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8일 남겨둔 시점, 마지막 TV토론을 앞두고 정치부 기자인 마이크 하울리를 비롯해 4명의 언론인 패널이 선정된다. 하울리는 공화당 후보로 나선 도널드 메리디스를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승리는 거의 확정적이다. 그는 다른 패널들에게 묻는다. “중립을 지키는 게 과연 최선인가. 중립을 지켜서 나라가 엉망이 돼도 좋단 말인가.”

패널들은 결국 메리디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로 공모한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토론에서 패널들은 메리디스를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패널들이 도청 의혹과 폭력적인 성향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메리디스는 급기야 욕설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기에 이른다. 최근에 번역 출간된 짐 레러의 소설, ‘마지막 토론’의 줄거리다.

주목할 부분은 언론의 배후에서 벌어지는 여론 조작이다. 선거 캠프에서는 서로 자기네 캠프에 유리한 언론인을 패널에 집어넣으려고 신경전을 벌이고 그렇게 선정된 패널들은 누구를 당선시킬 것인지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TV토론의 형식을 빌려 폭로전이 시작되고 흥분한 메리디스가 토론장을 뛰쳐나가면서 패널들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굳이 소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론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여론 조작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사례를 들자면 1960년 미국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이 존 F. 케네디에게 패배한 경험을 떠올릴 수 있다. 닉슨은 라디오 토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끌어냈지만 막상 TV토론에서는 젊고 잘생긴 케네디에게 여지없이 무너졌다.

1988년 아버지 조지 부시와 마이클 듀카키스의 대선도 TV토론이 승패를 갈랐다. 아내가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됐다면 범인의 사형에 찬성하겠느냐는 질문에 듀카키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줄곧 사형제를 반대해 왔습니다. 사형제가 범죄를 줄인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대답이었지만 유권자들이 기대했던 대답은 아니었다.

듀카키스의 패배는 사형제도의 찬반 논란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내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 또는 얼굴 표정, 그리고 돌발 질문에 맞서는 순발력과 재치, 결국 그가 얼마나 매력적인가가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준이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의정치의 현실은 이렇게 초라하다.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승리하기까지는 언론과 인터넷의 힘이 컸다. 정치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됐던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경선에서 치고 올라오기 시작해 순식간에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만들어 내고 판세를 뒤흔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3개월 남짓이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부패정권을 심판하자”며 민주당을 물고 늘어졌지만 노무현 후보는 “낡은 정치를 청산하자”는 구호로 지나간 시대의 정치와 선을 그었다. 두 번째 도전에 나선 이회창 후보가 식상한 얼굴이었다면 노무현 후보는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TV광고에 나와 직접 기타를 치기도 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과연 그때 우리는 정치인 노무현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을까. 그는 과연 보이는 것처럼 젊고 개혁적인 사람이었을까. 물론 이회창이나 권영길이나 다른 정치인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론에 비친 이미지를 보고 그들을 판단한다. 문제는 그런 이미지가 왜곡되거나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02년의 경험을 돌아보면 우리나라 언론의 대선 보도는 몇 가지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경마중계라도 하듯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지지도의 향방을 좇는 이른바 판세 분석이 대표적이다. 아무런 구체적인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결정한 지지도가 다시 지지도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유권자들은 선거 공약이나 철학 보다는 언론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와 지지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전화 여론조사는 그리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 못하고 그런데도 판세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폭로와 음해, 흑색선전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론은 기꺼이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후보자들의 동정에 많은 뉴스가 할애되는 것도 이런 기묘한 선거 문화의 한 단면이다.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이 양로원에 가서 어르신들 머리를 감겨 주거나 국립묘지에 참배를 하거나 달동네를 찾아 연탄을 나르는 모습을 보고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흔히 객관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후보들마다 동일한 시간을 배정하는 촌극도 벌어진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언론의 선거 보도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난 대선에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 성향의 언론은 이회창 후보에게 우호적인 방향의 기사를 잇달아 내보내 시민단체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공중파 방송 가운데서는 서울방송의 편파 보도가 문제가 됐다.

특히 이들 ‘조중동’ 신문들은 선거 막판 무렵,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후보 단일화 논의를 축소하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유세를 함께 다니면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라며 노골적으로 이회창 후보 지지를 독려하기도 했다.

언론은 민의 또는 표심을 과연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일까. 선거 막판에 이르면 그나마 여론 조사 결과도 공표가 금지되고 어느 후보가 어느 정도 앞서고 있다는 지극히 개략적인, 그리고 다분히 언론사의 주관이 개입된 판세 분석을 보고 투표장을 찾게 된다. 심하게 말하면 그때쯤이면 투표의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올해 대선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 어느 대선보다도 우리는 언론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 조작된 이미지는 넘쳐나지만 정작 후보들의 공약이나 철학은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명박은 실제의 이명박과 어느 정도나 일치할까. 박근혜는 어떤가. 정동영이나 김근태는 또 어떤가.

