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의 중심가 호안끼엠 호수 주변에 서면 베트남의 현재와 미래를 실감할 수 있다. 한가롭게 산책과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 그리고 엄청난 숫자의 오토바이들. 신호가 바뀔 때면 수백대의 오토바이들이 경주라도 벌이듯 질주를 시작한다. 횡단보도가 따로 없기 때문에 호수를 찾는 보행자들은 오토바이를 피해 길을 건너느라 진땀을 흘려야 한다.
베트남은 젊고 역동적인 나라다. 30세 이하 젊은이가 전체 인구의 63%를 웃돈다. 오랜 전쟁을 치르느라 이른바 베이비붐이 늦게 시작됐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젊음은 거리에서도 느껴진다. 출퇴근 무렵이면 귀가 먹먹할 정도의 오토바이 소음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먼지도 많고 공기도 탁하지만 오토바이에 올라탄 사람들 표정은 매우 밝고 활기차다.
2007년의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다. 돈이 몰려들고 새로운 기회가 넘쳐나고 벼락부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개방이 늦었던 탓에 인건비도 아직 그 어느 나라보다 싸고 젊은이들은 성실하고 실력도 있고 재주가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트남이 중국의 대안으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토바이와 휴대전화, 가정용 금고.
요즘 베트남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 세 가지가 오토바이와 휴대전화, 그리고 가정용 금고라고 한다. 하노이의 경우 인구가 350만명인데 오토바이가 벌써 150만대를 넘어섰다. 거의 두 명에 한 대 꼴로, 한 집에 한 대 이상 오토바이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오토바이가 없으면 취업도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 오죽할까.
오토바이가 많은 건 그만큼 대중교통이 취약한 탓이겠지만 휴대전화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다분히 과시욕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 우정통신부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3월 말 기준으로 휴대전화가 1천만대를 넘어섰고 연말까지 1500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2005년 말 기준으로 베트남의 인구는 8312만명. 네 명에 한 대 꼴인 셈이다.
베트남의 유선전화 보급률은 19% 정도. 유선전화가 보급되기도 전에 바로 휴대전화로 옮겨가는 상황이다. 최근 조사에서는 올해 말까지 베트남 15세 이상 도시 인구의 60%가 휴대전화를 소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점유율은 노키아가 57%, 삼성전자와 모토롤라가 각각 19%와 11%를 차지했다.
놀라운 것은 오토바이나 휴대전화의 가격이다. 오토바이는 최소 1천달러에서 혼다 정도 되면 보통 2500에서 3천달러를 넘어선다. 2005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569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휴대전화의 경우도 삼성전자의 블루블랙폰은 베트남 판매 가격이 480달러인데 달마다 6천대 이상 팔려나가고 있다.
하노이의 경우 대졸 초임이 120달러 정도, 영어를 잘 하면 130달러 정도다. 보통 생산직 노동자의 경우는 50~70달러 정도가 고작이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낮은 임금이다. 블루블랙폰을 사려면 6개월 이상, 오토바이를 한 대 사려면 1~2년 이상 월급을 꼬박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오토바이와 휴대전화를 소유하고 있다.
집집마다 가정용 금고를 소유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베트남의 통장 개설 비율은 5%도 채 안 된다. 정부나 금융기관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검은 돈 거래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뒷돈이 없으면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흔히 기업 매출액의 10%가 뒷돈으로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들 미스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월급 100달러를 받아서 3천달러짜리 오토바이를 어떻게 살까요. 베트남을 이해하려면 뒷돈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임금은 낮지만 뒷돈이 많고 그만큼 쉽게 버니까 쉽게 쓰는 거죠. 돈을 벌면 다 써버립니다. 저축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어요.” 대우일렉트로닉스 베트남법인 박수호 법인장의 이야기다.
베트남의 부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관료들. 이들은 철저하게 혈연으로 뭉쳐있다. 아버지가 세무 공무원이면 아들도 세무 공무원, 사촌에 팔촌에 사돈까지 모두 세무 공무원이다. 변호사도 마찬가지, 경찰 간부나 정부 관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권을 세습하면서 천문학적인 부를 쌓는다.
둘째는 부동산 부자들이다. 하노이의 부동산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쌍용 베트남 법인이 세 들어 있는 건물은 임대료가 1평방미터에 40달러, 20평방미터만 해도 8천달러에 이른다. 호안끼엠 호수 주변은 매매가가 1평방미터에 7천달러를 넘어선다. 30평형이면 69만달러, 우리 돈으로 6억원이 훌쩍 넘는다.
사무실 임대료, 서울보다 비싸다.
대중교통이 열악하기 때문에 하노이 시내 중심가의 부동산 가격은 세계 어느 나라 대도시 못지않게 비싸다.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은 한정돼 있고 당연히 이들 부동산 부자들의 자산도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오토바이와 휴대전화를 사주는 것도 대부분 이들 돈 많은 부모들이다.
