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에 맞춰 내려던 단행본에 실릴 원고였는데 발간이 취소돼서 실리지 못했습니다. 10명의 필자들이 섹션을 나눠서 썼는데 제가 경제 부문을 맡았었고요. 찾다 보니 없어서 뒤늦게 날짜에 맞춰서 올립니다. 다시 읽어보니 좀 장황하네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처음 실망했던 건 그가 쌀 시장 개방을 받아들였을 때였다. 우리나라는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쌀 관세화를 10년 유예하기로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04년 4월, 노 전 대통령은 관세화를 받아들이는 대신 의무 수입물량을 늘리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쌀이 남아도는데도 쌀을 수입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의 수많은 타협 가운데 그게 첫 번째였다.
그에 앞서 그해 2월 노 전 대통령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여 끝내 통과시켰다. 나는 일찌감치 그때 기대를 접었다. 한칠레 FTA는 나중에 논란이 된 한미FTA 보다 계산이 훨씬 쉬웠다. 우리가 칠레보다 훨씬 더 잘 산다는 건 분명했고 당장 자동차와 휴대전화, 컴퓨터 등 수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됐다. 칠레에서 수입하는 건 닭고기와 감자, 포도, 복숭아 그리고 와인 등이었다.
감자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좀 안 됐긴 했지만 그들이 좀 희생을 하고 나라가 그만큼 더 잘 살게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는 논리였다. 어릴 때 침 흘리며 구경만 했던 바나나를 이제 노점상에서 2천원에 한 송이씩 원 없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처럼 개방하면 개방할수록 과일 가격이 낮아질지도 모른다. 내친 김에 쌀 시장까지 개방하면 가난한 서민들 가계 부담이 훨씬 줄어들지도 모른다. 중국 쌀은 1kg에 300원, 20kg 한 포대에 6천원 밖에 안한다.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FTA를 거부하면 칠레는 우리나라 수출품에 엄청난 관세를 매길 것이고 우리나라의 자동차와 휴대전화는 칠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된다. 관세 없이 수출하는 다른 나라와 경쟁이 되지 않을게 뻔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덩어리에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FTA를 거부할 명분은 없다. 이게 노 전 대통령과 얼치기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였다.
힘들고 돈 안 되는 농사 따위는 집어치우고 나라 전체가 자동차와 휴대전화, 반도체, TFT-LCD 만으로 먹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다 쓰러져 가는 농업을 살리겠다고 잘 나가는 자동차나 휴대전화 산업을 죽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모든 언론이 입을 모아 FTA를 통과시키라고 노래를 부르고 모두가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도 그 대세에 무력하게 편승했다.
다른 대안이 있었을까. FTA를 찬성하는 사람들 논리의 핵심은 결국 개방은 불가피하다는데 있다. 그들은 착취당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먼저 뛰어들어서 다른 나라를 착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령 착취를 당하더라도 아예 소외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논리도 있다. 당신은 이런 논리에 반대할 수 있는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무렵 한국 경제는 앞만 보고 내달렸다.
노 전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밀어붙였던 한미FTA는 아직 미완의 과제다.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한 뒤 계류 중이다. 노 전 대통령의 파트너였던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공중에 붕 뜬 상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동차 무역 불균형 등을 문제 삼아 한미FTA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딴죽을 걸고 있다. 국내 통과도 요원하지만 미국 의회 비준 역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조아는 언제나 생산도구를 끊임없이 혁명하고 따라서 사회관계도 혁명한다”고 썼다. 세계화는 값싼 노동력을 찾아 국경을 넘는 과정이다. 자동차를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자동차를 만들고 감자를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나라가 감자를 만든다. 생산성 없는 산업과 경쟁력이 없는 나라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세계화는 그렇게 착취와 종속이 확산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94년 미국과 북미FTA(NAFTA)를 체결한 캐나다는 10년 동안 미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30%에서 60%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농가의 실질소득은 24% 줄어들었고 부채는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이 캐나다에 투자한 자금의 96.6%는 캐나다 기업을 인수·합병하는데 집중됐다. 3천개가 넘는 기업이 미국 기업에 합병됐다. 10년 동안 캐나다의 생산성은 2% 가까이 늘어났지만 임금 상승률은 0.4%에 그쳤다. 실업률은 8.6%까지 올라갔다.
