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뛰어오르고 있다. 1월 소비자 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4.1%나 뛰어오른데 이어 2월과 3월 물가는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육류와 채소, 과일 등 농축산물이 17.5%나 뛰어오르면서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고 석유류와 학원비도 심상치 않다. SK증권은 2월 물가상승률이 4.2%, 3월은 4.6%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솔로몬투자증권은 1일 보고서에서 “최근 국내 물가를 둘러싼 환경은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 진퇴양난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병길 연구원은 “지난해 10월 소비자물가가 4.1%에 달할 때만 해도 수급불균형으로 인한 농산물가격 급등이 원인이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완화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일기불순이 지속되면서 수산물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구제역 파동으로 축산물 가격까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기개선과 이라크 사태 영향으로 국제 유가도 걷잡을 수 없이 뛰어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신 연구원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금리인상이지만 이러한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의 경우 금리인상으로도 물가상승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정부가 금년 경제성장률 목표를 5%로 잡고 있는 만큼 기준금리를 강하게 가져가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2월에 연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신 연구원은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의식해 원화 강세를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이마저도 수출에 미치는 악영향을 감안하면 한계가 있다”면서 “결국 정부에게 남아있는 정책 수단은 공공요금과 생필품 가격 억제 등 외부적 비용상승 부담분을 기업들에게 전가시키는 것 밖에는 없다”고 진단했다. 미시적·단기적 정책으로 물가상승 시기를 최대한 미루면서 농축수산물과 원자재가격이 안정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당장 관심사는 오는 11일로 예정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인지 여부다. 가뜩이나 최근 성장 모멘텀이 둔화되는 상황에 금리를 끌어올릴 경우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5%로 내걸었는데 집권 하반기에 이마저도 달성하지 않을 경우 레임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솔로몬투자증권 임노종 연구원은 “정부가 금년 5% 성장목표를 유지하는 한 물가안정을 위해 거시정책을 강하게 가져가기 어렵다”면서 “현재 국내 물가 불안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국제유가, 원자재, 곡물 등 외생변수에서 유발되고 있다는 점에서 금리인상과 같은 거시정책이 단기에 물가안정 효과를 나타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성장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현재로서는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정부는 주요 공공요금을 동결하고 공산품의 부당한 가격 인상에 대처하겠다는 등의 대증요법과 립 서비스만 늘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물가잡기에 동원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인위적으로 물가를 누를 경우 풍선효과처럼 하반기에 더 끔찍한 물가 폭탄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전기요금 등은 하반기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정부도 시인하고 있다.

정부가 5% 성장이라는 미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지적과 함께 애초에 지난해 출구전략을 늦추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기준금리를 2.25%까지 끌어내리면서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늦기 전에 기준 금리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정부는 기업 실적과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출구전략에 소극적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지난해 초부터 “금리 인상이 과도하게 지연될 경우 물가불안 및 자산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지난해 8월 정부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한시 폐지하는 등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서자 한은은 금리 동결로 호응했다. 시장에서 한은의 신뢰가 크게 훼손된 것은 물론이고 금리 인상의 마지막 타이밍을 놓친 여파가 결국 정부 정책이 먹혀들지 않는 상황까지 불러온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성장 드라이브를 정책 기조로 내건 이른바 MB노믹스는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감세와 규제완화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가운데 가장 빠른 회복 속도를 보였다고 과시했지만 이제는 인위적인 경기 부양의 후유증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747 공약은 물 건너 간지 오래지만 5% 성장률 목표 역시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만약 물가가 2월에 이어 3월까지 계속해서 오른다면 그에 비례해서 정부가 받게 될 압박도 가중될 것으로 보이지만 성장률 목표를 일정 부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거의 없다. 금리 인상이 어렵다면 환율 하락을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 경우 수출 대기업들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성장과 물가, 두 마리 토끼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인데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다. 가뜩이나 집권 말기가 다가오고 있다.

(흥미로운 건 언론 보도 태도다. 설 연휴 신문·방송은 삼호 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의 소식을 연일 헤드라인으로 올리면서 정작 국민들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물가에 대한 소식을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방송 3사가 이 대통령의 신년 좌담회를 동시 생중계했던 것도 주목된다. 최근 이슈가 됐던 아랍에미리트 원자력 발전소 이면 계약 논란도 뒷전이다.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성과는 방송을 완전히 장악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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