이런 부자들과 부자가 아닌 사람들의 간격은 매우 크다. “1인당 국민소득은 569달러지만 하노이나 호치민 같은 대도시만 따로 놓고 보면 2천달러가 넘을 겁니다. 드러나지 않은 지하 경제를 감안하면 하노이의 국민소득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골든브릿지 베트남법인 문구상 법인장의 이야기다.
베트남에서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두가지 밖에 없다. 첫째, 공산당원이 되는 것.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둘째, 하노이나 호치민의 시민이 되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이를테면 외국계 회사. 역시 쉽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신분구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일즈 매니저 10명을 뽑으려면 수만명이 지원서를 냅니다. 그런데 정작 뽑을 사람은 많지 않아요. 오토바이와 휴대전화가 있고 웬만큼 잘 생기고 대학을 나오고 영어도 잘 하고, 그런 젊은이들은 500달러 밑으로는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500달러면 우리나라 물가 수준으로 800만원 정도 됩니다.” 쌍용 하노이지사 유치훈 지사장의 이야기다.
이처럼 오토바이와 휴대전화를 살 수 있고 대학을 나오고 영어까지 잘하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상당한 소득수준의 가정에서 여유 있게 자란 경우가 많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런 조건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전통적인 신분 구조는 여전히 유효하고 개방과 개발 과정에서 오고가는 부동산 시세 차익과 뒷돈이 중산층의 기반이라는 가정도 가능하다.
베트남 부유층의 소득 수준은 임금 노동자들은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다. 2005년에 문을 연 칠링 골프장은 회원권 가격이 2만달러에 이른다. 월급 500달러를 받는다고 해도 무려 40개월 이상 고스란히 월급을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연간 학비가 1만5천달러에 이르는 외국인 학교에는 전체 학생 중 3분 의 1 이상이 베트남 현지인 자녀들이다.
베트남은 2005년에 8.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나라는 많지 않다. 지난해에는 7.8%, 올해에도 7.5%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올해부터 성장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하경제를 감안하면 실제 성장속도는 이보다 훨씬 빠를 수도 있다.
외국 금융기관들, 돈 빌려주겠다고 난리법석.
지하경제의 규모는 대출 이자만 봐도 알 수 있다. 경제 성장률은 7%를 웃도는데 대출 이자는 4% 수준이다. 그만큼 돈이 넘쳐난다는 이야기다. 외국 금융기관들은 돈을 빌려주겠다고 난리법석인데 기업들은 가려가면서 받는 분위기다. 미국 이민자들이 가족과 친인척들에게 보내는 달러 자산이나 외국 여행자들이 뿌리는 외화 자산도 거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하노이를 가로지르는 홍강에 다리가 두 개 밖에 없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투자하겠다는 외국 자본은 줄을 서있지만 베트남 정부가 터무니없이 많은 개발 부담금을 요구하기 때문에 개발이 늦춰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간이 지나면 개발 부담금을 더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시내 중심부에서 시작해 외곽으로 확산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이미 시내 웬만한 호텔은 예약조차 하기 힘든 지경이 됐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투자는 엄두조자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방치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벼락부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하루 30만배럴의 원유를 뽑아낼 수 있으면서도 정작 정유공장이 없어 인근 말레이시아에서 석유를 수입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주의 합의체제가 남아있어 의사결정 구조가 느린 탓이기도 하지만 제때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보면 그만큼 성장 잠재력과 투자 매력이 크다는 이야기도 된다.
베트남의 중산층은 드러난 것 이상으로 훨씬 광범위하다. 최근에는 하노이나 호치민, 하이퐁 등은 물론이고 붕따오나 탱화 등 지방 도시까지 공장이 내려가고 신흥 중산층이 확산되고 있다. 그만큼 소비시장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것은 이 놀라운 성장이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데 있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베트남…
왠지 예전 우리나라를 보는 듯한 모습도 조금 보이네요^^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베트남.. 상당히 흥미로운 곳이네요.. 범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치안상태도요
사업을 하는데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사진에서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어둡네요. 행복한 사람들이 없는거 같아서 많이 아쉽네요
닫힌사회라 그런지 어두운 면이 있군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지도!!
베트남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없나요?
공산주의라면 불만이 상당히 강할 것 같은데??
다른 세계와의 만남….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죠?
1975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공산주의 국가 베트남이 빈익빈부익부현상이 뚜렷하다고 하니까, 새롭네요. 계속 연재해 주세요. 주의깊게 읽겠습니다. 그리고 건강하시구요.
베트남은 치안은 괜찮습니다. 사람들도 친근하고요. 너무 어두운 뒷골목만 다니지 않는다면 안전합니다. 하노이의 경우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