 영역으로 번져 나가면서 다른 시장의 실패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스티글리츠는 개발도상국의 문제에 집중한다. “경제 정책의 경기 순응적 성격을 최대한 축소하며 사회 보호 장치를 복원하고 확대할 수 있는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스티글리츠는 “선진국들이 취한 구제금융과 보증제도, 비대칭적이며 팽창적인 재정정책의 결과로 발생할 수 있는 왜곡된 질서를 상쇄하기 위해 개도국들을 향한 보상차원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다시 위험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스티글리츠는 “전 지구적으로 균형 잡힌 대응을 펼치려면 국가 차원에서 경기회복 프로그램을 잘 조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식적 지원이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진국의 보호주의나 근린궁핍화 정책은 특히 위험하다. 스티글리츠는 “국가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의 정책 목표는 모두 경제의 신속한 회복과 더불어 위기로 인해 가장 많은 파탄을 겪는 개발도상국과 취약한 계층 보호에 맞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기의 원인을 불평등에서 찾는 접근방식도 돋보인다. 스티글리츠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중위임금이 정체돼 왔던 것과 달리 사회 계층의 상위 분위로 소득 분배가 쏠리면서 불평등 정도가 증가해 왔다”고 지적한다. “실질적인 소득이 기초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가진 사람들로 이전됐고 그 결과 총유효수요가 약화됐다”는 이야기다.

“소득 불평등을 증가시킨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비대칭적 세계화, 특히 노동보다 자본의 이동을 용이하게 만든 세계화, 노조의 약화,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 경영자와 노동자의 보상체계의 차이를 키운 사회계약의 붕괴 등이다. 덧붙여 세금을 낮춰 소득을 증가시키거나 비금전적 보조와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늘리면 저축과 노동공급, 투자, 성장이 증가할 것이라 맹신한 것도 문제로 들 수 있다.”

스티글리츠는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유효 수요 이론을 충실히 계승한다. “소득이 물가인상으로 고통 받는 취약계층에서 그로 인해 혜택을 입는 사람들에게 이전되면서 세계적 차원에서 총수요를 약화시켰고 이번 위기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세계 불균형 문제를 심화시키는데 기여했다”고 지적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스티글리츠는 “지속적으로 악화돼 온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되돌릴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도 명확하다. 스티글리츠는 “정체된 실질 임금과 심화된 소득 불평등으로 야기될 수 있는 총수요 위축은 위험관리 분야에서 금융혁신과 느슨한 통화정책으로 대부분 상쇄돼 버렸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자산가격에 거품이 끼면서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가계의 자산이 빠르게 늘어났고 그 결과 부자가 되고 있다는 환상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다.

스티글리츠는 “세계적 수요를 지탱해줄 위기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세계 불균형 문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사회보장은 사회정의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안정화의 주요 수단이기도 하다”는 대목도 주목된다. 스티글리츠는 “잘 설계된 사회보장 체제는 자동안정화 장치의 규모를 확대함으로써 경제가 충격에 더욱 잘 견딜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한다.

스티글리츠는 “또 다른 호황이 발생해도 전과 같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는 기간이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면서 “세계 불균형 또한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며 현재와 같은 위기를 되풀이하는 위험만 초래할 뿐”이라고 전망한다. 스티글리츠는 “세계 총수요의 부족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관련해 조치가 취해져야만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스티글리츠는 “불충분한 규제와 감독기관들의 임무 방기가 이번 위기를 일으키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한다”면서 “금융이 이번 위기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었다는 사실은 확실하지만 국가의 잘못도 크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시장을 시장 자체에서 보호하지 못했고 위기의 부담을 납세자와 노동자, 주택 소유자, 퇴직자들에게 전가시켰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는 “정부는 사회를 보호하는데 실패했다”고 규정한다.

“이런 많은 오류의 근저에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모두에서 지난 25년 동안 유행한(종종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 근본주의라 불리는) 경제 철학이 놓여 있다. 문제성이 다분한 이들 이론은 사적이고 공적인 영역에서 각종 의사결정들을 왜곡시켰으며 이번 위기의 원인이 된 많은 정책들을 양산했다. 그리고 시장이 자율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규제는 불필요하다는 등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스티글리츠는 대안으로 “앞으로의 정책들은 사회적 정의와 연대라는 보다 폭넓은 관점과도 조화하도록 목표가 설정돼야 한다”면서 “특히 개발도상국들의 복지와 생태적 한계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위기와 관련해 신속한 회복만을 추구하고 세계 경제와 국제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실질적인 문제점들을 간과한다면 무책임하고 잘못된 선택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스티글리츠는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바는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이고 “다시 말해 세계 경제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개혁은 세계 전체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며 특히 이번 위기에서 무고하게 피해를 입은 전 세계 빈민 계층과 저 개발 국가의 복지가 개선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8가지 주제를 간단히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계적인 불평등은 수요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이번 위기는 글로벌 위기이며 세계적 관점의 대응이 필요하다. 셋째, 세계적인 비대칭성이 개발도상국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만들고 위기의 원인을 만든 국가들로 자본이 빠져나가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초래한다. 넷째, 금융시장의 실패를 인정하고 적절한 규제를 복원시켜야 한다.

다섯째, 경제적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반면 정책적 대응은 국가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 여섯째, 이 때문에 외부효과가 발생하고 가난한 나라의 사회적 약자들이 부담을 떠안게 된다. 제대로 된 세계화가 아니고 제대로 된 금융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곱째, 금융 혁신이라 부르는 일련의 조치들은 규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덟째, 위기의 해법이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결론이 좀 모호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이 책은 선진국 중심의 G20 시스템이 세계 경제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순진한 상식에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한다. “당신들의 위기가 우리에게는 죽음”이라고 외쳤던 G20 바깥의 나라들의 상황에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자유화와 탈규제가 위기의 도래 뿐만 아니라 신속한 세계적 확산에 기여했다”는 진단 역시 의미심장한 교훈을 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축통화의 지위를 남용해 세계적인 금융 불안을 초래한 미국과 금융 규제 완화를 단행해 불평등을 심화시킨 정부 정책 담당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수익은 사유화, 비용은 사회화’하는 금융 시스템의 외부 효과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실패를 인정하고 분배와 복지에 기반한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스티글리츠 보고서 /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 박형준 옮김 / 동녘 펴냄 /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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