멕시코에서는 저임금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다. 기업들 생산성은 올라갔지만 평균 임금은 NAFTA 체결 이전보다 훨씬 더 떨어졌다. 대외 의존도가 높아졌고 핵심 우량 기업들의 외국인 지분 비율도 높아졌다. 내수 기업들의 도산도 잇따랐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노동자들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은 36% 수준에서 30% 밑으로 떨어졌다. 기업들 이익은 늘어나는데 노동자들은 가난해졌다는 이야기다.
미국은 어떤가. NAFTA 체결 이후 10년 동안 무려 300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는데 미국 기업들 이익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3만8천가구 이상의 농가가 사라졌지만 카길이나 ADM 등 농업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더욱 높아졌다. 멕시코는 물론이고 미국의 노동자들과 농민들도 자유무역의 희생양이 됐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장밋빛 기대를 접어두고 일단 묻고 싶어진다. 이 모든 게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인가.
비교우위 이론을 믿는 사람들에게 자유무역은 축복이다. 이를테면 다국적 기업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착취한다고 비난하지만 어떤 나라 사람들에게 나이키 공장은 최고의 직장이다. 우리에게 한끼 밥값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면서 하루종일 신발 상자를 포장하더라도 말이다. 어린아이들까지 공장에서 일을 시킨다고 나무랄 수도 있지만 일을 시키지 않으면 그 아이들은 굶어죽을 수도 있다.
가난한 나라들은 그렇게 부자 나라가 던져준 떡고물을 먹고 자란다. 자메이카는 1992년 미국에게 우유 시장을 개방했다. 그 결과 낙농업계는 와르르 무너졌지만 그 나라 어린이들은 그때부터 훨씬 싼 값에 미국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됐다. 그때도 미국과 자메이카는 모두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가난한 나라나 부자 나라나 팔 수 있는 걸 팔고 이익을 챙기자, 그게 비교우위 이론의 핵심이다.
이른바 ‘세계는 평평하다’는 세계화 이론이 2000년 이후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굳어졌지만 그 비판도 만만치 않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은 더 높은 이윤을 좇아 이윤율이 낮은 선진국에서 이윤율이 높은 후진국으로 이동하는데 결국 그 과정에서 잉여가치는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이전된다. 결국 세계화 시대의 경쟁은 비교우위가 아니라 경쟁우위의 원리에 따르게 되고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격차는 갈수록 더 커진다.
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역사적으로 선진국의 경제발전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무역과 보조금, 각종 특허와 지식재산권 보호에 기초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선진국들은 충분히 경제적 우위를 확보한 이후에야 자유무역의 기치를 내걸었다.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결국 선진국의 기업들에게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기 위한 전략이라는 이야기다.
한신대학교 이해영 교수의 전망은 끔찍하다. “한미 FTA가 고용을 늘리고 성장을 가져온다는 근거는 없다. 교역량이 늘어난다고 해도 고용유발효과가 낮은 정보기술(IT) 산업에 집중되고 지금처럼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는 조건에서는 성장이나 고용, 투자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오히려 수출 증가가 더 많은 수입을 유발하는, 그래서 멕시코의 마킬라도라처럼 수출이 아예 경제에서 고립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킬라도라는 1965년 미국 남부 농업 지역에 고용되어 있던 멕시코 노동자들이 추방되면서 이들을 받아들이려고 만든 경제 특구다. 여기에 입주한 외국 기업들은 관세가 면제되는 등의 혜택을 누렸다. 마킬라도라가 성장한 것은 1982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1980년에 620개였던 공장이 1993년에는 2172개까지 늘어났고 고용 인구도 11만9500명에서 54만1천명까지 늘어났다.
