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듯한 일주일의 출장 마지막 날, 캄보디아를 다녀오기로 했다. 태국에서 버스로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방콕에서 국경 도시 아란야프라텟까지 3시간, 거기에서 비자를 받는데 1시간, 또 버스를 갈아타고 시엠리엡까지 가는데 3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포기했다. 요즘은 길이 좀 좋아져서 덜 걸린다고는 하지만 하루 남짓 머무는데 길에서 시간을 버릴 수는 없었다. 방콕에서 시엠리엡까지 가는 항공편은 방콕에어밖에 없는데 독점 노선이라 가격도 비쌌다. 편도에 12만원 정도. 이미 경비를 초과한 상태였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후 2시 비행기로 캄보디아로 건너갔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메콩 강과 멀리 톤레삽 호수. 메콩 강이 역류하는 우기에는 호수의 면적이 3배 가까이 불어난다고 한다. 면적이 무려 10만평방킬로미터, 우리나라의 거의 절반 크기다.

시엠리엡 공항은 눈을 뜨기 어려울만큼 햇볕이 강렬했다. 어딘가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분위기. 비행기에 내려서 활주로를 따라 걸어 들어와야 했다. 입국 비자를 받는데 10달러를 줘야 하고 나중에 출국할 때 공항세로 5달러를 또 내야 한다.

끝없이 이어진 지평선 때문인지 하늘이 낮아 보였다. 방콕 못지않게 여전히 더웠지만 바람이 시원했고 공기도 맑았다. 베트남과 태국에서 오토바이 매연을 한껏 들이키고 건너온 뒤라 모처럼 상쾌한 바람을 즐겼다.

3시에 도착해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까 3시 반, 짐을 풀고 나니까 4시, 툭툭 아저씨에게 곧바로 앙코르와트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프레룹. 석양을 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961년, 라젠드라바르만 2세가 지은 사원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져 석양 무렵이면 그야말로 붉게 타오른다.

두 개의 성벽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 3층에 올라서면 커다란 다섯 개의 탑이 있다. 프레룹은 죽은 육신의 그림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왕의 장례의식을 지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3층에서 내려다 본 프레룹. 사방에 계단이 있고 사자 석상이 늘어서 있다. 1층에는 12개의 탑이 있고 두 번째 성벽 입구에는 도서관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있다.


프레룹에서 팔찌를 팔던 아이들. 10살과 7살이라는데 둘 다 영어를 잘했다. 수공예 팔찌가 10개에 1달러.

프레룹에서 내려다 본 앙코르와트의 석양.



기록에 따르면 앙코르 왕국의 전성기는 서기 790년에서 1432년까지였다. 지금의 캄보디아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라오스에 이르기까지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이 앙코르 왕국의 영토였다. 수도인 앙코르, 지금의 시엠리엡은 한때 인구 150만명의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그렇게 번성했던 앙코르 왕국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이들이 왜 앙코르와트를 버리고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스스로를 우주의 지배자라고 불렀던 자야바르만 2세가 앙코르에 도읍을 정한 때가 802년, 앙코르 왕국은 수리아바르만 1세 때 최대의 전성기를 맞는다. 앙코르왓과 앙코르톰 등 주요 사원은 그의 아들인 수리아바르만 2세의 작품이다. 앙코르왕국은 자야바르만 7세 때(1181~1201년) 전성기를 맞다가 1350년 이후 외세의 침략으로 무너지기 시작해 1432년 아유타야 왕국의 침입으로 프놈펜으로 옮겨가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버려진 왕국, 앙코르와트가 서양 사람들에게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400년이 훌쩍 지난 1850년이었다. 선교 여행에 나선 프랑스의 신부가 밀림을 헤매다 우연히 앙코르와트를 맞닥뜨리게 된 것.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한 사원과 끝없이 늘어선 탑과 불상들. 겁에 질려 허겁지겁 도망쳐 나온 신부는 돌아와서 ‘밀림의 도시’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을 읽은 탐험가 앙리 무어가 1961년 탐험대를 끌고 메콩 강을 거슬러 올라 앙코르와트를 찾아온다.


프레룹을 한 바퀴 돌고 나니 금방 해가 져 버렸다. 저녁은 바욘에서. 뷔페 식사와 함께 압살라 춤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다. 10달러로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지만 오랜 여행 끝이고 모처럼 제대로 된 식사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음식도 입에 맞았고 느릿느릿 곡선을 그리는 압사라 춤도 근사했다. 천정에서는 커다란 선풍기가 소리없이 돌았고 나는 앙코르 맥주를 두 병이나 마셨다.

다음날 아침, 앙코르왓의 일출을 보기 위해 무려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제대로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3시 반에 잠이 깼다. 몸이 무거웠지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오늘 하루 볼 수 있는만큼 열심히 봐야 한다는 생각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툭툭을 타고 앙코르왓에 도착한 때는 4시 10분, 한참을 기다려도 여전히 어둑어둑했다. 삼각대를 세워놓고 카메라 노출 시간을 늘려주자 어둠 속에 앙코르왓이 드러났다.

