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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몰락, 그 이후를 준비하자.

우리는 지금부터 미국의 몰락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의 서브 프라임 사태와 이에 따른 일련의 변화는 이런 우려에 무게를 더한다. 미국은 그동안 세계 경제의 소비시장 역할을 해왔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로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부채를 마냥 늘려왔고 다른 나라들은 미국에 돈을 빌려줘 가면서 미국 국민들의 소비를 조장해 왔다. 이런 아슬아슬한 공생관계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신용도가 낮거나 지불능력이 떨어져 일반 모기지론을 신청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 대출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약 6천억달러 규모, 미국 전체 모기지론 시장의 약 25%에 이른다. 미국은 그동안 금리를 낮춰가면서 돈을 풀어왔고 그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고 너도 나도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넓혀가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상환 압박이 들어오면서부터다.

부동산 가격의 80%까지 대출을 내줬는데 부동산 가격이 20% 이상 떨어지면 당장 담보능력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담보로 잡힌 부동산을 내다 팔아 원금을 상환해야 하는데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지게 된다. 돈줄이 마르면 대출 부실이 늘어나고 부동산 가격의 폭락이 자칫 금융기관들 연쇄 도산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경쟁력의 부재에서 비롯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 인도 등 신흥 공업국들이 미국의 생산 공장을 빼앗아간 지 오래다. 군사력을 증강해가면서 여러 나라들과 전쟁을 벌여왔고 아직까지 패권을 움켜쥐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통 적자투성이다. 미국 국민들은 빚으로 집을 사고 흥청망청 소비를 늘려왔다. 정부도 적자고 국민들도 적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그동안 낮은 금리를 유지하면서 거품을 방치해 왔다.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는 거품이 빠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경제는 지금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경기가 둔화되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서브프라임은 물론이고 서브프라임보다 우량한 등급인 알트에이나 프라임 모기지론까지 부실이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은 그동안 국채를 찍어내 뿌리면서 쌍둥이 적자를 막아왔다. 쌍둥이 적자란 무역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를 일컫는 말이다. 2005년 기준으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8050억달러, 재정적자도 4천억달러에 이른다. 이 쌍둥이 적자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넘는다. 국채를 찍어내 적자를 막는다는 것은 결국 빚으로 빚을 막는다는 말이다. 미국의 저축률은 거의 0% 수준까지 떨어졌다.

웬만한 나라 같으면 진작 망하고 말았겠지만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그 부담을 떠넘겼다. 미국 경제가 무너지면 다른 나라들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가능한 일이다. 당장 미국 국민들이 소비 규모를 줄이거나 원 달러 환율이 조금만 떨어져도 우리나라 수출 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는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단일 경제권으로 묶여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그동안 미국 국채를 사들여 가면서 원 달러 환율을 지켜왔다. 다시 말하면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면서 추락하는 달러화의 가치를 지켜왔다는 이야기다. 미국 경제의 부실을 우리나라 국민들의 세금으로 메워왔다는 이야기도 된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올해 8월 2일 기준으로 2548억달러까지 불어났는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미국 국채다. 환율이 떨어지면 앉은 자리에서 엄청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달러화를 마구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 나라들도 유로화로 외환위기의 위험에서 자유롭지만 아시아 나라들은 안전하면서도 환금성이 보장되는 미국 국채를 사두는 게 외환위기를 막는 최선의 대안이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호되게 겪은 뒤라 다들 천문학적인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쌓아두고 있다.