주목할 부분은 고용과 성장의 질이다. 질 낮고 값 싼 일자리가 늘어났을 뿐 마킬라도라의 이익은 고스란히 미국으로 빠져나갔다. NAFTA 발효 이후 멕시코의 노동생산성은 68%나 늘어났는데 노동 비용은 68%나 줄어들었다. 기업의 이익은 늘어났지만 노동자들은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으로 허덕였다. 평균 실질임금은 1% 늘어나는데 그쳤다. 수출이 늘어나고 GDP도 늘어났지만 과연 이를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한미FTA는 한칠레FTA와 달리 독소조항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정부가 협상 내용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이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정부가 공개하지 않기로 한 문서가 검색 사이트 구글에는 둥둥 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비공개 문서를 보면 우리 정부가 얼마나 한미FTA에 목을 맸는지 얼마나 굴욕적인 태도로 협상에 나섰는지 알 수 있다. 정부의 거짓말도 속속 드러났다.
먼저 투자자 국가소송제는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나라에 투자했다가 부당한 차별대우로 사유재산에 피해를 입을 경우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1999년 미국의 택배회사 UPS가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UPS는 캐나다 정부가 우체국의 택배 서비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UPS의 희망사항처럼 우체국을 완전히 민영화한다고 상상해 보자. 지금처럼 서울 한복판이나 강원도 산골짜기나 단돈 250원이면 전국 어디든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은 그때도 가능할까. 하루 30명도 채 오지 않는 시골 우체국은 그때도 남아있을 수 있을까. 그때도 집배원 아저씨가 우체통을 돌면서 편지를 수거해갈까. 결정적으로 적자를 보면서도 지금의 우편 요금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전기를 완전히 민영화한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이 전기회사 사장이라면 수많은 전봇대를 세워가며 시골 마을까지 전기를 끌어다 넣을 이유가 있을까. 당장 전기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발전설비를 굳이 넉넉히 늘릴 필요가 있을까. 전기회사 입장에서는 전기를 많이 만들어 못 팔고 남기는 것보다 적당히 만들어서 모두 파는 게 좋다. 가끔 공급이 부족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 정전 사태가 그랬다.
한편 KTX 승무원 사태에서 보듯이 철도 민영화의 폐해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철도는 애초에 이익을 낼 수 없는 사업구조다. 철도회사가 굳이 이익을 내려면 철도 요금을 올리거나 인력을 감축하거나 유지 보수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하루 세 번 점검할 것을 두 번만 점검하면 그만큼 인력과 비용이 줄어든다. 물론 사고의 위험은 더 커진다. 영국에서는 실패를 인정하고 민영화한 철도를 다시 공영화하기도 했다.
만약 한미 FTA가 체결되고 미국 대학의 분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면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 명백한 차별대우니까 할 말이 없게 된다. 결국 대학 보조금이 모두 폐지된다고 상상해보자. 가뜩이나 등록금 때문에 난린데 머지않아 5천만원 이상의 등록금을 구경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경제자유구역에서는 영리적 목적의 교육기관 설립이 허가돼 있는 상태다.
호주 정부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투자자 제소권 조항을 삭제한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호주 정부는 이 조항을 포함하지 않는 대신 추후 상황변화가 있으면 고려하겠다는 정도로 합의를 봤다. 반면 우리나라 정부는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이 조항을 빼기 위해 농업 등의 분야에서 지나치게 많은 양보를 했다는 분석도 곁들이고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제기가 터져 나오자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다. 간단히 정리하면 “투자자 제소권은 일반적인 제도이며 우리 기업도 얼마든지 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특히 국정브리핑을 통해 잇달아 반대 논리를 쏟아냈다. “만약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제소를 당할 경우 우리 정부는 미국 상법에 정통한 국제 변호사를 고용해 실체적 진실을 다룰 것이다. 우리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근거 없는 속단이다.”
