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가 삼성과 갈라섰다. 지난달 26일의 일이다. 소니는 샤프와 제휴를 체결하고 10세대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라인에 1천억엔을 공동 투자하기로 했다. 그동안 삼성과 합작 공장을 운영해 왔는데 갑자기 양다리를 걸치기로 한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국내 언론의 반응이다.

문화일보는 “삼성 때문에 위기감을 느껴온 소니가 이번 삼성 특검 사태를 빌미로 제휴선을 샤프로 돌린 것”이라는 익명의 업계 전문가의 말을 인용했다. 한국경제는 “소니의 이탈은 주요 경영진들이 특검 수사에 발목을 잡히면서 해외 주요 거래선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생긴 결과”라면서 “앞으로 남은 특검 수사 기간에 또 어떤 거래선이 이탈할지 벌써부터 걱정된다”는 익명의 그룹 고위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헤럴드경제는 한술 더 떠서 “결국 이번 문제는 이건희 회장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소니 수뇌부를 만나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삼성 안팎의 공통된 목소리”라면서 “이 회장이 특검 등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태에서 눈 앞에서 소니를 놓쳐 버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매일경제는 위기감을 더욱 부채질했다. “5조원의 국내 투자효과가 사라진 것은 물론 새로 창출될 수 있는 일자리 5천여개도 함께 날아가고 생산 라인 증설에 필요한 부품 업체 설비 발주라는 후방 효과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 매일경제는 “한국 업체 입지가 흔들릴 위기에 처해 있다”거나 “차세대 LCD에서 일본의 추격을 허용할 가능성이 불 보듯 뻔하다”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27일 칼럼 <소니는 바보가 아니다>에서 “소니를 불러들이는 방법은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아주 명쾌하다”면서 “샤프와 일본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선우정 특파원은 이어 “이걸 못하면 앞으로 한국은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면서 “삼성이 일본으로 떠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관련 기사는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다. 문화일보는 4일 “물론 차명계좌를 통해 만든 비자금으로 정관계에 로비했다는 의혹은 수사를 통해 철저하게 규명해야 할 일이지만 삼성전자가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한 복판에서 의사 결정 라인이 멈춘 현 상황은 엄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위기감이 너무 높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흥미롭게도 세계일보는 5일 16면에 이 문장을 한 글자도 다르지 않게 그대로 다시 인용했다. 서울경제도 5일 1면 <한국 반도체가 포위당했다>에서 “특검 수사로 삼성전자의 경영 판단이 마비돼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파이낸셜뉴스는 5일 13면 <삼성 중소협력사 특검 후폭풍>에서 “삼성 특검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미루면 선행 투자를 한 중소 협력업체들은 도산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분히 ‘비즈니스 프렌들리’ 성향의 이들 언론은 삼성과 소니의 결별이 삼성의 LCD 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면서 그 원인으로 삼성 특검과 경영 공백을 꼽았다. 언론은 한 목소리로 최대한 빨리 특검 수사를 마무리하고 삼성을 정상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호들갑과 달리 삼성과 소니의 결별은 당장 심각한 타격도 아니고 결별의 원인이 특검의 탓은 더더욱 아니다.

먼저 주목할 부분은 LCD 산업이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어 삼성이나 소니나 LCD TV를 만드는데 필요한 패널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연간 2170만대의 TV를 만드는데 이 가운데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패널이 820만대, 37.8% 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CMO(30.0%)와 AUO(20.7%), CPT(2.3%) 등 대만 회사들에서 들여온다.

소니 역시 1920만대 가운데 삼성전자에서 1130만대, 58.9%를 조달하고 나머지는 이들 회사에서 들여온다. 삼성전자는 소니에 공급할 패널은 물론이고 삼성전자 자체적으로 쓸 패널을 공급하기에도 부족한 상황이다. 소니 입장에서는 당연히 공급 라인을 늘릴 필요가 있다. 결국 소니가 샤프와 손을 잡은 것은 삼성전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소니 입장에서는 패널 구매처를 다변화하고 조달 비용을 줄이는 현실적인 선택이고 샤프 입장에서도 소니라는 확실한 판매처를 확보하는 셈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소니와 샤프가 생산 라인을 확충하고 삼성전자에 의존도를 줄이게 되면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독자적으로 설비 투자를 해야 하고 일본 업체들과 경쟁에서 가격 협상력이 밀리게 된다. 그러나 당장 소니가 삼성전자에 완전히 발을 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올해 3분기에 가동될 8-1-2라인에서도 구매를 더욱 늘릴 계획이다. 하나대투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와 소니의 협력관계는 아직은 아무런 이상징후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소니의 양다리 걸치기가 특검 탓이라고 보는 것은 그야말로 견강부회에다 터무니없는 억지다. 만약 이건희 회장이 특검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소니를 붙잡을 수 있었을까. 여러 변수를 열어 두고 따져 봐도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삼성은 LG전자나 LG필립스LCD 등과 제휴 또는 합작을 모색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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