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는 스팸을 열심히 걸러내고 있지만 블로그 이전의 옛날 홈페이지는 스팸 덩어리가 됐다. 게시판에는 댓글이 2천개 이상 달린 글이 수두룩하다. 빈집 마당에 잡초가 가득한 것처럼, 들여다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데이터베이스가 없고 CGI 파일 형태로 돼 있어서 하나하나 열어보고 댓글을 지워줘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손을 못 대고 있다. 테크노트 최신 버전이나 제로보드로 옮겨볼까 했지만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단 미뤄두고 있는 중인데, 블로그와 별개로 데이터베이스 관리 차원에서 게시판 형태의 홈페이지는 계속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옛날 데이터를 손 보다가 찾아낸 글이다. 2002년 겨울쯤 아닐까 싶은데 이 글을 쓰고 난 뒤 토수는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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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 한겨레신문사 앞에는 밥 먹을 곳을 찾지 못한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다. 사실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늘 밖에 나가 있느라 회사에서 밥을 먹을 일이 많지는 않지만 공덕동 로터리까지 내려가면 모를까 회사 근처에는 먹을만한 밥집이 거의 없다. 잊을만 하면 볶음밥에서 바퀴벌레가 기어나오는 중국집 금정, 음식마다 화학 조미료를 듬뿍듬뿍 아낌없이 끼얹는 시골나라, 차라리 엄마발이나 계모손으로 이름을 바꾸는 게 좋을 듯한 엄마손 정도가 고작이다.

토수도 그 몇 안되는 밥집 가운데 하나다. 마감 때면 멀리 나가기는 곤란하고 근처에서 여기저기 밥집을 고르다 고르다 지칠 때면 우리는 토수를 찾는다. 나는 토수를 굉장히 훌륭한 밥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밥 먹으러 갈 때마다 “토수! 토수!”를 외치는데 나와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이 토수를 싫어할만한 이유는 있다.

지난 목요일 일을 떠올려 보자. 누군가 “우리 밥이나 먹고 하죠”라고 스무번 정도 이야기를 했고 내가 “토수 가자”고 스무번 정도 맞장구를 쳤다. 결국 경숙이가 토수에 전화를 걸었다. 토수는 툭하면 밥이 없다고 밥도 안주는 데라 예약을 안하면 헛걸음을 하는 수가 있다. 주인 아저씨는 이날 밥은 얼마든지 있고 특별히 민물 새우탕까지 끓여주겠다고 해서 우리를 기대에 들뜨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날은 뭔가 다를줄 알았다. 미리 예약을 하고 왔고 아저씨는 듣도 보도 못한 민물 새우탕을 끓여주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니까.

역시 이날은 시작부터 뭔가 달랐다. 토수는 황토 바닥에 거적때기 같은 걸 깔아놓고 그 위에 털썩 주저 앉는 구조다. 나무 둥치를 잘라 만든 것 같은 커다란 상이 서너개 놓여 있다. 이 날은 썰어놓은 두부 한모가 먼저 나왔고 젓가락질 몇번에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예약을 하고 오기 잘했다고 생각할 무렵, 왠걸, 아저씨는 밥통을 열어보더니 밥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그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결국 이날 반찬은 꼴뚜기 무침에, 콩 조림, 늘 먹는 갓 김치, 그리고 오늘의 스페셜, 배추 잎사귀와 된장이 전부였다. 나온다던 민물 새우탕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몇일 전에 사놓은 민물 새우가 냉장고에 있는 줄 알았는데 다 먹어버린 것 같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호준이는 집에서는 먹으라고 해도 안먹는 것들을 여기와서 돈 주고 사먹게 됐다고 투덜거렸다. 원재 형도 빨리 먹고 나가서 순대나 사먹어야겠다고 내내 투덜거렸다. 우리는 별 수 없이 배추 잎사귀에 된장을 찍어 아삭아삭 씹어먹었다. 그것도 조금씩 아껴가면서. 결국 밥 다섯 공기를 여섯명이 나눠 먹어야했다.

그래도 나는 토수가 좋다.

토수는 조금씩 밖에 안주긴 하지만 밥이 맛있다. 좋은 쌀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맛있는 밥은 밥집의 기본인데 그 기본도 안돼있는 밥집들이 너무 많다. 토수는 또 몇가지 안되긴 하지만 반찬도 모두 담백하고 맛깔스럽다. 태만한 태만은 반찬이 너무 쓰다고 말했지만 그건 태만의 입맛이 화학 조미료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토수에서 밥을 먹으면 어릴 때 시골 외갓집에서 먹던 밥맛이 난다. 먹고 나면 온 몸에 힘이 솟는 걸 느낄 수 있다. 화학 조미료로 범벅한 온갖 쓰레기들을 잔뜩 집어삼켰을 때 느끼는 더부룩한 느낌과 다르다.

국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토수 아저씨가 이야기하듯 별로 좋은 습관은 아니다. 국은 위와 장에서 나오는 소화효소를 묽게 만든다. 먹을 때는 잘 넘어가겠지만 몸이 힘들어진다. 기껏 잘 먹고도 소화도 못시키고 그대로 똥으로 내보내는 수도 있다.

밥 먹고 난 다음 물을 들이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입을 헹굴 정도만 마시는 게 좋다. 밥 먹기 전에 마시는 건 차라리 좋다. 뱃속을 깨끗이 씻어내고 음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도록 만드니까. 그렇게 평소에 물을 여러번 많이 마시는 건 좋지만 밥 먹으면서 마시거나 밥 먹고 난 다음 마시는 건 정말 바보 짓이다. 건강은 곧 건강한 소화를 의미한다. 건강을 지키려면 물을 제때 가려 마시는 게 좋다.

내친 김에 건강 상식을 하나 더 이야기하자.

맛있는 음식을 골라먹는 것도 좋다. 어떤 음식이 맛있다는 건 내 몸이 그 음식을 바란다는 이야기다. 거꾸로 맛이 없다는 건 내 몸이 그 음식을 바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굳이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몸에 안좋을 수도 있다.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 그것이 건강의 첫번째 조건이다. 내 몸이 뭘 바라는가 귀를 기울여봐라. 아무 음식이나 닥치는대로 집어삼키고 있지는 않은가. 좀더 까다롭게 밥집을 고르고 좀 더 까다롭게 음식을 시켜도 좋지 않을까.

어제는 토수 아저씨가 난데 없이 꿈에 나타났다. 생각만 해도 아찔할만큼 높은 절벽이었는데 세상에 나보고 번지점프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거, 건강에 좋습니다. 일단 드셔보시라니까요.” 어이쿠.

원래 이름은 ‘토수가 시를 쓰네’다. 밥 값은 한끼에 5천원. 메뉴는 없다. 그냥 주는 대로 먹으면 된다. 벽과 바닥에는 황토가 깔려있고 늘 93.1메가헤르쯔 케이비에스 1에프엠 라디오의 고전음악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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