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믿스님을 우연히 만났다. 힐링 멘토로 유명한 혜민스님이 아니라 혜민스님의 패러디 계정으로 유명한 또 다른 트위터 스타 혜믿스님이다. 그저 그런 인터넷 조크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읽지는 않았고 방송까지 출연했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막상 만나 보니 동안의 청년이라 조금 놀랐다. 혜믿스님은 출신학교와 졸업 여부, 나이 등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다.


혜믿스님의 조크는 이런 식이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일찍 시작했다고 망하지 않을 것 같나요?”

“최고의 힐링은 입금이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집에 돈이 많으면.”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너무 큰 비관에 빠지지 마세요. 세상이 비정하고 추악한 곳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세상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니가 잘 나갈 때만.”

“대학생 여러분 이번 학기 망쳤다고 너무 괴로워 마세요. 머지 않아 여러분 학교가 없어질 거거든요.”

“명문대 가봐야 별 거 없습니다. 명문대 가봐야 별 거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한국이 학벌 사회임을 알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참 많이 답답하고 속상합니다. 서울대 나온 사람들이 어서 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할 텐데요.”

혜믿스님의 조크는 허무개그 같지만 진짜 혜민스님과 대비돼 촌철살인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트위터에서는 혜민스님보다 더 인기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유명세를 얻어 최근 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방송에서 그는 “약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내가 봐도 재밌어야 한다, 그리고 시의 적절해야 한다”고 패러디 철학을 밝혔다. “혜민스님을 패러디했지만 애초에 ‘코미디 빅리그’에서 박휘순이 연기한 햇반스님을 보고 시작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트위터 계정이 ‘허망하다(@humanghada)’는 신동엽이 SNL코리아에서 한 말,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허망합니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방송이 끝난 뒤 혜믿스님은 블로그에 남긴 글에서 “구조적 문제에 개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라는 요구가 멘토 현상의 핵심인데, 불교적 가르침이 문제의 원인을 개인 내부에서 찾도록 이용되었던 셈”이라고 ‘허망하다’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유를 밝혔다.

“고성장 시대에 낭만적으로 기획된 미래를 꿈꾸는 교육을 받고 성장한 청년 세대가 막상 저성장 시대에 부딪혔고 그래서 욕망을 버리라고 말하는 불교적 가르침에 끌리는 것 같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이 100만권 넘게 팔리는 현상을 어떻게 보나. 이런 책을 읽고 위안을 받는 젊은이들이 많은 모양인데 혜믿스님은 그렇지 않나.
“뭔가 답답한 데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느낀다. 물론 사회적으로 해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김난도 교수 같은 사람은 ‘너희들 책임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그래, 내 책임이 아니야, 난 열심히 살았는데 잘 안 되고 있는 거야,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다.”

– ‘너희들 책임이 아니다’, 그런 말을 듣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너무 가식적이고 뻔하지 않나.
“가식적이고 뻔하긴 한 데 어차피 답이 없지 않나. 고성장 시대, 세상은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가는데 내가 낄 곳은 없다, 그런 느낌? 그런데 어른들은 그냥 버티거나 이겨내라고 말한다. 싸울 수 있는 대상이 명확하게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런 그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앉아만 있기에는 먹고 살아야 하는데 취업도 좋은 일자리가 드물고. 학자금을 갚을 수 있는 직장을 얻기란 정말 어렵다. 그래서 멘토를 찾고 의지하는 것 같다.”

– 김난도 교수나 혜민스님 같은 사람들이 가짜 멘토라고 생각하나.
“좋은 말이긴 한 데 일단 나는 그런 힐링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난도 교수가 ‘그래, 너희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데 그 다음에 뭐가 나와야 할 텐데, 거기서 끝난다.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건 가짜 위안이다. 듣다 보면 힐링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따져보면 사람들이 그들에게 지혜를 기대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적당히 권위 있는 인물의 배역을 누군가가 맡아주길 바랄 뿐이다. 대학교수이고 스님이고 성공한 스타강사고 그런 사람들이 말하면 뭔가 그럴 듯 하니까. 그 사람들은 그래서 스승이 아니라 연기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실제로 젊은 사람들이 너무 무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문재인이 가장 많이 득표하고도 낙선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아무리 젊은 사람들이 분노해도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다. 정치에서 뭔가 기대할 수 없고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뭘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겠나. 혁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같다. 친구들 만나도 뻔한 충고를 주고 받는다. 사회적 증오가 많아진 것도 이런 무력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그래서 혜믿스님의 메시지는 뭔가. 가짜 멘토들에 속지 말아라? 그 다음은 뭔가.
“공감에서 끝나는 건 소용이 없다, 더 나아가서 해결책과 원인을 찾고 정면으로 부딪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힐링은 오히려 현실을 악화시킨다,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위로 받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는데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당장 혜믿스님도 취업이 가장 절박한 목표 아닌가.
“교직 과정을 공부했지만 교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고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지도 않았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했는데 돈도 없고, 밑바닥부터 시작하려면 엄청난 저임금을 감수하고 몇 년을 버텨야 한다.”

– 어른들은 가리지 말고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서 열심히 하라고 말한다.
“오히려 중소기업이 스펙을 더 많이 본다. 그나마 대기업은 꼼꼼히 적성검사니 뭐니 해서 여러 가지를 따져보고 고르지만 중소기업은 그런 시스템이 안 돼 있으니 학교와 토익, 학점 같은 걸 보고 고른다. 스펙이 안 되면 중소기업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멘토들은 고난이 금방 지나간다고 말하는데 한번 봐라. 경제적 지표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저출산 고령화, 갈수록 더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 그냥 버티라고만 말한다. 그걸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겨낼 수 있으니까.”

혜믿스님은 가짜 멘토들을 비꼬고 끊임없이 힐링의 미망에서 벗어나라고 강조하면서도 힐링에서 깨어나서 다른 무엇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혜믿스님의 냉소에 열광하는 건 한창 세상을 휩쓸었던 힐링이나 멘토 열풍이 끝나가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혜믿스님은 포털 사이트 다음 스토리볼에서 ‘혜믿스님의 킬링캠프’라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킬링캠프는 힐링캠프를 패러디한 말일 텐데 이런 트윗이 눈길을 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지금은 그 실수가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후에 되돌아보면 귀중한 자산이 돼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나중에 성공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Similar Pos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