이밖에도 지식재산권 직접 규제, 역진 방지 조항, 서비스 시장 네거티브 개방 등 어처구니없는 독소조항이 많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거치지 않았다. 정부는 한미FTA의 장밋빛 전망을 이야기했을 뿐 그 부작용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정보를 차단했다. 그나마 그 전망 역시 터무니없이 왜곡되고 부풀려졌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정부는 적당히 뭉개고 지나가는 전략을 선택했다. 노 전 대통령이 왜 그런 무리수를 뒀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를테면 2001년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에는 한미 모두 GDP나 고용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4년 후면 미국이 한국과 교역에서 흑자로 돌아서게 된다는 전망이 담겨 있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한국이 무역 적자로 돌아선다는 이야기다. 이 보고서는 4년 뒤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수출이 54% 늘어나는 반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수출은 21% 늘어나는데 그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우리 정부의 보고서는 상식 이하의 왜곡과 날조로 점철돼 있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무역흑자가 200억달러, 소비자 혜택이 20조원이 이른다고 전망했지만 이는 애초에 가정이 잘못 된데다 같은 모형을 두 번이나 반복 적용해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연구결과는 황우석 사건보다도 더한 치졸한 사기극”이라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정 전 비서관은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제약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이 왜 약값이 가장 비싼가 생각해 보라고 반문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동아제약의 연구개발 투자는 미국 화이자의 15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제약산업이 개방되면 미국 기업을 차별화할 수 없게 된다. 특허 기간이 연장되고 저작권 보호가 강화되면 제네릭 약품 판매에 의존하던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송두리째 미국에 먹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와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를 의료 산업화라는 명목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돈을 더 내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건강보험 강제 가입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은 “만약 헌재 재판관들이 모두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했을 때도 그들이 합헌 판결을 내릴 것 같으냐”고 반문한다.
의약품 특허를 둘러싼 논쟁도 눈여겨봐야 한다. 신약 개발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허 기간을 20년 이상으로 늘리는 건 문제가 많다. 특허를 보호하자는 주장의 의도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당연히 제약회사들 독점이 연장되고 그만큼 이익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짚고 넘어갈 것은 그 이익이 고스란히 아픈 사람들과 그 가족들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내친 김에 건강보험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건강보험을 받지 않으면서 훨씬 수준 높은 치료를 하는 병원이 이미 인천이나 제주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이다. 장기적으로 미국처럼 건강보험을 받는 병원과 안 받는 병원으로 나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건강보험이 축소 또는 폐지되면 기꺼이 돈을 더 내면서 좋은 병원을 찾는 사람과 상대적으로 수준 낮은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나뉘게 된다.
외국 제약회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의약품 선별 보험등재 제도도 마찬가지다.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의약품을 미리 지정한다는 정책인데 이 경우 같은 효능에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외국 제약회사들의 의약품이 안 팔릴 수 있다는 반발을 거센 상황이다. 만약 투자자 제소권이 보장된다면 이들은 당장 이 사건을 국제 재판으로 가져갈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외국 제약회사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논리에서다.
한미FTA는 자동차 수출을 늘리겠지만 당장 약값 폭등과 의료비 지출 확대를 불러올 전망이다. 정 전 비서관은 묻는다. “감기 약값이 10만원으로 치솟고 맹장 수술이 100만원이 되고 4인 가족 의료보험료가 500만원으로 치솟게 되면 그때 가서 건강보험을 확대하거나 되돌리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미국 제약회사들이나 보험회사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 당장 투자자 국가 소송을 제기하고 수천억원의 손해 배상을 받아낼 것이다.”
