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기본 권리를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법무부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민 대부분이 한국은 법과 질서보다 떼를 쓰면 된다거나 단체 행동을 하면 더 통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정치적·이념적 목적의 불법 파업은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매일경제는 1면 머리기사로 ‘상습 시위꾼 끝까지 책임 묻는다’는 제목을 뽑았다. 매일경제는 “국민 대부분도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보다 떼를 쓰면 된다, 단체 행동을 하면 더 통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이 대통령의 말을 비중있게 전했다.

이날 매일경제 1면에는 “이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핫라인을 오늘 개통한다”는 소식이 함께 실려 있다. 청와대는 “경제단체 등과 협의해 1차로 선정한 기업인 102명에게 20일부터 핫라인 전화번호를 개별 통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업에는 철저하게 ‘프렌들리’, 노동자들에게는 전후 맥락을 따지지 않고 무관용 원칙을 강조하는 이 대통령의 편향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을 이 신문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신문은 20일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이른 바 ‘떼법’ 행태 청산을 위해 ‘법질서 파괴 행위에 대해서는 사태가 종료된 뒤에도 끝까지 상응한 책임을 묻는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견지하고 정당한 공무집행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면책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각종 집회에 참석해 폭력을 일삼는 상습 시위꾼을 가려내고 불법 폭력 집회와 정치 파업의 주동자 및 배후 조종자를 끝까지 추적해 엄단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또 “해마다 불법 집회 시위로 12조3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등 법 절차를 위반한 노사 관계로 인해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감소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과 김 장관의 발언, 그리고 이들 보수·경제지들의 호들갑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과격·폭력 시위는 법에 따라 처벌해야겠지만 노동자들의 단체 행동을 떼법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헌법 제33조 제1항)”

헌법 제33조 제1항에 명시된 노동 3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노동 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 조직을 결성하고(단결권) 그 조직의 이름으로 교섭을 하고(단체교섭권) 그 교섭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아니할 경우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단체행동권)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언론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떼를 쓴다’고 표현하고 비난한다. 노동 조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문제삼지 않고 ‘상습 시위꾼’으로 매도한다. 개별 사업장의 이해관계를 넘어선 노동자들의 산별 연대를 정치적·이념적 목적의 불법 파업으로 규정짓는다.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이외의 다른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까.

헌법은 노동자의 단체행동이 법령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한 이를 보장하고 사용자도 이에 수반되는 손해를 감수하도록 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은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으로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감소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언론은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할 뿐, 비정규직과 질 낮은 일자리가 확산되는데 따른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는다.

언론은 불법 시위나 집회, 파업이라는 표현을 남발하지만 노동자들의 시위와 집회, 파업은 헌법과 법률로 보장돼 있다. 다만 과거 노무현 정부는 집회 신고를 정당한 이유 없이 불허하는 경우가 많았고 집회 현장을 원천 봉쇄해 불필요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직권중재제도라는 단체행동권 자체를 부정하는 위헌적인 제도는 결국 폐지됐지만 필수업무유지제도라는 더 문제가 많은 제도를 신설하기도 했다. 불법 시위나 집회, 파업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가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언론은 지적하지 않는다.

Similar Pos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