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값 상승 불길, 집값에 옮겨 붙었다”는 중앙일보의 지난달 28일 기사는 팩트 왜곡과 논리적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전세난이 심화하면서 중소형 아파트를 사려는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 매매값이 오르기 시작했다”면서 “전문가들은 전세난을 먼저 진정시키지 못하면 매매시장이 크게 불안해 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의 2일 기사도 마찬가지다. 이 신문은 “아무래도 내집 마련의 시기를 놓친 것 같다”는 이아무개씨의 하소연을 인용하면서 잠실 지역 전용면적 25평 아파트가 한 달 사이에 6천만원이 올랐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이 신문은 “공급량 절대 부족과 전세대란으로 오름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한 부동산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하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서 중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매가격이 상승하는 움직임이 관측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지역 중소형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해 3월 고점을 찍고 하락한 뒤 아직 뚜렷한 반등 추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소폭 반등했지만 본격적인 반등 국면이라고 보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다.

국민은행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서울 지역 소형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지난해 3월 104.1을 고점으로 꺾였다가 10월 102.9까지 빠진 뒤 올해 1월 103.2까지 올랐다. 경기 지역도 지난해 3월 101.4를 고점으로 꺾였다가 11월 99.6까지 빠진 뒤 올해 1월 99.9까지 회복한 상태다. 장기 추세를 보면 상승 동력이 크게 꺾인 뒤 힘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지난해부터 계속해서 금리를 동결하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폐지하고 양도세 중과 폐지를 연기하는 등 부동산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는데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서울과 수도권 지역 아파트는 여전히 2008년 8월 고점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이런 맥락에서 전세값이 오르니 매매값이 덩달아 오른다는 중앙일보와 서울신문의 주장은 인과관계가 뒤바뀐 셈이다. 오히려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매매 수요가 전세 수요로 몰렸다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빚을 내서라도 일단 집을 사는 게 이익이라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끝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 신문이 간과하고 있는 대목은 이미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으며 가처분 소득 대비 부동산 자산 비중이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빚을 내서 집을 살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에 발목이 잡혀있고 집값이 충분히 빠지지 않는 이상 추가 수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금리가 인상되면 부동산 부실이 터져 나올 것이고 부동산 경기에도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저출산 고령화의 충격이 2013년부터 본격화될 것이고 부동산 시장도 공급 과잉 상태로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집값이 하향 안정화하지 않는 이상 수급 불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도 잠재적인 뇌관이다. 벌써부터 하나둘씩 영업정지가 시작되고 있지만 금융시장에서는 믿을만한 저축은행이 없다는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부실 저축은행을 걸러내지 않는다면 우량한 저축은행은 물론이고 시중은행의 부동산 담보 대출까지 부실화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값이 뛰니 매매값도 뛸 거라는 해석은 논리적인 모순일 뿐만 아니라 터무니 없는 팩트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지역의 사례를 뽑아 전체 시장의 기조인 것처럼 확대 해석하고 있지만 이는 언론의 호들갑일 뿐 확실한 반등 신호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부동산 시장이 대세하락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전세대란은 부동산 대세하락의 전조라고 보는 게 맞다”고 지적한다. 공급 측면에서는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자 집주인들이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하게 되면서 공급이 줄어들었고 수요 측면에서는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불안 심리가 확산되면서 매매 수요가 전세 수요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선 부소장은 “최근 전세대란은 수요와 공급의 일시적 미스매치일 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한다. 집값이 확실히 바닥을 쳤다는 신호를 보이기 전까지는 매매수요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전세값만 오르는 현상이 계속될 거라는 이야기다. 선 부소장은 “정부가 집값을 떠받치면서 시장을 교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본부장은 “최근 전세대란은 전세대란이라기 보다는 거래대란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다”는 입장이다. 김 본부장은 “집값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 소비자들이 매매중단, 분양거부,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이를 전세대란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김 본부장은 “전세대란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우는 보수·경제지들의 속셈을 잘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이 신문들의 목적은 집 없는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부추겨 꺼져가는 부동산 경기를 끌어올리는데 있다”면서 “보수·경제지들 뿐만 아니라 부화뇌동하는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진보성향 언론들도 문제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확신이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려는 수요가 있을 텐데 지금 시장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면서 “전세값이 올랐다고 하지만 빚을 더 내서 집을 사기에는 여전히 집값이 너무 비싸다”고 지적했다. 집값이 충분히 빠지지 않았다는 인식 때문에 전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중앙일보는 특히 분양가 상한제와 양도세 중과 등 과도한 규제 때문에 중소형 아파트의 공급이 줄어들었고 보금자리 주택 때문에 매매 수요가 전세로 돌아서서 전세대란을 부추겼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 역시 터무니 없는 궤변이다. 건설회사들 폭리를 방치하고 집값이 계속 뛰도록 놔뒀어야 전세대란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일까.

분양가 상한제는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가산비용 덕분에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다. 그리고 중소형 아파트 공급이 줄었던 건 중대형 아파트가 훨씬 더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건설회사들이 중대형 아파트에만 매달린 결과였다. 2008년부터 급증한 미분양 아파트는 대부분 중대형 아파트였는데 전세대란은 중소형 아파트에 집중되고 있다.

보금자리 주택 때문에 매매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주장은 거꾸로 전세대란의 본질을 폭로한다. 보금자리 주택은 이명박 정부의 돌출 행동이었지만 집값 거품의 실체를 드러냈고 진보진영에서는 반값이 아니라 반의 반값 아파트도 가능하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전세대란은 보금자리 주택 때문이 아니라 너무 비싼 집값이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게 맞다.

여전히 공급이 부족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늘어나는 1인 가구는 수억원을 호가하는 중대형 아파트를 살 여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필요한 것은 중소형, 그리고 저렴한 가격의 공공임대 아파트다. 집값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는다면 수요를 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최근 전세대란이 주는 교훈이다.

부동산 투기세력과 수십년을 이어온 토건 시스템, 그리고 이에 기생해 왔던 일부 언론들은 전세값이 오르는 것을 신호탄으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기를 바라겠지만 설령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있더라도 시장에 매매수요가 이미 고갈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폭탄을 넘겨받을 다음 매수자가 없는 상황이다. 

전세값이 계속 뛰니 더 늦기 전에 집을 사야 한다는 보수·경제지들의 선전선동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하다. 전세대란의 유일한 해법은 공공임대 아파트의 확대와 집값의 하향 안정화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의 충격이 불가피하겠지만 부실을 적당히 덮고 버티는 것은 훨씬 더 끔찍한 재앙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Similar Pos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