한미FTA가 통과되고 나면 제약산업 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을 보호할 장치가 모두 사라지게 된다. 수도와 전기, 가스, 철도 등 네트워크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도 소송 대상이 된다. 한미FTA 협상단은 우체국 사업의 정부 독점을 5년 안에 없애겠다는 약속도 했다. 정 전 비서관은 “시골에 전기와 수도가 끊기거나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편지 한통 부치는데 몇천원씩 줘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노 전 대통령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노 전 대통령이 눈과 귀를 막고 한미FTA에 올인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끝 무렵에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털어놓기도 했지만 이미 집권 중반 무렵부터 적극적으로 시장과 타협했다. 특히 한미FTA에 대해서는 완강했다. 많은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갔지만 한미FTA가 우리 경제의 대안이라는 그의 믿음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 경제에 외부 충격을 줘서 역동성을 일깨운다는 이른바 미꾸라지 이론이다. 또는 이왕 개방을 해야 한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뛰어들어서 주도권을 잡자는 전략이었을 수도 있다. 둘째는 노 전 대통령이 정부 관료들에 휘둘려서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 했을 가능성이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은 한미FTA를 자신의 최대 성과로 만들려는 욕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이런 믿음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전수됐다. 적어도 한미FTA와 관련해서는 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충실한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 파격적인 양보를 하면서까지 부시 전 대통령에게 매달렸으나 결국 실패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도 자동차 수출 등 일부 조건을 희생하면서 미련을 두고 있는데 여전히 답보 상태다.
돌아보면 노 전 대통령이 직면했던 가장 큰 과제는 설비투자와 고용 확대를 통한 내수 창출이었다. 노 대통령은 양극화의 딜레마를 재벌 대기업과 시장의 힘으로 넘어서려고 했다. 그래서 기꺼이 재정경제부와 재벌 대기업의 손을 들어줬고 그때마다 개혁 정책은 크게 후퇴했다.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경제의 기반은 갈수록 무너졌는데 그게 이른바 노무현식 실용주의의 실상이었다.
전병서 전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본부장은 “IMF 이후 국내 대기업들이 거둔 사상 최대의 실적은 혹독한 구조조정의 결과 경쟁업체가 사라진데 따른 과점경쟁의 혜택과 그 착시현상일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무렵은 그 과점경쟁의 혜택이 바닥을 드러내던 시점이었다. 기업들은 이익을 내는데 성장은 둔화하고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극단적인 양극화도 그때부터 본격화됐다.
노 전 대통령 주변에 경제 전문가가 없었던 것도 치명적인 한계였다. 이른바 386 참모들은 경제를 전혀 몰랐고 재경부 등에서 수십년간 뼈가 굵은 관료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무렵 만났던 한 재경부 파견 청와대 비서관은 “청와대와 재경부는 의견 충돌조차도 없었다”고 말했다. “담론이 없으니 충돌할 부분이 없는 건 당연하고 청와대는 재경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에 바쁘다”는 이야기였다.
노 전 대통령은 국민들 지지를 얻어 정권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제 관료들을 휘어잡는 데는 실패했다. 분배 우선을 강조했지만 복지와 노동, 교육 문제는 결국 예산 문제로 귀결되고 결국 경제 문제로 치환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부터 신자유주의를 답습해 왔던 경제 관료들을 잘라내지 못하고 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노 전 대통령의 개혁정책은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경제 관료들은 경제정책의 입안과 집행, 시장 감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을 장악하고 헤게모니와 운영원칙을 세습하고 있다. 특히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들은 낙하산 인사를 통해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위원회, 심지어 감사원까지 거의 모든 경제 유관기관과 민간 금융기관들까지 점령하고 있다. IMF를 거치면서 이들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학습하고 자본시장과 결탁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대, 강화해 왔다.
김대중 정부 초기만 해도 한국은행은 은행감독원을 통해 금융기관을 감독했다. 그러나 은행감독원이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과 합쳐져 금융감독원으로 재편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재경부에서 파견된 금감위 관료들이 금감위의 조직과 기능을 점점 키워 금감원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재경부 출신이 대기업으로 옮겨가거나 금감원 출신이 금융기관으로 옮겨가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김대중 정부의 초기 경제 정책은 중경회가 이끌었다. 김태동 청와대 경제수석을 중심으로 윤원배 금감위 부위원장, 이진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등이 주축이 됐다. 그런데 이들은 재경부 등 경제 관료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정권 초기에 중도하차했고 결국 이헌재·진념 전 재경부 장관 등에게 주도권을 내줬다. 분배와 형평을 강조하던 중경회가 퇴진하면서 김대중 정부의 민주적 시장경제는 미국식 신자유주의로 변질된다.
