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노조 파업이 52일째(20일 현재)에 접어들었다. KBS는 16일째, 연합뉴스는 5일째, 국민일보는 90일째다. 파업 중인 기자와 PD들이 폭로한 편파보도 실태는 충격적이다. “사장 한 명 바뀌었다고 이렇게 망가질 줄 몰랐다”는 게 뒤늦은 탄식이지만 낙하산 사장들의 방송 장악은 체계적이고 집요했다. 간부들은 사장의 눈치를 봤고 비판적인 언론인들이 잇따라 징계를 받거나 퇴출되면서 언론계 전반에 위축효과(chilling effect)와 자기검열이 확산됐다.
MBC PD수첩 PD들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4대강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진중공업 사태,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논란 등은 아예 취재 허가가 나지 않거나 취재 중단 지시가 내려졌고 항의하는 PD는 자회사로 쫓겨났다.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기획안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PD들은 “정말 민감하다고 생각하는 것, 꼭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방송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식의 강압적인 보도통제가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데 있다. PD들은 치욕에 떨고 분노하면서도 숨죽이며 이런 시스템에 적응해 왔다. “쫓겨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정치적인 이슈를 포기하는 일이 많았다”는 고백은 언론의 자유와 공공성이 얼마나 외부의 압력에 취약한가를 드러내는 반증이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은 청와대가 임명한 낙하산 사장과 그의 눈치를 보는 국장과 팀장 선에서 이뤄졌다.
정권 말 언론사 파업이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MBC는 한미FTA 관련 프로그램을 3주 넘게 보류하고 있다. KBS는 장수풍뎅이나 지리산 반달곰 같은 가십성 뉴스를 키우면서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 남편의 기소 청탁 의혹을 단신 처리해 논란이 된 바 있다. KBS 기자들은 “총선 공천 상황을 보도하면서 의도적으로 야당의 갈등을 부각하고 여당의 갈등은 축소하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기자들의 폭로는 더욱 적나라하다. 재판을 받고 있던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를 유죄로 단정 짓는 기사가 쏟아졌고 데스크의 왜곡된 편집에 항의해 ‘이런 기사에 내 이름을 못 넣겠다’고 반발하자 그때부터 ‘법조팀’이라는 크레딧을 달고 송고됐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TV로 생중계 되는데 굳이 우리가 자세히 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지시가 떨어지기도 했다. 기자들은 “톤 다운”하고 “드라이하게 쓰라”는 가이드라인을 받았다.
늦게나마 언론인들을 자극한 건 시민들의 거센 분노였다. 취재 현장에서 공영방송의 카메라 기자들이 두들겨 맞고 쫓겨난 사건은 움츠려있던 기자와 PD들을 깨어나게 만들었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낙하산 사장도 언젠가 물러나겠지만 시청자와 독자들의 신뢰를 잃으면 언론은 버틸 수 없다.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은 낙하산 사장이 아니라 언론 내부의 자기검열이다. 권력에 맞서지 못할 때 언론은 생명력을 잃기 마련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공정언론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드높다. 6개 언론사가 동시다발적으로 파업에 돌입한 지금이 진정한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을 쟁취할 최적의 기회다.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는 것을 넘어 불편부당한 권력 감시와 비판 기능을 회복하고 무엇보다도 정치권력이 언론을 장악하고 여론을 뒤흔드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이명박 정부 지난 4년을 극복하고 이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최선의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