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소개되는 맛집이 1주일에 170여개, 1년이면 9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영화 ‘트루맛쇼’는 그 맛집들 가운데 상당수가 돈을 주고 만들어낸 조악한 광고라는 공공연한 비밀을 폭로한다. 500만원에서 많게는 1500만원 정도를 브로커에게 건네주면 지상파 방송을 탈 수 있다. 있지도 않은, 적당히 그럴 듯해 보이는 메뉴를 만들어서 내놓으면 가짜 손님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한다.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녹아요.”

이 영화가 충격적인 건 TV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거침없이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가짜 음식점에서 만든 청양고추가 듬뿍 들어간 ‘죽말’ 돈가스는 언뜻 맛있어 보인다. (‘죽말’은 ‘먹고 죽는가 말든가’라는 의미다.) 그게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그야말로 방송을 타기 위해 급조한 메뉴라는 사실을 관객들은 안다. 그런데도 방송은 매우 그럴 듯해서 오히려 끔찍하다. 이 영화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게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번뜩 깨닫게 해준다.

맛집 전문 브로커 임아무개씨는 말한다. “맛은 상관 없어. 일단 그림이 좋아야 돼.” 방송을 수없이 탔던 ‘캐비어 삼겹살’도 임씨의 작품이다. 임씨는 식당 주인에게 이러이러한 걸 만들어 보라고 조언을 한다. 그게 실제로 맛이 있거나 없거나 팔리거나 말거나 상관은 없다. 일단 어떻게든 시청자들 눈길을 사로 잡는 방송을 만들어야 하고, 식당 주인 입장에서도 TV에 나온 집이라는 간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재환 감독은 가짜 음식점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뒤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고 엉터리 메뉴를 만들고 방송사 카메라가 들이닥쳐 가짜 손님들을 찍는 장면을 모두 기록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 가게 문을 닫고 방송을 지켜보는 스탭들의 표정은 착잡해 보인다. 정말 이런 게 가능하구나. 그리고 별 다른 설명 없이 거기서 영화는 툭 끝난다. 속이는 자를 속이는 게임인 셈인데 관객들 역시 뒤끝이 개운치 않다.

그럼 9천개의 맛집들이 모두 가짜인가, 그런 물음은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범주를 벗어난다. 중요한 건 돈을 받고 가짜 맛집을 만들어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가짜 맛집에 물밀 듯이 손님들이 몰려든다는 사실이다. 알면서도 속고 속는 걸 알면서도 괜히 가보고 싶어지는 그게 매스 미디어의 힘이다. 그게 맛집 소개 뿐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인식이 새삼스럽게 충격을 안겨준다.

방송사들은 제작비 절감을 이유로 외주 제작을 계속 늘려왔는데 이런 질 낮은 교양 프로그램은 그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하고 민영 미디어렙이 도입되면 제작비 압박과 시청 점유율 경쟁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싸게 만들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좀 더 자극적인 영상을 내보내야 하는 그래서 다 같이 하향 평준화하는 진흙탕 싸움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혹시라도 외주 제작사들과 열악한 노동 조건의 비정규직 방송 노동자들에게 비난을 쏟아내서는 안 된다. 지상파라는 공유 자원을 독점하고 하청 업체들 납품단가를 후려치면서 이익을 늘리는 거대 방송사들에게 먼저 그 책임을 묻는 게 맞다. 이 용감한 영화 덕분에 벌써부터 방송에서 맛집 소개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게 될 것이 뻔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 놀라운 영화의 개봉에 지상파 방송사들이 보였던 반응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MBC는 이 영화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 당했다. 다행히 영화는 상영됐지만 본 재판이 시작됐다. 명예훼손과 초상권 침해, 손해배상 소송 등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은근슬쩍 몇몇 맛집 프로그램들이 폐지 또는 일시 중단 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방송사들의 사과나 입장 표명은 없다. 이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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