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출신 프랑스 감독 마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애니메이션이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때는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종교 지도자인 호메이니가 집권에 성공한다. 그러나 혁명과 민주주의에 대한 들뜬 기대도 잠깐, 부패하고 타락했던 팔레비 정권 못지않은 군부 독재 정권의 폭압이 시작된다. 호메이니는 이란을 이슬람 근본주의에 뿌리를 둔 강력한 신권 통치 국가로 만들었고 이에 반대하는 8천명 이상을 처형했다.
호메이니는 여성들에게 히잡을 둘러쓰도록 하고 술과 음악, 춤 등을 금지 시킨다. 남녀 공학도 폐지되고 남녀가 손만 잡아도 잡혀갈 정도로 엄격한 종교적 윤리 규정을 도입한다. 종교 지도자들이 의회로 진출했고 최고 지도자에게는 삼권분립을 초월한 지위가 부여됐다. 총을 든 군인들이 삶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감시하고 통제했다.
주인공 마잔은 꼬마 여자애다. 공산주의자인 마잔의 할아버지는 팔레비 왕조에 저항하다 감옥에 갇혀 그곳에서 죽었다. 마잔의 삼촌 역시 9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이란 혁명 이후 풀려난다. 호메이니를 보고 삼촌은 “모든 혁명은 과도기를 거치게 돼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삼촌은 다시 잡혀가서 결국 죽는다.
마잔은 하느님에게 묻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죠?” 하느님은 대답한다. “악인들은 언젠가 죄 값을 치를 거다. 정의에 대한 믿음을 가져라.”
삼촌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한 사람 면회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마잔을 부른다. “두고봐라, 언젠가 프롤레타리아가 세상을 지배할 거다.” 삼촌은 끝까지 희망과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1년 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한다. 호메이니는 전쟁을 핑계로 반대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한다. 팔레비 시절에는 정치범이 3천명이었는데 호메이니가 집권하면서 정치범이 30만명으로 불어났다. 마잔은 하느님에게 소리친다. “조용히 해! 삼촌이 죽었는데 당신은 아무 일도 안했어! 시끄러! 다시는 당신 보고 싶지 않아!”
마잔의 부모는 마잔의 정의감이 두렵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사형을 시킬 수 없어서 처녀성을 빼앗은 다음에 처형하는 일도 벌어졌다.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혼한 여성은 아무나 건드려도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통념이 병존하는 이상한 사회와 이상한 시대였다. 마잔의 부모는 마잔을 외국으로 보내기로 한다.
마잔이 떠나기 전날 할머니는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나쁜 놈들을 만나게 될 거다. 기억해라, 그들을 악마로 몰아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그러면 넌 그들의 더러움에 대응할 기회를 잃게 돼. 비통함과 복수심만큼 쓸데없는 것도 없기 때문이지. 너 자신을 항상 가치 있게, 진실하게 가꿔라. 두고 봐, 모든 게 잘 될 거야. 울지 말고, 네 미래만 생각해.”
이 영화는 이상한 사회와 이상한 시대를 견뎌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대부분의 우리는 혁명가가 아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우기 보다는 그냥 분노하고 슬퍼하고 견뎌낼 뿐이다. 도망가거나 외면할 뿐이다. 변화는 더디고 느리다. 진보가 아니라 퇴보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더 많다.
마잔이 오스트리아에서 보낸 시절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할 정도다. 그는 그곳에서 안전했지만 영원히 이방인이었고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반복했다. 이 이야기는 애초에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야기다. 어른이 된 마잔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이란으로 돌아온다. 공항에서 마잔은 다시 히잡을 뒤집어 쓴다.
돌아온 마잔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전쟁이 끝났으니 밝은 미래가 올 수도 있을 테지. 전쟁은 확실히 끝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8년 간의 전쟁이 있었는지 잊고 있어. 서방세계가 이란, 이라크 양쪽에 모두 무기를 팔았고 이런 게임에 빠져든 우리는 참 어리석었지. 얻은 게 없잖아. 백만명이 죽어서 얻은 게 없어.”
휴전 직전에 호메이니는 정치범들에게 마지막 제안을 했다. 독재에 충성하거나 아니면 죽거나. 그들 대부분은 죽음을 선택했다. 어머니는 말한다. “거리 이름이 희생자들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유족들에게 남은 거라곤 거리 이름 뿐이야. 테헤란 거리를 걷다보면 공동묘지에 온 것만 같아.”
집안에서는 히잡을 벗으라는 할머니에게 마잔은 말한다. “입고 있는지도 잊어버리곤 해요.” 그런 마잔에게 할머니는 말한다. “잊지 마라. 자아를 잃게 하는 건 두려움이야. 그 때문에 우린 겁쟁이가 되고 말지. 넌 용기가 있어. 네가 자랑스럽다.” 그러나 마잔은 끊임없이 탈출을 꿈꾼다. 탈출하지 않으면 도대체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90년대 초반, 거대한 이상의 시대는 갔다. 혁명 후, 정부는 수많은 학생들을 투옥했고 우린 정치를 논할 엄두조차 못 냈다. 그렇게 전쟁은 완전히 지나갔다. 우린 미친 듯이 행복을 찾아 헤맸고 그 때문에 우리가 자유롭지 않다는 걸 잊어버렸다.” 마잔은 다시 프랑스로 떠나기로 한다. 떠나는 마잔에게 아버지는 “돌아오면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마잔에게 말한다. “내 딸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할 일이 많이 있잖니. 일어나서 밝게 빛나거라. 가서 네 할일을 하거라. 싸움은 계속된다, 잊지마!”
이 영화는 굳이 마잔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변화에 대한 희망을 억지로 꾸며내지도 않는다. 흑백의 화면만큼이나 마음을 무겁게 만들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그래도 꿋꿋이 견뎌내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마잔에게 “돌아오면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할지언정 이들은 여전히 변화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남아서 끝까지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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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사코의 만화와 더불어 같이 즐겨보았던 만화책이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왔군요. 저도 1권만 보고, 2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왔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