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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의 즐거움.

박래군 선생님과 “인권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릴레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썼지만 이 인터뷰 시리즈는 새롭고도 놀랍다. 우선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벽이 없다. 박래군이라서 그럴 거다. 이들은 속 깊은 이야기들을 쉽게 털어 놓고 박래군은 이들을 다독거린다. 그래서 이 인터뷰는 마치 치유의 의식 같다.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말하면 박래군은 ‘잘 싸우고 있다, 이길 수 있을 거다’고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

두리반 주인의 남편 유채림씨는 “파괴된 일상의 고단함,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고 돌아갈 곳도 없는 막막함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면서 말을 채 잇지 못했다. 늘 씩씩해 보이기만 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이창근씨도 “이제는 더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때서야 피상적으로 이해해 왔던 사건들이 마음으로 다가온다. 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얼마나 둔감한가.

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나 성 소수자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존중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사실 그건 나와 상관 없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1년3개월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현민씨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하는데 꼭 거창한 신념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하고 반문했을 때, 게이 감독 이혁상씨가 “성 소수자들에게 커밍아웃은 운동이고 투쟁”이라고 말했을 때 내 안의 뿌리 깊은 마초 근성과 편견을 다시 발견하게 됐다.

이런 인터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람들 이야기만큼 가슴을 울리는 건 없다. 언론이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더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어설프게 현실을 규정하려 하지 말고 가장 밑바닥부터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합해 조금씩 퍼즐을 맞춰보자. 그때 비로소 현실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게 언론의 역할과 책무가 아닐까.

박래군은 오는 12월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맞춰 인권센터를 건립한다는 야심찬 계획를 추진하고 있다. 인권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 10만명은 되지 않겠느냐는 자신감에서 출발했지만 아직까지 모금 실적은 지지부진하다고 한다. 박래군은 다음 달 1일부터 100일의 기적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100일 뒤 인권센터의 문을 연다는 계획이다. 그가 기적을 이뤘으면 좋겠다. 아직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걸 입증할 수 있도록.

인권센터 홈페이지 바로 가기. http://hrfund.or.kr

(인터뷰의 즐거움이라고 써놓고 보니 이거 참 생뚱맞다. 이창근씨 인터뷰를 정리하고 있는 참인데 2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는 쌍용차 사태를 다시 정리하는 건 사실 굉장히 괴롭고도 답답한 일이다. 현실을 정확히 기록하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해 보지만 이들의 고통을 적당히 포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도 든다. 너무 참담해서 외면하고 싶은 이런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보듬는 박래군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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