문제는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는데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는 것. 일단 달러화나 유로화 등의 외화 자산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외국환 평형기금을 동원하는데 그 이자만 해마다 1조5천억원이 넘는다. 그 과정에서 시중에 돈이 풀리고 물가가 치솟게 되는데 물가를 잡으려면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돈을 묶어둬야 한다. 이 돈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55조2천억원이나 된다. 한국은행이 해마다 엄청난 적자를 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통화안정증권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미국과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다. 외환보유액을 줄이려고 달러화 자산을 내다팔면 환율이 더 떨어지고 평가 손실도 불어난다. 그렇다고 외환보유액을 그대로 유지하자니 미국 경제의 부실을 그대로 떠안게 될 판이다. 달러화 자산을 줄이고 유로화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지만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나라들이 대부분 마찬가지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나라에서 돈을 빌려다가 다른 통화로 바꿔 쓰는 걸 말하는데 엔 캐리 트레이드라면 일본의 낮은 금리를 활용한 엔화 대출 투자를 말한다. 일본의 기준 금리는 아직도 0.5% 수준이다. 문제는 일본이 금리를 올리고 미국이 금리를 낮추면서 엔화와 달러화의 금리 격차가 줄어들고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될 가능성이 커지면서부터다.

가뜩이나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의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일단 투자자산을 정리하고 대출부터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갑자기 청산되면 세계적으로 자산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도 있다. 그 과정에서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금융기관들이 동반 몰락하고 미국의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움직임은 세계 경제가 하나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주지시킨다.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에서는 폭풍이 몰아친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 폭락이 세계적으로 금융기관들 연쇄 도산을 불러오고 경제 공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갑자기 빠져 나가면 주식 시장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지켜보면서 과거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줄여서 LTCM이라고 부르는 이 회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모여 만든 헤지펀드회사였다. 이들은 투자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이를 다시 투자하는 이른바 지렛대 효과로 1조달러가 넘는 자산을 굴렸다. 금융기관들은 이 회사에 돈을 빌려주지 못해 안달했고 자본금 대비 차입금의 비율은 무려 55배까지 치솟았다.

LTCM은 1조달러가 넘는 자산을 굴리면서도 현금은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평화로운 시절 같으면 막대한 이익을 벌여 들였겠지만 1998년 8월 러시아에서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실을 떠안게 됐다. 지렛대 효과는 이익뿐만 아니라 부실도 뻥튀기 한다. 급기야 미국 정부가 나서서 금융기관들에 LTCM의 부실을 골고루 떠맡겼고 다행히 금융대란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주식회사 미국의 수익모델은 LTCM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그동안 국채를 뿌려대면서 자금을 조달하고 그 돈으로 엔화를 싸게 빌려 다른 나라에 투자하면서 이익을 남겨왔다. 문제는 돈을 더 빌리지 못하거나 당장 갚아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그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벌써부터 금융기관들이 연쇄 도산하면서 미국의 부실이 다른 나라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IMF 이후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수출기업들은 높은 환율 덕분에 짭짤한 재미를 봤다. 환율이 높으면 미국 수출단가를 낮추거나 이익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쩍 늘어난 외환보유액과 그 유지비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외환보유액 가운데 상당부분은 외환위기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외환보유액이 이미 적정 수준의 두 배를 넘어섰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환율이 떨어질 때마다 달러화를 사들이면서 환율을 방어해왔다. 수출 기업들 경쟁력을 보호하기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국부를 수출기업들에게 몰아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수출기업들 이익은 늘어나겠지만 그만큼 국민 부담 역시 늘어나게 된다. 미국이 몰락하고 있다면 외환보유액을 늘리고 환율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미국의 몰락을 막거나 늦출 수는 없다.

우리가 미국의 몰락에서 자유로우려면 외환보유액을 적정 수준으로 줄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미국 국채의 보유 비율을 줄여야 한다. 무너져 내리는 미국의 빚을 우리가 떠안을 이유는 없다. 그리고 외환보유액의 투자 대상을 유로화나 기타 통화로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수출에 의존하는 성장 정책을 버려야 한다. 탄탄한 내수 기반을 갖추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미국의 몰락,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참고 : 환율 조작으로 수출기업 밀어주기 그만 둬야 한다. (이정환닷컴)
참고 : 노쇠한 미국, 세계 경제에 먹구름 불러오나. (이정환닷컴)
참고 : 미국의 경제 불안과 성장의 한계.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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