언론의 ‘경마중계’는 일찌감치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유력 후보들을 지지도에 따라 한 줄로 늘어놓고 지지도의 등락 추이에 따라 온갖 해석을 곁들이는 방식은 선거 보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권도 언론이 발표한 지지도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관심은 누가 더 앞서 나가느냐에만 쏠려 있다. 이기는 말에 표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일찌감치 여론조사의 부작용을 경고한 바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의견들은 질문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질문함으로써 존재하게끔 만들어지는 것이며 질문하지 않는다면 표현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는 권위있는 대변인을 통해 표현되었을 수도 있는데 이것은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다.”

부르디외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대중매체는 선택된 이미지만을 보여주며 사건을 단순한 대중적 흥미 거리나 스펙터클로 전환시켜 버릴 뿐이다.” 심지어 “언론 권력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주범”이라거나 “언론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요원하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올해 대선이 지난 대선과 다른 점이라면 인터넷의 위력이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부분이다. 2002년 대선에서는 막판에 정몽준 후보의 돌발 행동이 변수가 됐고 위기의식을 느낀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이 적극적인 유세활동에 나서면서 판세가 뒤집혔다. 이회창 후보와 득표 차이는 고작 57만여표. 언론은 나중에 이를 인터넷의 힘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여당이나 야당, 또는 보수와 진보진영 모두 인터넷에 훨씬 더 익숙하게 됐다. 조중동 뿐만 아니라 오마이뉴스처럼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인터넷 언론의 위력은 오히려 크게 줄어들었다. 오히려 한나라당 후보들이 인터넷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도 보인다. 한나라당 예비 후보를 지지하는 젊은 세대도 부쩍 늘어났다.

일부에서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 이른바 UCC가 대선을 좌우하게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UCC의 유통은 그리 활발하지 않다. 대선 후보들이 만드는 홍보 동영상 정도가 UCC로 둔갑해 나돌고 있는 정도다. 이런 UCC 역시 공약과 철학을 담아내기 보다는 이미지를 포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상태다.

인터넷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이미지 왜곡이나 조작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동영상 UCC는 텍스트보다 훨씬 더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다. 말 한마디 잘못에 잘 나가던 후보의 정치생명을 끊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2004년 총선에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 폄훼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다.

공중파 방송들은 일찌감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여론조사에 힘을 쏟고 있다. 일간신문들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과 박근혜 예비 후보의 당내 대결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여권에 유력 후보가 나서면 본격적으로 ‘경마중계’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언론사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좀 더 선정적인 이슈로 치닫게 될 가능성도 있다. 천편일률적인 여론조사보다는 단숨에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폭로와 음해, 흑색선전에 휘둘릴 가능성도 크다. 소설 ‘마지막 토론’에서처럼 TV토론 역시 흥행을 위해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일간 신문들은 지난 대선 때처럼 특정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다만 유권자들이 일방적으로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지난 대선과는 다른 점이다. 조선일보의 구독자 수가 늘었다는 통계도 있지만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포털 사이트 야후의 여론조사가 불러온 파장은 올해 대선의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하게 한다. 야후는 지난 3월 5700여명의 패널을 모아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조사결과가 다른 언론의 조사결과와 다르게 나오자 발표를 유보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참여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야후의 사례는 여론조사의 공신력과 함께 포털의 중립성 또는 인터넷을 통한 여론 조작의 가능성을 고민하게 했다.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제 언론뿐만 아니라 포털 사이트도 얼마든지 여론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야후의 전혀 다른 조사결과는 천편일률적인 전화 여론조사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여론을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이 다양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겠지만 조사 방법에 따라 결과도 달라질 것이고 여론을 한 방향으로 이끌기는 훨씬 더 어려워졌다. 여론의 향방을 좇는데 더 많은 비용이 투자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야후 뿐만 아니라 네이버나 다음 등 주요 포털 사이트들은 모두 대선 페이지를 만들어 네티즌들을 끌어들일 계획이다. 포털 사이트의 콘텐츠는 대부분 주류 언론사에서 제공받은 것들이지만 그 콘텐츠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결국 포털 사이트 관리자의 몫이다. 2002년과 비교하면 포털 사이트의 영향력이 훨씬 높아졌고 그만큼 공정성 문제가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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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우리나라에선 정치인들께선 지난 대선때 워낙 호대게 당하신지라 이를 막기위해 이미 무지막지한 선거법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번 대선은 구세대의 악법이 정치 참여의 자유를 억압하는 안좋은 사례가 될까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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