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jeonghwan.com

복지천국 스웨덴, 신자유주의 도전에 무너지나.

“사회적 연대 무너진 복지천국의 고민.” 지난해 11월, 이코노미21 277호에 실린 스웨덴 취재 보고서의 제목이었다. 그때 그 보고서의 결론은 스웨덴 모델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지만 아직 원칙을 벗어나지는 않았고 정부와 국민들이 끊임없이 대안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웨덴 모델의 붕괴를 단언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년 뒤 이코노미21은 올로프팔메센터의 초청으로 스웨덴을 다시 찾았다. 지난 1년 동안, 특히 지난 두 달 동안 스웨덴은 심각한 변화를 맞았다. 지난 74년 동안 65년을 집권했던 사회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했고 정권이 바뀌었다. 새로 들어선 우파연합 정부는 스웨덴 모델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이코노미21은 11월 11일부터 18일까지 7박 8일 동안 스톡홀름 구석구석을 누비며 스웨덴 국민들의 동요와 우려, 분노, 그 생생한 목소리들을 담아냈다.

스웨덴의 겨울은 낮이 무척 짧다. 오후 3시부터 어둑어둑해졌다가 4시면 아예 밤이 된다. 스톡홀름 브룽스가탄에 있는 노인 요양시설을 찾은 때는 오전 10시, 이른 시간이라 대부분의 노인들이 아직 침대에 있다고 했다. 몇몇 노인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이발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복도에서 들여다보였다. 벽에는 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언뜻 유치원 복도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이곳에 수용된 노인은 모두 125명인데 직원은 파트타임을 포함해 200명이나 된다. 노인 요양시설이라는 무거운 이미지를 씻어내려는 듯 밝고 아늑하고 쾌적한 분위기였다. 이곳의 한 달 임대료와 식비는 7200크로네. 우리 돈으로 하면 100만원 정도다. 연금 수준에 따라 정부가 이를 전액 지원하기도 하고 많아도 개인 부담이 50%를 넘지 않는다. 연금을 받아 임대료와 식비를 내고도 최소 50만원 정도는 남도록 비율이 책정된다.

사회적 합의와 연대, 누가 먼저 깨뜨리나.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사회적 합의와 연대에 있다. 이런 파격적인 복지는 당연히 파격적인 세금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많이 낼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내고 적게 낼 수 있는 사람은 적게 내서 공평하게 나누는 것.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가능하려면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일자리를 갖고 열심히 벌어서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이 없으면 사회적 합의와 연대도 지키기 어렵다.

만약 경제가 계속 성장하지 않고 일자리가 줄어들고 세금이 걷히지 않는다면 스웨덴 모델은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다. 스웨덴의 고민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사회적 합의와 연대를 지키기는 어렵지만 깨는 것은 쉽다. 오랜 전통이라고는 하지만 그 전통은 먼저 깨는 사람이 이익을 보는 구조다. 그리고 그 이익은 매우 달콤하다. 스웨덴은 지금 오랜 전통과 그 전통을 깨고 얻을 수 있는 달콤한 기회비용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9월 17일의 총선은 그런 갈등이 표출된 결과였다. 중도당이 주축이 된 우파연합이 48.1%의 득표율로 사민당이 주축이 된 좌파연합을 눌렀다. 좌파연합의 득표율은 46.2%, 겨우 2.1%의 차이였지만 결국 정권이 바뀌게 됐고 우파연합은 복지시스템의 개혁에 착수했다. 아직 기본 골격을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우파연합의 개혁 수위는 대다수 국민들의 예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실업보험을 축소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새 정부의 입장은 보험료를 높이고 급여 혜택은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업급여를 임금의 80%에서 65%로 낮추고 급여 지급기간도 300일에서 250일로 줄일 계획이다. 보험료를 높인다는 것은 그만큼 실질임금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칫 질 낮은 일자리를 늘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실업급여를 줄인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교육을 받고 재취업을 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조합총연맹 LO의 노동자교육 담당인 토마스 하그네프도 이런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성인의 20%가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물론 아픈 사람도 있고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박탈하면 이들이 노동시장에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새 정부와 갈등이 예상되는 부분인데 솔직히 비관적이라고 본다. 새 정부는 경쟁과 효율,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개별 기업이 알아서 하게 하자.”

실업보험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스웨덴 모델의 또 다른 핵심이다.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임금을 준다는 원칙을 지키려면 이런 높은 임금을 줄 수 없는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 기업의 노동자들은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교육과 훈련을 통해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가게 되고 기업들은 살아남으려면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확보해야 했다. 그동안 스웨덴 기업들의 높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만들었던 것도 이런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서비스기업연합 알메가의 노사협상 담당인 앤더 린드스톰은 이 오래된 원칙을 부정했다. “연대임금정책은 경쟁력 없는 평준화다. 과거에는 인플레이션을 잡고 경쟁력 없는 기업을 퇴출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원칙에 매어 있으면 세계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성과를 인정해주지 않으니 노동자들끼리도 갈등이 많다. 임금협상은 개별기업이 알아서 하는 게 맞다.”

스웨덴의 사회적 합의와 연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도전을 받으면서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미 1994년부터 스웨덴 기업들은 노사정 합의를 거부했고 노조는 노조연합을 무시하고 개별적으로 임금 협상을 체결하기 시작했다. LO가 높은 조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정치적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기업들은 굳이 노조와 협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노조 입장에서 보면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가 사라진 상황이다.

