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 “오피니언 리더 500명에 집중, 강력한 의제 설정으로 차별화한다.”
메디치미디어는 센세이셔널한 이슈를 많이 만들어내는 출판사다. 김현종 대표가 미디어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먼저 들었던 생각은 돈 좀 벌었다더니 여유가 있나? 하는 정도였다. 김 대표가 구상하고 있는 ‘피렌체의 식탁’의 컨셉을 듣고는 역시 김현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모하면서도 과감하고 센세이셔널한 기획이다.
메디치미디어가 올해 1월 출간한 ‘세상을 바꾸는 언어’는 출간 이전부터 화제를 불러 모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양정철씨의 책이다. 한겨레 기자가 일본 도쿄까지 찾아가 양씨를 만났는데 양씨는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 (권력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자고 했다”면서도 “언제까지 외국에 떠돌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가끔 회의도 든다”고 말했다. 도쿄의 아파트도 미리 받은 책 계약금 등으로 빌렸다고 했다.
은둔해 있는 양씨를 양지로 끌어내고 이슈의 중심에 서게 만드는 게 메디치미디어의 힘이다. 며칠 뒤 양씨가 입국했을 때는 기자들이 공항까지 몰려들었다. 양씨가 말을 아낄수록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출판기념회는 유례없는 성황을 이뤘다.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과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민병두·김병기 의원 등이 참석했고 행사 도중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메디치미디어의 최대 베스트셀러는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시작해 노무현 전 대통령 때까지 청와대 연설 비서관을 지낸 강원국씨의 ‘대통령의 글쓰기’다. 2014년에 출간된 이 책은 2016년 박근혜 국정 농단 사태와 맞물려 판매가 급증하면서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았다. 업계에서는 ‘대통령의 글쓰기’ 한 권이 메디치미디어를 먹여살린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최근 출간한 ‘강원국의 글쓰기’도 순식간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독일 총리를 지낸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자서전 ‘문명국가로의 귀환’을 출간하면서 직접 슈뢰더 전 총리를 초청해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부터 시작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대담을 주선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나눔의 집’ 방문과 영화 ‘택시 운전사’ 단체 관람 등 빅 이벤트를 쏟아냈다. 슈뢰더 전 총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됐고 생맥주 뒷풀이까지 화제가 됐다. 출판사 차원의 기획으로는 스케일이 남달랐다는 평가였다.
김현종 대표는 월간 샘이깊은물 기자로 시작해 일요신문과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를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정무수석실 국장을 지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에는 TV 토론 대책반장을 지내기도 했다. 노무현 당선 이후에는 전북 전주 소재 일간지 새전북신문의 사장을 지냈다. 기자 경력과 청와대 시절 다져놓은 네트워크가 고스란히 메디치미디어의 저자 리스트로 이어진 셈이다.
김당의 국가정보원 연작도 화제가 됐지만 고병권과 우석훈, 전성은, 고 남경태 등 인문학 서적도 많이 내고 있다.
김현종 대표와 인터뷰는 지난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진행했다. 다음은 창간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김현종 대표와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글=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 출판도 미디어다. 메디치미디어에서 만들겠다는 새 미디어는 어떤 것인가.
“뉴스와 출판의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디어는 첫째, 작고, 둘째, 강한 미디어다. 일단 작은 미디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큰 신문사들은 고용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기 위해 타협을 해야 한다. 생존을 위해 팩트나 관점을 비틀어야 할 때가 많고 진영 논리가 가세하면 너덜너덜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고용을 최소화하고 지출을 최소화하는 게 독립적인 미디어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될 수 있다. 지금 인터넷 신문을 만들면 기자 몇 명 뽑아서 박봉에 취재 현장을 굴리면서 결국 광고에 목을 매게 될 거다. 그런 방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작지만 강한 미디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출판사를 10년 하면서 단행본이 240종에 모두 180만 권 정도를 팔았다. 우리에게는 좋은 콘텐츠와 최고의 필진이 있다. 단행본과 온라인 기사의 중간 단계, 롱폼 스토리텔링이지만 시의성 있게 어젠다 파이팅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포맷이 가능할 거라고 본다. 평화통일과 외교, 안보가 주력이 될 것이고 경제와 산업, 금융, 노동, 문화예술과 IT(정보기술)까지 분야를 확장할 계획이다. 정세현 전 장관이 자문위원을 맡고 있고 분야별로 자문위원을 대여섯 명씩 두려고 한다.”
–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다. 어떻게 차별화를 할 것인가.
“남들 다 쓰는 기사에 묻어가는 걸로는 영향력이 생길 수가 없다. 언론의 역할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보면 첫째, 사실 전달과 둘째, 논평과 해설, 셋째, 전망인데 우리는 사실 전달은 포기했다. 검사의 기소 독점권은 남아있지만 기자의 기사 독점권은 사라진지 오래다. 논평이나 해설은 진영 논리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고 스펙트럼도 넓지 않다. 전망이 남아있는데 돈이 많이 든다. 고급 인력을 투입해야 하고 깊게 파고 들어야 한다. 경제연구소나 종합연구소 정도가 가능할 거다. 심층 취재도 마찬가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대안 솔루션, 어젠다와 담론이 있는 미디어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것도 생각해 보자고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느낌으로.”
– 대상이 누군가.
