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펀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장하성 펀드는 고려대학교 장하성 교수가 만든 사모펀드를 말한다. 원래 이름은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 조세회피지역인 아일랜드에 등록돼 있고 운용은 미국의 라자드에셋매니지먼트라는 회사가 맡고 있다. 펀드 규모는 1300억원. 버지니아대학과 조지타운대학 재단, 하나금융지주 등 국내외 10여개 기관 투자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펀드가 대한화섬의 지분 5.15%를 확보하고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이름조차 낯선 이 회사가 갑자기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됐다. 장하성 펀드가 이 회사에 주목한 것은 자산가치가 4600억원에 이르는데 시가총액은 5분의 1 수준인 800억원 밖에 안 되기 때문. 태광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은 순환출자와 내부거래 등으로 주가가 저평가 된 상태다. 이런 부분만 바로 잡아도 주가가 크게 뛰어오를 거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이 펀드가 처음 대한화섬의 주식을 사들인 것은 4월 7일, 그 뒤 8월 22일까지 45차례에 걸쳐 사들인 주식은 모두 6만8406주, 금액으로는 48억9723만원에 이른다. 평균 매입 단가는 7만1591원이었다. 장하성 펀드가 이 사실을 발표한 때가 8월 23일이었고 주가는 6만5400원에서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해 8월 31일에는 14만1500원까지 두 배 이상 뛰어올랐다.
여기서 잠깐, ‘5% 룰’이라는 걸 설명할 필요가 있다. 어떤 회사의 주식을 5% 이상 사게 되면 5일 이내에 금융감독원에 신고해야 하는 규칙이다. 주식을 한꺼번에 사들이면 주가가 뛰어오르기 때문에 보통은 야금야금 사들이다가 5%가 넘는 시점에 신고를 하게 된다. 장하성 펀드도 5개월에 걸쳐 대한화섬의 주식을 야금야금 사들였다. 신고 직전까지 장하성 펀드의 움직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장하성 펀드의 평가이익은 8월 31일 기준으로 47억8217만원에 이른다. 물론 당장 주식을 내놓으면 주가가 곤두박질할 수밖에 없고 이익을 실현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게다가 장하성 펀드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장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 가치를 끌어올린 다음에야 본격적인 이익 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장하성 펀드를 보는 시각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기업의 관점. 특히 기업 경영자들 입장에서는 장하성 펀드의 주주 행동주의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부당한 경영 간섭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겨우 5.15%밖에 안 되는 지분으로 왜 경영에 밤 나와라 배 나와라 간섭을 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장 교수가 이끌었던 소액주주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경영자는 단 1주의 권리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오너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
둘째, 국내 자본과 외국 자본을 나누는 관점이다. 무엇보다도 장하성 펀드가 조세회피지역에 등록돼 있고 운영 주체가 외국 자본이라는 부분이 심상치 않다. 가뜩이나 장하성 펀드의 운용을 맡은 라자드에셋은 2003년 SK그룹을 공격했던 소버린자산운용의 자문을 맡기도 했다. 주가를 띄워놓고 시세차익을 챙긴 다음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또 다른 국부 유출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보자. 소버린이든 장하성 펀드든 그게 외국 자본이라 문제가 되고 우리나라 자본이면 문제가 안 되는 것일까. 주주 행동주의나 주주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시장의 원칙을 따른다. 법을 어기기는커녕 오히려 제도적 지원을 받고 있다. 비난하는 것 말고 이들을 막을 방법이 있는가. 외국 자본과 우리나라 자본을 구분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핵심은 국적을 막론하고 주주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셋째, 소액주주 운동 또는 주주 자본주의의 관점이다. 장 교수는 지배구조가 투명해지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단기적으로 충돌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주주와 노동자, 사회 모두에게 좋다는 논리다. 그러나 문제는 장하성 펀드가 언제까지 대한화섬의 주주로 남아있을 것이냐는 데 있다. 주가가 충분히 오른 뒤에도 그리고 다른 더 좋은 기회가 있는데도 주식을 팔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장 교수는 장하성 펀드가 사회적 책임투자 펀드라고 주장한다. 시세차익 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함께 고민하겠다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지만 장 교수는 그 둘의 간극이 크지 않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자신이 받게 될 자문 보수 전액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장 교수는 주주 자본주의의 긍정적 기능을 강조한다. 시장의 효율성에 맡겨 두자는 것이다.
넷째, 이와 반대로 주주 자본주의를 경계하고 이에 저항하는 입장이다. 기업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 주주는 없겠지만 주주의 욕망은 어쩔 수 없이 단기적이다. 10년에 걸쳐 100%의 이익을 내는 것보다 1년에 30%의 이익을 노린다. 10년 뒤까지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만 많은 주주들은 더 많은 이익을 좇아 주식을 사고판다. 이들은 기업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 기업이 안겨줄 이익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물론 장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대한화섬의 지배구조는 문제가 많다. 주가도 매우 낮다. 지배구조를 뜯어고치고 투명하면서도 합리적인 경영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주가가 크게 오를 수 있다.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주주들에게 돌아갈 이익도 그만큼 늘어날 수 있다. 장하성 펀드가 문제되는 것은 이 펀드가 부당하게 경영에 간섭해서도 아니고, 국부를 해외로 유출하기 때문도 아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펀드가 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가 악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행히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될 수도 있지만 명분과 실리는 상충한다. 장하성 펀드는 과연 자신들이 얻게 될 이익을 희생해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고민할 수 있을까. 흔히 명분은 실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장하성 펀드는 결국 영리 목적의 펀드다. 이 펀드가 과연 이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고 그 이윤은 주주들에게 배분된다.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내면 주가도 오르고 배당도 늘어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 당연한 이야기와 맞서 싸워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업의 이익과 성장은 흔히 맞물리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멀리 내다보고 당장의 이익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지만 주주의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주주는 기업의 주인이지만 굳이 먼 미래를 함께 고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부의 분배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주주가 기업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 주주들은 기업의 주인이지만 대부분은 결국 투자자일 뿐이다. 이들은 기업이 충분한 기회비용을 제공하고 더 많은 이익을 안겨줄 다른 투자 대안이 나타나지 않는 동안만 이 기업의 주주로 남는다. 그런 주주들이 기업을 지배하고 우리 경제와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장하성 펀드가 우려스러운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문제는 자본의 탐욕이다. 장하성 펀드가 그 탐욕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장하성 펀드가 내세운 주주 자본주의는 과연 그런 탐욕에서 자유로운가. 앞으로 수많은 다른 장하성 펀드가 나타날 것이고 외국 자본이니 우리나라 자본이니 하는 논란도 갈수록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기업의 미래를 담보로 주주들의 이익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국부 유출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부가 주주들, 금융 투자자들에게 옮겨가고 있다는 게 진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