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를 이야기하면서 킬링필드를 빼놓을 수 없다. 1975년에서 1979년에 이르는 크메르루주의 집권 기간 동안 전체 인구 900만명의 10분의 1에 이르는 80만에서 많게는 100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킬링필드를 이해하려면 앙코르 왕국과 거슬러 올라가 크메르 제국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거대한 왕국은 왜 버려졌을까. 그리고 버려진 왕국은 왜 피로 물들었을까.
기록에 따르면 앙코르 왕국의 전성기는 서기 790년에서 1432년까지였다. 지금의 캄보디아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라오스에 이르기까지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이 앙코르 왕국의 영토였다. 수도인 앙코르, 지금의 시엠리엡은 한때 인구 150만명의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그렇게 번성했던 앙코르 왕국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이들이 왜 앙코르와트를 버리고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앙코르와트는 강력한 왕권의 상징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숱하게 많은 민중의 희생이 뒤따랐다. 강력한 왕권을 과시하기 위해 쌓아올린 이 거대한 건축물이 결국 국력의 쇠퇴를 가져왔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앙코르 왕국은 1350년 이후 외세의 침략으로 무너지기 시작해 1432년 아유타야 왕국의 침입으로 프놈펜으로 옮겨가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앙코르와트는 1432년 이후 1961년 프랑스 탐험대에 발견되기까지 버려진 상태로 남아있었다.
프놈펜으로 옮겨간 앙코르 왕국은 19세기 들어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했다가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은 일본의 후원을 받아 독립을 선언하고 캄보디아에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한다. 캄보디아는 1960년대 후반, 미국과 전쟁 중인 베트남을 직접적으로 지원했고 미국의 배후 지원을 받은 론놀이 1970년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30년에 이르는 길고 긴 내전이 시작된다.
흔히 킬링필드라고 하면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루주의 대량 학살을 생각하지만 1969년부터 1979년까지 미국의 무차별 공습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은 캄보디아에서 베트남 공산당을 내쫓으려 했고 폴 포트가 이끄는 급진적인 공산주의 조직, 크메르루주가 이에 맞섰다. 분쟁지역 전문기자 정문태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미국의 폭격으로 40만에서 많게는 80만명의 캄보디아 국민이 죽었다.
1973년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이 물러나고 1975년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잡으면서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된다. 폴 포트는 미국에 협조했던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했고 특히 지식인과 중산층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80만명에서 100만명이 죽었다. 피가 피를 부른다. 그렇게 10년 동안 캄보디아 국민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죽어야 했다.
중국의 문화혁명에 자극을 받았던 폴 포트는 급진적이면서도 다분히 공상적인 사회주의를 꿈꿨다. 모든 땅을 집단 농장으로 바꾸고 모든 국민을 농업에 종사하게 해서 생산량을 늘리고 농산물을 수출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단계적으로 경공업과 중공업을 육성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형을 당했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시골로 쫓겨가기도 했다.
크메르루주는 1979년 국경 분쟁을 벌이던 베트남이 10만명의 군대를 몰고와 프놈펜을 함락하면서 권력에서 물러난다. 그 뒤 헹삼린이 이끄는 친 베트남 정부가 들어서면서 크메르루주와 캄보디아인민해방전선 등은 1989년까지 10년 동안 무력투쟁을 계속한다. 베트남 군대가 철수하고 1992년 UN의 감독 아래 선거가 실시된 뒤에도 1998년까지 캄보디아에서는 크고 작은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정문태는 킬링필드의 1차적인 책임이 폴 포트에게 있다는 것을 전제로,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당시 안보고문 등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특히 키신저는 캄보디아 공산당이 베트남 공산당을 배후 지원하고 있다며 캄보디아 폭격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죽은 사람만 무려 40만에서 80만명이다. 킬링필드를 이야기할 때 이 부분은 거의 빠져 있다.
거대한 왕국은 몰락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사회주의의 실험은 실패했다. 남은 것은 돌무더기 뿐.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민중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이 돌무더기의 의미, 그리고 평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