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아파트에 이어 반값 등록금, 반값 골프장까지 나왔다.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는 건 딱히 새로운 일도 아니지만 최근의 반값 열풍은 정도를 넘어섰다. 언뜻 솔깃하게 들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현 불가능한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반값 정책의 손익 계산서를 해부해 본다.
먼저 반값 아파트. 한나라당은 대지임대부 분양주택 방식이고 열린우리당은 환매조건부 분양주택 방식이다. 대지임대부란 정부 소유의 땅을 빌려서 건물만 짓는 방식이다. 집값은 낮아지겠지만 별도로 대지 임대료를 내야 한다. 환매조건부는 집을 아예 사고 팔 수 없도록 묶어두는 방식이다. 싸게 사는 대신 나중에 정부에 다시 팔아야 한다.
한나라당 아이디어부터 살펴보자. 대지 면적이 9만9174㎡(3만평)이라면 3.3㎡(1평)에 1천만원씩 잡고 토지 원가가 3천억원. 토지 지분이 한 세대에 28.1㎡(8.5평), 용적률이 400%라면 분양가구는 모두 3500가구가 된다. 이 경우 건축비를 3.3㎡(1평)에 500만원씩 잡으면 분양가는 112.4㎡(35평)에 1억7천만원이 된다.
일단 집값이 파격적으로 싼 것은 맞다. 그러나 문제는 대지 임대료. 3천억원을 정부가 연 5%에 조달하고 이를 3500가구가 분담한다면 달마다 35만4200원을 임대료로 내야 한다. 집은 내 집인데 임대료가 1년이면 425만원, 40년이면 1억7천만원이나 된다. 임대료를 감안하면 결코 반값이 아닌 셈이다.
열린우리당 아이디어는 현실성이 더 떨어진다. 토지조성원가와 건축비, 부대비용 등을 포함해 원가 수준에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계획만 있을 뿐 구체적인 대안은 없다. 소유권이 제한되기 때문에 전세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실제로 전세보다는 더 비싸다. 게다가 주변 집값이 오를 경우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정부가 올해 10월, 경기 군포·부곡 택지개발지구에 시범적으로 도입할 반값 아파트를 살펴보자. 사업면적은 47.3만㎡. 토지임대부와 환매조건부 아파트가 각각 350가구씩. 분양면적은 전용면적 기준으로 75㎡(18평)~85㎡(25.7평)이다. 경부선 철도와 서울 외곽 순환도로 등이 인접해 있어 입지 조건은 좋은 편이다.
먼저 토지임대부 아파트의 경우 3.3㎡당 450만원, 전용면적 84㎡의 경우 전체 분양가는 1억140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월 임대료를 35만~40만원 정도 내야 한다. 환매조건부 아파트는 3.3㎡에 750만원씩, 전용면적 84㎡의 경우 1억9천만원 수준이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일반 아파트가 3.3㎡당 825만원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10% 정도 싼 셈이다.
토지임대부의 경우 문제는 역시 임대료다. 40만원씩 10년이면 4800만원, 20년이면 9600만원이 된다. 10년이 지나면 되팔 수 있다고 하지만 토지 없이 건물만 파는 경우 감가상각을 감안해 집값이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 당장 분양가가 낮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세보다도 실속이 없을 수도 있다.
환매조건부의 경우는 가격 메리트가 크지 않다. 분양가 상한제보다는 10%, 주변 시세 보다는 20% 가까이 싸지만 20년 동안 팔 수 없다는 걸 감안하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10년이 지나면 정부에 되팔 수 있지만 이 경우 정기예금 이자 정도를 더 받는데 그친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주변 집값을 생각하면 20% 싼 분양가도 매력이 떨어진다.