“대중 매체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가장 강력한 의사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500명을 타깃으로 한다는 전략이다. 청와대를 포함해 국회의원과 장관, 차관, 법원장급 판사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최고 권력자들에게 이메일과 카카오톡 등으로 쏘아주는 방식이다. 큐레이션 서비스고 미국의 악시오스, 이메일 뉴스레터로 스킴을 연구했고 동영상 스토리텔링으로 카스피안 리포트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몇 백만 명이 읽어야 힘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런 건 잘 하는 사람들이 하면 되는 것이고 우리는 정책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최상위 엘리트들이 독자들이다.”
– 결국 퀄리티가 중요할 것 같다. 뭘 어떻게 다루느냐가 관건이 될 거다.
“사실 전달과 논평과 해설 분석과 전망까지 할 수 있으면 퍼펙트한 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자를 하다 그만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정무수석실에서 정국 종합 보고서를 만들었다. 대통령의 참모가 막연한 전망을 늘어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뭘해야 할까. 전문가들 이야기를 적당히 수집해서 받아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방향을 제시하고 원투쓰리 스탭을 제안해야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말기에 27개 경찰서 정보과 과장이 호남 출신이 한 명도 없더라, 그런데 1998년 말이 되니 20명으로 늘었더라.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 할까. 편중을 해결한다고 다른 편중을 만드는 셈이다. 청와대 보고서는 단순 사실 전달 뿐만 아니라 대책을 제안하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 기자 시절 하던 것처럼 사람 만나서 메모하고 글 쓰고 대책을 고민했다. 책을 가장 많이 사고 많이 읽었던 때가 그때였다. 신문 기사에 난 걸로는 안 되니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정책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찾고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저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만나자고 하면 대부분 만나준다. 전문가들이지만 맞는 말인지 판단하는 게 내 일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이렇게 하니까 케파(capability, 역량)가 넓어지는구나. 나는 괜찮은 스탭이었다고 자부한다.”
– 청와대 보고서 만들던 노하우로 정책 제안을 하고 싶다는 건가.
“노무현 전 대통령 후보 시절에 TV토론 대책단 단장을 맡았다. 넥타이 색깔이나 표정이나 이런 건 1% 밖에 안 된다. 정책적 상황과 정치적 상황을 분석해서 스트레이트처럼 두괄식으로 300자에서 500자 정도로, 입말로 중학교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게 핵심을 짚고 메시지를 압축하는 게 내가 한 일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는 실수가 많았는데 토론은 잘 했다. 우리 팀이 80명 정도였는데 상대 후보의 워딩을 분석하고 우리 후보의 장점과 약점을 분석하고 향후 워딩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어학 공부할 때 하는 것처럼 리딩 카드를 800장 정도 만들었다. 쉽게 핵심부터, 어떻게 하면 상충되지 않게 새로운 생각을 간명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행정 수도 이전도 리딩 카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확대된 것이다. 그때 경험을 살려보고 싶다. 기자로 살고 정치에 뛰어들어 정책 기획도 해봤고 출판업으로도 크고 작은 성과를 만들었다. 이제는 대안을 만들고 제안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 정말 악시오스와 비슷한 컨셉이 될 것 같다. 물론 컨셉을 흉내낼 수는 있지만 그 정도 퀄리티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메시지도 강력해야 하지만 스토리텔링부터 새로워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리딩 카드처럼 만들겠다고 한 거다. 인사이트를 압축적으로 전달하겠다는 거다. 전달 방식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클로즈드 그룹이나 뉴스레터가 고급 정보의 유통 수단으로 매력이 높아지는 것 같다. 오피니언 리더 500명이라는 컨셉도 그래서 중요하다. 어느 정도 입소문이 나면 메일링 리스트에 넣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할 거라고 본다.”
– 500명의 리스트는 확보됐나.
“어느 정도 확보했다. 우리는 플랫폼을 만들려는 게 아니다. 500명도 목표가 아니라 그 정도 수요가 있을 거라고 본다는 의미다. 공개와 비공개를 섞어 최소 몇 천 명 정도에게 쏘겠지만 당연히 도달률이 100%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열어보지 않더라도 좋은 걸 찾는 사람들에게 도달될 거라고 보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다. 다이어트 책을 100만 권 파는 것보다 우리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실제로 권한이 있는 500명의 10%라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 유료로 가나.
“상위 1%는 충분히 지불 의사도 있을 거라고 본다. 그렇지만 일단은 프라이빗하되 무료로 간다. 1주일에 아티클 2개 정도만 메일과 카톡으로 발송한다. 한겨레 기자 출신 한승동이 편집인을 맡는다. 메디치미디어 입장에서는 크게 비용이 드는 건 아니지만 장기 투자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 ‘피렌체의 식탁’이란 제호는 좀 모호하게 들린다.
“우리의 잠재 독자들은 정보가 많은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고급 정보와 인사이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메디치 가문이 이탈리아의 외교관과 시인과 화가와 철학자들이 자연스럽게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생각의 시너지 효과가 튀어 나오는 그런 메디치 이펙트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슈뢰더 자서전 제목이 문명 국가로의 귀환이었는데 나는 내가 만드는 미디어가 우리 사회가 문명 사회로 거듭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창간 취지라고 할 수 있다. 하영선은 그걸 매력 국가라고 불렀고 박세일은 선진국 담론이라고 말한다. 이름은 뭐가 돼도 좋다.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미디어를 만들어 보고 싶다.”
– 창간은 언제인가.
“시험호를 3호까지 낼 것이고 8월 중에는 창간호가 나올 거라고 본다.”
leejeonghwan.com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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