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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에 접근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세계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이 나이키 운동화만 신고, 모두 폴로셔츠를 입고 하루 세끼 맥도널드 햄버거와 콜라만 먹는다고 상상해 보자.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10월 말 기준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시장 점유율은 85.7%에 이른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비율은 90%를 훨씬 웃돈다.

문제는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특정 웹 브라우저를 쓰면서 웹 사이트를 만드는 사람들이 적당히 이 웹 브라우저에 맞춰서 웹 사이트를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영체제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가 아니거나 윈도우즈라도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접속하지 않으면 웹 사이트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쓰는 웹 브라우저에서 잘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덜 쓰는 웹 브라우저라고 해서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고 하면 문제다. 실제로 이런 웹 사이트는 아주 많다. 마치 나이키 운동화를 신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는 음식점처럼 특정 회사의 특정 제품을 쓰도록 사용자들을 강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파이어폭스라는 웹 브라우저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우리말로 풀어서 불여우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낯설게 들리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파이어폭스는 1990년 중반까지 가장 인기 있는 웹 브라우저였던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의 계보를 잇는 오픈 소스 웹 브라우저다.

오픈 소스란 누구나 저작권에 구애받지 않고 무료로 배포할 수 있고 마음대로 고쳐 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개발자들이 파이어폭스의 개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보수도 받지 않고 일하는 그야말로 자원봉사인 셈이다. 이들 덕분에 파이어폭스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한 기능들이 많다.

스킨이나 테마를 마음대로 바꿔서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를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플러그인을 추가해 새로운 기능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 배너 광고나 플래시가 작동되지 않도록 차단할 수도 있고 마우스 오른쪽 버튼이 작동되지 않도록 한 스크립트를 강제 해제할 수도 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날씨 아이콘을 띄울 수도 있다.

탭 브라우징도 돋보인다. 링크를 클릭하면 새 창이 열리지 않고 그 창 안에 새로운 탭을 띄운다. 그만큼 다른 페이지의 검색이 훨씬 편리해진다. 메모리 점유율도 인터넷 익스플로러보다 효율적이라는 평가다. 그래서 파이어폭스를 써본 사용자들은 불편해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지 못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물론 인터넷 익스플로러나 파이어폭스나 아니면 다른 어떤 웹 브라우저나 결국 사용자들의 취향일 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웹 사이트 개발자라면 파이어폭스로 당신의 웹 사이트에 접속해 볼 것을 추천한다. 당신의 웹 사이트는 혹시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아닌 다른 웹 브라우저를 쓰는 사용자들을 배제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글씨가 겹쳐 보이거나 댓글 입력창이 뜨지 않거나 클릭을 해도 링크가 열리지 않거나 심지어 본문이 통째로 사라지는 경우도 흔하다. 자바 스크립트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답답한 상황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탓도 아니고 파이어폭스의 탓도 아니다. 애초에 웹 사이트가 잘못 설계됐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웹 표준이라는 게 있다. 모든 플랫폼과 운영체제와 웹 브라우저에서 동일한 디자인을 보여주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문제는 웹 사이트 개발자들이 이 표준을 따르기 보다는 적당히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잘 보이도록 표준에 없는 코드를 쓰기 때문에 발생한다. 애초에 표준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탓이거나 게으르고 무책임한 탓이다.

웹 표준은 XHTML과 CSS로 나눌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XHTML은 콘텐츠, CSS는 디자인이다. 이렇게 콘텐츠와 디자인을 분리하는 것이 웹 표준의 첫 번째 핵심이다. 디자인하기에 따라 웹 브라우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웹 표준을 따르면 모든 운영체제나 웹 브라우저에서 거의 비슷하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

웹 표준에 없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쓰는 문법을 쓰면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는 아예 읽을 수가 없게 된다. 웹 응용프로그램인 액티브엑스도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돌아간다. 그래서 액티브엑스로 구현된 인터넷 뱅킹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사용자들은 아예 인터넷 뱅킹에서 배제되는 셈이다.

시각 장애인들은 스크린 리더라는 프로그램으로 웹 사이트를 읽는데 웹 표준을 따르지 않으면 메뉴와 본문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당신에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누구라도 이 웹 사이트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방문자들에게 특정 회사의 특정 제품을 쓰도록 강요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횡포 아닐까.

게다가 웹의 변화는 다양한 플랫폼을 가능하게 한다. 누군가가 PDA(개인휴대단말기)로 당신의 웹 사이트에 접속한다고 생각해보라. 또는 휴대전화로 접속해 액정 화면으로 당신의 웹 사이트를 본다고 생각해 보라. 게다가 요즘은 TV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웹 표준을 따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들 가운데 상당수를 배제하게 된다.

남들이 많이 쓰고 또 편하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는 것은 당신의 자유다. 그렇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를 살 돈이 없거나 사고 싶지 않아서 리눅스를 쓰는 사람, 또는 더 편리해서 파이어폭스를 쓰는 사람, 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에 저항하는 의미로 다른 웹 브라우저를 쓰는 사람들을 당신은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

어려운 일은 결코 아니다. 웹 표준을 공부하고 따르면 된다. 무엇이 표준이고 표준이 아닌가를 구분하는 것이 우선이다. 예쁘게 보이려 하기 전에 먼저 누구에게나 제대로 보이도록, 소수를 배제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그림 파일에 설명을 붙여놓는 것도 기본 예의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의 웹 접근성이 미국에 비교해서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5개 포털의 경우 접근성에 문제가 있는 콘텐츠 수의 비중을 나타내는 오류율이 평균 56%로 미국의 26%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쇼핑몰의 경우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71%나 된다. 미국은 44% 수준이다.

내친김에 고려대학교 김기창 교수는 정부와 공공기관 웹 사이트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김 교수는 기업이나 개인 웹 사이트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정부와 공공기관까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지 않는 사용자들을 배제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누구나 정부와 공공기관의 웹 사이트에 접속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에서다.

김 교수가 주도하고 있는 오픈웹 운동은 정부와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금융결제원을 상대로도 소송을 벌일 계획이다. 금융결제원은 인터넷 뱅킹에 필요한 공인인증서를 발급하는 곳인데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아닌 다른 운영체제와 웹 브라우저를 쓰는 사용자들에게는 발급이 되지 않는다.

정말 끔찍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외에 아무런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지금이야 불법복제도 많지만 불법복제 단속이 강화되면 언젠가 모든 국민이 우리 정부와 공공기관의 웹 사이트에 접속하기 위해, 인터넷 뱅킹을 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웹 표준을 따르고 웹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웹을 특정 회사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공공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 다수의 편의로 소수를 배제하지 않는 것.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우리는 그래서 웹 표준을 지키지 않고 웹 접근성을 무시한 웹 사이트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저항해야 한다.

이정환 이코노미21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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