중경회의 퇴출을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보수적 관료집단의 저항에 학자출신 개혁그룹이 무너졌다는 동정론이 있는 한편으로 이론만 있고 현실감각과 포용력이 떨어졌다는 비판도 있다.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퇴임 직후 인터뷰에서 “장관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하급 공무원들만 10% 이상 잘라내면 효과가 있겠느냐”고 경제 관료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집권을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무렵에는 특히 재경부 인맥, 이른바 모피아 출신의 영향력이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다. 모피아는 재경부(MOFE, Ministry of Finance and Economy)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전반에 걸쳐 이들 모피아에게 의존했다. 이헌재 전 부총리를 중용한 이후 이른바 이헌재 사단이 경제 정책을 쥐고 흔들었지만 노 대통령은 질질 끌려가기만 했다. 모피아의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비난이 나올 정도였다.
재경부 출신 경제 관료들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비롯해 금감위 인선에도 개입했다. 이를테면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을 거친 뒤 금감위 부위원장을 지내고, 산업은행 총재로 갔다가 금감위원장이나 경제부처 장관으로 가는 식이다.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이 그런 경우다. 유지창 전 부위원장은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이고,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금감위 부위원장 출신이다.
재경부 출신이 대기업으로 옮겨가거나 금감원 출신이 금융기관으로 옮겨가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의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에게 국내 금융기관들이 돈을 싸들고 달려온 것은 모피아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밖에 박병원 우리금융지주 회장이나 정문수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이강원 전 한국투자공사 사장, 김규복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정운찬 국무총리 등이 경기고와 서울대 출신, 이른바 KS라인으로 꼽힌다.
이밖에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보증기관인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증권 유관기관인 선물거래소와 증권예탁원, 코스닥위원회, 코스닥증권시장, 한국증권전산, 여신금융협회 등도 모두 재경부 출신이 기관장을 맡고 있거나 맡아왔다. 심지어 비씨카드나 한국신용정보 등 은행이 공동출자해 설립된 회사들도 모두 재경부 출신들이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다.
오죽하면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이 “노무현 정부는 삼성과 재경부와 조중동에 고립돼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정 전 비서관은 “아무런 정책도 신념도 없기 때문에 386 정치인들이 경제 관료들에 먼저 말려들고 청와대를 설득하는 쪽으로 간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최대의 패착은 재경부를 장악하지 못하고 모피아들에게 휘둘려 모피아들에게 경제를 맡겨 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이 간과했던 건 한미FTA가 결국 한국과 미국의 자본이 연대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이다. 경제 관료들은 그 이너써클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성장이 노동자 대중의 이해와 상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노 전 대통령은 간과했다. 노 전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에 편승하는 것 말고 다른 성장의 방법을 알지 못했다. 성장의 한계를 직시하지 못했고 그게 그가 엉터리 성장 신화에 빠져들었던 진짜 이유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이상은 경제 관료들이 쳐놓은 기득권의 장벽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한미FTA와 신자유주의를 부정할 아무런 다른 대안도 없었다. 국민들이 노무현의 대안으로 이명박을 선택한 것은 치명적인 아이러니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의 한계였을 수도 있지만 그가 남겨놓고 간 과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남아있다.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고 신자유주의 디스토피아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물려줄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자본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국경을 넘고 공공부문까지 시장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아직도 정부의 역할이 유효한가, 또는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반문해볼 필요도 있겠지만 자본이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하고 자본의 공격에 맞서 공공의 영역을 지켜내는 것이 막연하나마 실마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