알메가의 법무 담당 앤더 옐츠만은 능력 있는 일부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면서 전체적으로 임금을 하향 평준화하는 게 맞다는 입장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LO 소속 블루칼라 노동자들만 연대임금정책을 고집하고 있을 뿐 이미 사무직이나 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은 개별임금을 선호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25년 전에는 알메가 소속 기업들의 60%가 임금을 근속연수에 따라 일괄적으로 결정했는데 지금은 95%가 개인의 성과에 따라 결정한다.

그는 또 “어떤 시스템도 영원히 가는 시스템은 없다”며 “노동자들이 현실을 인정하고 양보를 해야 할 시점이 곧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총선 이후에 복지시스템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스웨덴의 어느 정부도 노조를 거스르거나 복지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는 없을 것”이라며 “우파 연합은 사민당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복지 과잉을 줄이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웨덴 국민들이 느끼는 혼란과 불안도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한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풍요로운 복지 시스템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 이를테면 질병휴가를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면서도 질병휴가를 축소하는 데는 반대하는 것이다. 한편에는 이렇게 복지 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사회적 합의와 연대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자부심이 자리 잡고 있다.

스웨덴의 실업률은 공식적으로 6% 수준이지만 질병휴가를 받아 쉬고 있는 사람들과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직업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20%까지 올라간다는 분석도 있다. 청년 실업은 16%까지 치솟았다. 일자리가 줄어드는데 질병을 핑계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사민당 국회의원인 크리스티나 엑셀손은 국민들의 이런 불안감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선거 패배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분석했다.

“15년 전만 해도 스웨덴이 이동통신산업의 선두주자였다. 그런데 이제 그 자리를 한국이 차지하려 하고 있다. 공장들이 다른 나라로 빠져 나가면서 청년 실업도 늘어나고 있다. 사민당은 스웨덴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줄어들면서 중산층의 중심이 화이트칼라 노동자들로 옮겨가고 있는데 이들을 위한 정책이 부족한 것도 실패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보건복지부장관 출신 사민당 국회의원인 모건 요한손은 총선의 패배 원인을 실업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민당은 완전고용이라는 막연한 목표를 내걸었을 뿐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우파 연합은 사민당이 절대 실업문제를 해결 못할 거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세금을 조금 줄여준다면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그게 국민들에게 먹혀든 거다.”

세금 줄여주면 일자리 만들겠다?

그는 우파 연합이 집권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새 정부는 40억크로네(5500억원)의 예산을 삭감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그 삭감된 예산의 90%를 상위 27%의 부자들이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실업보험 부담이 늘어나면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줄어들게 된다. 또한 실업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 가운데 5만2천명 정도가 내년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번 총선에서 LO의 조합원들 가운데 54%만 사민당을 지지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사민당은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막연하게 기업의 생산성 혁신을 강조했고 우파 연합은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강조했다. 결국 사민당의 패배는 많은 노동자들이 기업의 부담을 줄여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쪽을 선택했다는 걸 의미한다. 사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었던 LO 마저도 등을 돌렸다는 이야기다.

더 놀라운 것은 새 정부가 복지시스템의 개혁과 함께 노조의 조직률을 떨어뜨리려고 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스웨덴에서는 실업보험 보험료가 노조 회비에 포함돼 있다. LO 기관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토미 오버르에 따르면 LO의 설문조사 결과 10%의 노동자들이 실업보험이 축소되면 노조를 떠나겠다고 답변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노조 조직률이 88%에서 유럽 평균인 50%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스웨덴 노동운동의 원칙은 일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라 사람과 인력을 지키는 것, 그리고 이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런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지금까지 스웨덴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노동유연성을 높이려면 실업보험이나 사회안전망이 든든해야 하는데 새 정부는 이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결국 노사 신뢰가 무너지고 노동자들의 경쟁력도 떨어지게 될 것이다. 스웨덴 경제에 큰 위험이 다가올 것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같은 결론이다. 실업보험을 축소할 경우 질 낮은 일자리가 확산되고 노동자들의 경쟁력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도 약화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근로빈곤층이 나타날 수도 있다. 대다수의 스웨덴 국민들은 여전히 사회적 합의와 연대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이번 총선 결과는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아졌다는 걸 보여줬다.

모건 요한손은 4년 뒤 사민당의 재집권을 확신하고 있다. “사민당이 집권하는 동안 스웨덴에는 강력한 연대의식이 뿌리를 내렸다. 우리는 우리 이웃의 누구도 다리 밑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 4년 뒤에 다시 기회가 있을 거라고 본다. 우파연합의 정책대로 가다보면 경제적 불평등이 훨씬 커질 거고 우리는 그때 국민들에게 묻게 될 거다. 당신들은 정말 이런 사회에 살기 원하느냐. 아마 많은 국민들이 사민당 집권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민당 바깥의 의견은 다르다. 스웨덴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시작했을 뿐이지만 변화의 흐름은 거세다. “만약 다음 선거에서 사민당이 다시 정권을 잡더라도 4년 전과는 다를 것이다. 스웨덴의 사회적 합의와 연대는 이미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노동연구원 교수였다가 정권 교체 이후 해고됐다는 요란 굴린의 말이다.

스톡홀름=글·사진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참고 : 무너진 사회적 연대, 노동운동은 왜 침묵하는가. (이정환닷컴)

아래는 지난해 스웨덴 리포트.

참고 : 스웨덴, 사회적 연대 무너진 복지천국의 고민. (이정환닷컴)
참고 : 스웨덴 취재 후기. (이정환닷컴)
참고 : 스웨덴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볼까. (이정환닷컴)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