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신문을 볼 시간이 없을 뿐더러 그나마 보고 싶은 신문을 볼 수도 없다. 대부분의 신문이 하루 종일 테이블 위에 쌓여 있다가 펼쳐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엄청난 세금 낭비다.”

미디어오늘이 지난달 1일~18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상당수 공무원들이 신문 구독에 불만을 드러냈다. “지금 구독하고 있는 신문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46.8%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 이유로는 “불필요하게 너무 많은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는 답변이 37.1%였고 “신문 구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답변이 27.3%, “편향된 논조의 신문만 구독하고 있어서”라는 답변이 23.3%를 차지했다.

경상북도 상주시청에 근무하는 이원경씨는 “부서에서 종합 일간지 7부를 보고 있는데 제대로 펼쳐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라서 대부분 신문들이 보지도 않고 그대로 버려지거나 음식물을 받치는 용도로 활용될 뿐이다. 21년차 기능직 8급 공무원인 이씨는 “우리가 구독하는 신문은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과에서 결정하는데 그나마도 근무 시간에는 신문을 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전공노 교육과학기술부 지부에서 일하고 있는 박경애씨는 “신문을 누가 보느냐에 따라 일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과장 직급 이상이 아니라면 근무 시간에 신문을 본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박씨는 “공보관실에서 일방적으로 부서마다 구독할 신문을 정해서 배분하는데 정작 구독료는 부서 경비로 지출된다”면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관행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 결과, 공무원들이 근무지에서 가장 많이 구독하는 신문은 조선일보가 29.7%로 1위, 중앙일보가 24.6%로 2위, 동아일보가 23.0%로 3위,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각각 22.8%, 17.0%로 4위와 5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어떤 신문을 가장 신뢰하느냐는 질문에는 45.4%가 한겨레를 가장 신뢰한다고 답변했고 경향신문을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자도 34.9%나 됐다. 3위인 조선일보는 9.0%으로 격차가 크게 나타났다.

주목할 부분은 5급 이하 공무원들 대부분이 부서에서 어떤 신문을 구독할 것인지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공보 관련 부서에서 일괄적으로 결정해서 배분하거나 부서장들이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장 신뢰하는 신문과 실제 구독하고 있는 신문이 다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 것으로 분석된다. 부서마다 5부에서 많게는 20부까지 신문을 구독하고 있지만 대부분 공무원들이 인터넷으로 뉴스를 본다고 답변했다.

서울시청 행정직 7급 공무원 김민호씨는 “부서에서 조중동과 경제지 하나, 스포츠지 하나, 그리고 문화일보 정도를 구독하고 있는데 신문들이 늘 과장님 책상 앞 소파에 놓여 있어 접근 자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근무 시간에 신문을 넘겨보고 있으면 민원인들 눈치도 보이고 상사가 볼 때도 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대부분 뉴스는 근무 시간 틈틈이 인터넷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충북 영동군청에서 일하는 행정직 6급 공무원 임기철씨는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로 뉴스를 보는데 아무래도 정치나 사회 기사보다는 제목이 끌리는 스포츠와 연예, 가십성 기사들을 더 많이 읽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는 “사무실에서는 문화홍보과에서 내려 보내는 신문 스크랩 정도를 읽는 게 전부인데 대부분 지역 관련 현안이라 정치·사회적 이슈를 따라잡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임씨는 “사무실에서 조중동문이나 매일경제를 보는 건 그나마 부담이 적지만 상대적으로 정부 비판 기사가 많은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를 뒤적거리는 건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일이라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임씨는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공무원도 국민의 한 사람인데 정치적 성향이나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털어놓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일하는 행정직 8급 공무원 이상원씨는 “국민들 세금으로 구독하는 신문인데 부서장들의 개인적 성향으로 결정해서 혼자만 보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신문을 보고 정보를 습득하는 것 역시 업무의 연장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부서 직원들의 의견을 취합해서 구독할 신문을 결정하도록 하고 모두가 보는 공간에 놓아두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구로구청 행정직 7급 공무원 명태용씨가 일하는 부서에서는 신문 8부를 구독하고 있는데 최근 구독 담당자에게 요청을 해서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추가로 구독하기로 했다.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명씨는 그러나 “워낙 업무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무 시간에 신문을 들춰보는 것 자체가 노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면서 “대부분 부서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명씨는 “공무원들의 신문 구독 행태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특정 신문을 선호하곤 했지만 이제는 특정 신문을 찾아서 보기 보다는 여러 신문을 보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다. 명씨는 “공무원들이라고 하면 흔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판단과 사고까지 보수적이지는 않다”면서 “여전히 조중동을 많이 보고 있지만 영향력이 급속도로 축소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덧붙였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의식하는 공무원들도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무원은 “구제역 파문이나 4대강 개발 사업, 반값 등록금 이슈 등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도 많지만 이를 드러내서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른 한 공무원은 “사석에서 조심스럽게 이런 주제를 꺼낼 때도 있지만 인사 결정권자가 있는 자리에서는 튀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실제로 정치적 성향이 근무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동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한 공무원은 “정부 정책은 공무원들이 가장 잘 안다”면서 “주변에 보면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공무원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반값 등록금 문제만 해도 재정 불건전성 운운하는 조중동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공무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면서 “4대강 개발 사업과 비교하면 결국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의 문제일 텐데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군포시청 행정직 6급 공무원 이병진씨는 “지난 11일 한진중공업 사태만 해도 조중동만 봐서는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비롯해 여러 인터넷신문을 함께 읽으면서 입체적인 시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공무원이 업무와 관련, 정치적 중립을 지킬 필요는 있지만 개인의 신념이나 정치적 의사표현까지 제약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전공노 차영순 정책실장은 “2009년 전공노 출범 이후 공무원 복무규정이 강화되고 노조 활동이 탄압받기 시작하면서 공무원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 더욱 제한되고 있다”면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넘어 정부 정책에 반대를 해서는 안 된다거나 정치권력의 충실한 하수인이 되라고 강요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차 실장은 “공무원들이 정부 비판적인 논조의 신문을 읽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낀다는 이번 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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