밀림을 뚫고 앙코르왓을 처음 마주쳤을 때 앙리 무어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허물어진 사원에 걸터앉아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명상을 하는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12세기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앙코르왓은 앙코르와트에서도 가장 큰 사원이다. 바깥벽은 가로 1500미터, 세로 1300미터에 이른다. 3층 건물이지만 높이는 213미터나 된다. 가운데 커다란 탑을 두고 네 귀퉁이에 4개의 탑이 더 있다. 연꽃 모양의 이 탑들은 정확히 동서남북으로 대칭을 이룬다. 이 탑들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을 상징한다. 성벽은 세상 끝을 둘러 싼 산맥, 바깥의 해자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한다.

동서남북을 감싸고 도는 회랑은 무려 가로 215미터, 세로 187미터에 이른다. 2미터 높이의 벽면에는 앙코르왕국의 역사를 담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꼼꼼히 살펴보면서 도는데만도 서너시간이 걸린다.


70도에 이르는 가파른 계단은 사람이 아니라 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3층은 왕과 승려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2층에서 3층까지의 높이는 40미터.

계단은 폭이 좁고 현기증이 날만큼 가파르다. 올라가기보다 내려가기가 더 어렵다. 일찍 올라간 덕분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앙코르왓을 돌고 내려오니 8시, 그때서야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입구까지 이어지는 통로만 250미터에 이른다.


앙코르톰의 정문. 앙코르 톰은 12세기 말에 지은 불교 건축이다. 100미터 너비의 거대한 해자가 성벽을 싸고돌고 입구에는 양쪽으로 악마의 석상들이 줄을 서 있다. 해가 솟아오르면서 조금씩 공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여기가 바욘이다. 54개의 탑에 이런 4면상이 200개나 있다. 언뜻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표정이 다 다르다. 직계 왕손이 아니었던 자야바르만 7세가 새로운 세력을 만들기 위해 불교를 들여왔을 거라고 추정된다. 그는 스스로를 관세음보살로 일컬으면서 강력한 왕권을 확보했다. 이 불상은 그래서 관세음보살이면서 자야바르만 7세이기도 하다.



이 사원의 의미나 용도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앙코르톰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4면상의 얼굴은 각도와 높이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바욘은 앙코르왓과 달리 훼손이 심하다. 입구가 따로 있지만 외벽이 허물어져 내려 어디에서나 들어갈 수 있다.



바푸온은 복구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프랑스의 기술자들이 10년째 공사를 하고 있다. 12세기 중반 우다야딧야바르만 2세가 만든 힌두교 사원이다.


300미터에 이르는 코끼리테라스. 목조 건물은 사라지고 없고, 이 건물을 받치고 있던 코끼리 조각만 남아있다. 햇볕은 뜨겁고 시간을 아낀다고 아침을 거른데다 잠도 부족하고 땀을 잔뜩 쏟아낸 탓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10시 반.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낮잠을 자기로 했다.

여기가 바로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다. 아침 식사 포함, 1박에 10달러.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낫겠거니 해서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는데 현지인 밖에 없었다. 생긴 건 이래도 욕실도 있고 에어컨도 있다. 페인트칠도 새로 했고 촌스러운 디자인이지만 침대보도 깨끗했다.



잠깐 낮잠을 자고 찾아온 곳이 따프롬. 삼각대들 두고 나와 셀프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 덕분에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따프롬은 통행로만 만들었을 뿐, 일부러 복구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버려진 사원, 거대한 보리수나무가 벽을 뚫고 솟아올랐다. 나무를 뽑아내면 벽이 무너져 내린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따프롬에 39개의 탑과 260개의 신상, 566개의 주거 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가로 600미터 세로 1000m의 규모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무너져 내린 흔적만 남아있다.


프놈바켕은 프레룹과 함께 석양을 보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9세기 후반, 비교적 일찍 지은 사원이다. 프놈바켕을 찾은 때는 오후 3시. 덕분에 사람도 거의 없었고 하늘은 눈이 부시게 파랬다. 높이 67미터의 언덕 위에 있는데 보수공사 중이라 계단으로는 올라갈 수는 없고 산길을 따라 멀리 돌아가야 했다.


메루산을 상징하는 탑이 109개나 있었다고 하지만 남아있는 탑은 많지 않다. 최고층에 5개의 탑, 그 밑단에 5개의 층이 있어 각 단마다 12개씩의 탑이 있다. 앙코르왓과 앙코르톰은 물론이고 멀리 톤레삽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저녁에는 캄보디아 민속 공연을 봤다. 아래 사진은 출가하는 스님의 삭발식. 마침 앙코르 경주 문화제가 열리고 있었는데 딱히 구경거리는 많지 않았다.

최소 2박3일은 잡아야 한다는 앙코르와트를 그렇게 하루 만에 뚝딱 둘러봤다. 일요일 저녁 11시 반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출발, 인천에는 월요일 아침 7시반에 도착. 바로 회사로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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