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의 총선 결과를 놓고 이렇게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던 경험은 흔치 않다. 9월 17일의 스웨덴 총선이 가져온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지난 74년 동안 65년을 집권해 왔다. 이른바 스웨덴 모델이라고 불리는 사회적 합의와 광범위한 복지국가 모델을 만든 것도 사민당이었다. 그런데 이번 총선 결과 사민당은 12년 만에 집권당의 자리를 내주게 됐다. 이 정도면 세계가 발칵 뒤집히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나라 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이번 총선 결과를 복지국가의 몰락으로 해석하고 노무현 정부의 분배정책을 공격하는 논리로 포장하기에 바빴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다. “성장 없는 복지는 없다. 스웨덴 국민들은 결국 복지보다는 성장과 일자리를 선택했다. 그동안 스웨덴 모델을 벤치마킹 했던 노무현 정부는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이 논란의 핵심에는 권오규 부총리가 지난해 만든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가 있다. 권 부총리는 이 보고서에서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선순환 구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고 노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극찬한 바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희망한국 비전 2030’도 이 스웨덴 모델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렇다면 스웨덴 모델은 정말 몰락한 것일까. 일단 사민당 집권 시절 스웨덴의 경제 성장률은 5%를 웃돌았다. 실업률도 6% 수준으로 양호했다. 수출 실적도 좋다. 스웨덴 국민들은 왜 사민당을 버린 것일까. 스웨덴 국민들은 과연 더 많은 일자리를 위해 복지국가 모델을 포기한 것일까.
먼저 총선 결과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득표율을 보면 좌파연합이 46.2%, 우파연합이 48.1%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정당별 득표율을 보면 사민당이 35.2%로 가장 많은 표를 차지했다. 우파연합의 중도당의 득표율은 26.1%밖에 안 된다. 사민당은 정당별 득표에서는 여전히 1위지만 연합 득표율에서 뒤졌다.
이번 총선에서 중도당의 프레드릭 라인펠트는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위해 미세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국민들을 설득했다. 복지 축소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실패했던 경험을 교훈 삼아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라인펠트는 부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사민당 지지자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편 사민당은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문제의 핵심은 라인펠트가 잘 짚었듯이 어떻게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만들 것이냐였다. 사민당은 공산당과 녹색당의 전통적 분배주의에 휘둘려 현실성 없는 정책과 공약을 남발했고 실용적 중도좌파의 이탈을 불러왔다.
스웨덴 국민들의 절박한 위기의식을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1억일 병가 쇼크’다. 2003년 기준으로 스웨덴 국민들이 1년 동안 쓴 질병휴가가 무려 1억일을 넘어선 것이다. 실제로 아팠든 꾀병을 부렸든 국민 한 명에 평균 한 달꼴로 병가를 쓴 셈이다. 스웨덴 정부가 이들에게 지출한 비용은 무려 1천억크로나, 우리 돈으로 13조원에 이른다.
“스웨덴 국민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많이 아픈 걸까요? 아니면 최근 들어 갑자기 몸이 약해졌을까요? 아파서 쉬어도 정부에서 임금을 보상해주니까 일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죠. 복지병이라는 것 분명히 있습니다. 스웨덴 국민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복지국가가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죠.”
서울대 안상훈 교수의 이야기다. 사민당은 국민들의 이런 우려를 읽지 못하고 오히려 복지정책을 일부 확대하는 등 개혁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중도당의 라인펠트가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로 어필한 반면, 사민당의 여란 페르손 총리는 완고한 좌파 이미지가 강했다. 당수만 다른 사람이었어도 2% 정도 표를 더 얻었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10년의 집권 후 요란 페르손의 얼굴에서는 반짝이는 미소 대신 무엇이든 자기 입맛대로 통제하려는 거만함이 훨씬 더 강하게 풍겼다”며 “이번 총선 결과의 교훈은 정부가 노쇠한 상태에서 신선해 보이면서도 현 체제에 위협적이지 않은 새로운 반대편이 등장하면 선거에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스웨덴 모델에는 분명 결함이 있었고 사민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스웨덴 국민들은 스웨덴 모델이라는 원칙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스웨덴의 복지모델에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서 “깊은 애정의 결과 개혁을 선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좌파연합의 패배는 복지국가의 철폐냐 유지냐의 구도가 아니라 복지국가의 개혁이냐 전통복지로의 회귀냐의 싸움이었다”고 지적했다. 스웨덴 국민들은 전통복지로의 회귀가 아니라 복지국가의 개혁, 그리고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건설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사민당이 안이하고 보수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이 패인이었다는 이야기다.
안 교수는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개혁은 좌파와 우파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스웨덴의 당면 과제”라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또 “우파연합의 집권과 복지국가의 구조조정은 오히려 장기적인 스웨덴 복지국가의 지속에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복지노선의 본질적인 훼손과는 거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항변도 일리가 있다. 한때 스웨덴 모델을 본받아야 한다고 외쳐왔던 노 대통령은 최근 우리나라와 스웨덴을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스웨덴 모델의 구조조정을 우리나라의 복지축소로 연결 지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스웨덴은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비용 지출이 28.9%나 되는 나라다. 우리는 지금 8.6%다. 스웨덴이 이 복지비용을 얼마나 깎겠는가. 28.9%에서 5%를 깎겠나, 10%를 깎겠나. 결국 1~ 2% 가지고 밀고 당기고 하는 것이다. 스웨덴 우파연합은 복지 지출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건 게 아니라 우리도 복지 열심히 하겠다면서 표를 딴 것이다.”
결국 좌파나 우파나 스웨덴 정치권은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동일한 과제를 안고 있다. 오히려 우파정권이 들어서면서 사민당이 했어야 할 개혁을 우파가 대신 수행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그 결과 경제 지표가 저조해질 경우 사민당이 다시 집권에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스웨덴은 1994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우리도 복지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으니 성장을 고려해보자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스웨덴 대선을 보고 우리도 더 성장쪽으로 방향을 틀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뭘보고 그런소리를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