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발전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차별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국 경제는 장기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집적과 집중이 필요하다.”

좌승희 전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이 환경정의 주최 대안사회포럼에서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며 꺼낸 이야기다. 좌씨는 불평등한 나라가 잘 살고 큰 기업이 많은 나라가 잘 산다는 논리를 폈다. 평등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바둑판에 비교하기도 했다. 칸마다 평평하게 돌을 채우는 게 좋은가 아니면 특정 거점에 돌을 집중해 힘을 모으는 게 좋은가 하는 질문이었다.

좌씨는 대표적인 시장주의자로 꼽힌다. 되는 놈 발목 잡기가 나라를 망친다는 지론을 줄기차게 외쳐왔고 지난해에는 성매매방지법을 좌파적 정책이라고 비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박정희 재평가를 주장하는가 하면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반시장 논리에 물들어 있다고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이날 좌씨의 주장은 단순명쾌했지만 구태의연하고 맹목적이었다. 발제가 끝나고 이어진 토론에서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좌씨는 3년 이동평균을 낸 GDP 증가율을 기초로 1988년 이전과 이후를 나눴다. 추세선의 기울기가 0.037과 -0.302로 확연하게 나뉜다. 1988년을 계기로 경제의 역동성에 변화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좌씨는 이렇게 가다가는 10년 안에 성장률 0%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성장률은 올해 1분기 2.8%에 그친 것을 비롯해 연간 4.1%에 그칠 전망이다. 좌씨는 차별화 전략을 거듭 강조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세상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시장도 그렇고. 이게 발전의 원리다. 선진화된 나라들 잘 보면 이 이치가 시회 모든 부분에 작동된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돕는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 발전의 과정이다.”

좌씨는 정부의 평등주의 정책을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평등주의 정책이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는 주체를 역차별하기 때문에 역동성을 해치고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음지에 있는 사람을 양지로 나오게 해야할 텐데 최근 정부 정책은 양지에 있는 사람들마저 음지로 가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절대빈곤층에게는 특별배려가 필요하겠지만 음지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스스로 돕는 자를 더 우대해 모두 양지로 나올 수 있도록 유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좌씨는 실패했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큰 평등주의 정책으로 산술적이고 획일적인 지역균형 정책과 중소기업 정책, 대기업 규제, 차별화에 기초하지 않은 연구개발 지원, 비정규직 대책,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신용불량자 대책 등을 꼽았다. 이밖에도 남녀 동수의 정당명부제, 교육 평준화 정책, 언론산업 규제 정책 등에 대해서도 직설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좌씨는 기득권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력갱생과 자수성가한 성공한 사람들을 역차별하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스스로 돕지 않은 자를 돕는 정책은 음지를 벗어날 동인을 없애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의 역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좌씨는 경제발전의 해법으로 트리클 다운 효과를 주목했다. 앞서가는 경제주체가 잘 되면 그 영향이 아래로 확산되면서 모든 경제주체가 동반 성장하게 된다는 논리다. 좌씨는 양극화 문제도 트리클 다운 효과의 관점에서 해법을 찾는다. 자본 잉여부분에서 자본 부족부분으로 트리클 다운을 막는 규제 때문에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좌씨는 보다 적극적인 투자자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좌씨는 집중 개발을 통해 환경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균형·분산개발이 오히려 환경파괴를 광역화시킨다는 논리다. 좌씨는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 되면 깨끗한 환경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다며 환경파괴를 최소화하려면 환경재에 대한 개인 소유권을 확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에 나선 강수돌 고려대 교수는 좌씨의 주장을 내부 제국주의로 평가절하했다. 강 교수는 일본이나 영국이 식민지를 원료 공급지와 시장으로 활용했던 사례를 거론하며 경제·사회적 기득권 집단이 다른 집단을 억압하는 과정을 합리화하는 좌씨의 주장이 과거 제국주의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트리클 다운 효과를 부정했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 트리클 다운 효과는 환상이라는 이야기다.

“양극화는 엘리트중심주의와 시장만능주의의 산물이고 그 구조를 허물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자본은 저이윤 부분에서 고이윤 부문으로 이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고이윤만 찾다보니 자본의 속성 자체가 필연적으로 양극화를 초래한다. 정부 규제는 안전과 환경, 보건, 인권 등 여러 측면에서 삶의 질 향상에 필요하다면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 정당하다.”

강 교수는 또 집적과 집중이 환경파괴를 최소화한다는 좌씨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집중과 집적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계속 확산되고 모든 곳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요즘은 오히려 환경이 좋은 곳을 골라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상품화하는 추세다. 강 교수는 서울 서초구의 우면산 트러스트를 예로 들면서 환경 보호는 오히려 개인 소유권을 해체하거나 공동 소유권을 확립할 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농민들과 노동자들의 희생을 보지 못하고 수출 규모만 보고 성공을 이야기하는 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량 실업을 받아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강 교수는 우리 사회에 불행과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건 우리 모두가 땅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땅에서 멀어지고 땀을 흘리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문제가 실업이라는 이야기다.

강 교수는 좌씨의 엘리트주의적 발상이야말로 사회 발전에 해롭다고 지적했다. 좌씨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시장경제야말로 스스로 돕는 사람이나 스스로 돕는 사회를 무지막지하게 파괴하며 확장해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강 교수는 또 차별화가 발전의 필요조건이라는 논리는 차별과 불평등을 미화하거나 은폐할 소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역시 토론자로 나선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좌씨가 경제발전의 논리를 과도하게 일반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트리클 다운 이론은 근대화 하향적 발전 모델에서 설정된 가설일뿐 현실에서는 확인이 안됐다고 덧붙였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도 “기회의 평등으로는 부족하고 과정의 평등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출발선이 같다는 이유로 부조리와 반칙 등 중간 과정을 모두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좌씨는 “강 교수 같은 목가적 이상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끌고 가면 나라 망하겠다”고 강하게 맞받아쳤다. 좌씨는 “경제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며 “반박하려면 제대로 팩트와 데이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좌씨는 또 “기회는 절대 평등하지 않다”면서 “노력한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걸 부정하면 어떻게 세상을 살겠느냐”고도 했다.

이날 3시간에 걸친 열띤 토론은 전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좌씨가 내놓은 대안은 전혀 새로운 대안이 아니었고 시장주의와 환경주의는 어설프게 원론을 주장하며 겉돌았다. 이정전 환경정의 대표는 좌씨를 가리켜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시대가 좌 박사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우스개소리를 건넸다. 좌씨는 토론 참석자와 청중의 성향을 의식한듯 발제 도중 거듭 “죄송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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