시민단체들은 일단 반값 아파트 정책을 환영하면서도 실현 의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토지정의시민연대는 집값을 낮추려면 분양원가 공개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업자들이 여전히 분양원가를 높여 잡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거품을 걷어내면 분양가를 지금보다 30~40%까지 낮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토지정의시민연대는 공공택지를 민간 건설업자에 분양하는 방식의 반값 아파트에 회의적이다. 철저하게 공영개발을 하되 민간 건설업자들은 시공에만 참여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전매제한 기간을 10년이 아니라 무제한으로 늘릴 것을 제안하고 있다. 분양원가 수준에 공급하되 개발이익은 철저하게 공공부문으로 흡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공공택지에 의무적으로 토지임대부 아파트 비율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비슷한 조건의 아파트가 많아지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더라도 크게 부담을 받지 않고 굳이 아파트를 소유해야할 유인이 줄어들게 된다. 특별한 지역에 시범적으로 실시할 게 아니라 보편적인 아파트 공급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의 아이디어는 이런 맥락에서 구체적인 접근이 아쉽다. 깊이 있는 고민 없이 다분히 선거를 앞둔 전시 행정으로 끝날 가능성이 다분하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보다는 일부 분양 당첨자들에게 특혜를 주거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실효성 없는 특혜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반값 등록금은 문제가 더 많다. 등록금을 낮춰주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문제는 역시 재원 마련, 그리고 그 실현 가능성과 실현 의지다.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올해 1월, 국가 장학제도를 만들어 저소득계층과 이공계 등에 2조원 상당의 장학금을 지원하겠다는 법안을 상정시켰다. 대학 기부금에 대해 세액 공제를 하겠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열린우리당은 즉각 논평을 내고 “전체 등록금 12조원 가운데 6조원을 재정에서 부담해야 하는데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대책으로는 아무리 많이 절감해도 2조원을 모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은 “재정 부담을 고려할 때 반값 등록금 정책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꼬리를 내린 상태다.
한나라당 공약의 핵심은 기부금을 거둘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기부금을 많이 받는 대학이 등록금을 낮춘다는 발상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등록금 상한을 가계 평균 연간 소득의 12분의 1로 책정, 등록금을 현재의 45% 수준으로 떨어뜨린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반값 등록금을 둘러싼 논란 역시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이 아쉽다. 우리나라 사립대학들 적립금은 6조원이 넘는다. 한해 등록금의 절반에 이르는 규모다. 또한 예산 편성과 지출 과정에서 부실도 많다. 2005년 전국 사립대 153곳의 예산·결산 분석 자료를 보면 1조2천억원 이상 부실이 발견된 바 있다.
경제개발국기구(OECD)에 가입한 나라의 공공 부담 고등교육 재정이 국내총생산(GDP) 평균 1.1%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고작 0.3% 수준이다. 근본적으로 정부의 교육 예산을 늘리지 않는 이상 반값 등록금은 요원하다는 이야기다. 결국 예산 책정 없는 선심성 공약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정부는 심지어 반값 골프장 정책까지 들고 나왔다. 농지를 싸게 사들여 골프장을 짓되 부대시설 설치를 자율화해 골프장 이용료를 낮추겠다는 아이디어다. 유휴 농지도 활용하고 해외 골프 수요를 국내로 돌린다는 계획이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투자자금 회수에 최소 20년 이상 걸린다는 계산도 빠져 있다.
33㏊ 규모의 부지를 150억원에 매입하고 9홀짜리 비회원제 대중 골프장을 건설할 경우 정상 요금 4만2천원을 받으면 연간 1억7700만원 가량 배당이 가능하다. 그러나 요금을 반값으로 낮출 경우 연간 매출액이 19억1천만원, 관리비와 판매비, 건설비용 원금상환 등을 하고 나면 오히려 11억8천여만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값 아파트나 반값 등록금이나 반값 골프장 등등 파격적인 공약들은 쏟아지지만 핵심은 결국 어느 한쪽에서 기득권을 포기하거나 정부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확고한 철학과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이런 반값 공약들은 결국 말 잔치로 끝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