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사람이 더 오래 산다. 더 많이 배운 사람이 더 오래 산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더 오래 산다. 그런데 흔히 많이 배운 사람이 잘 사는 경우가 많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도 한다. 이들의 수명을 늘리는 것은 무엇일까. 교육일까. 소득일까. 지위일까.
72년에 걸쳐 아카데미상 수상자의 수명을 조사했더니 상을 받지 못한 다른 배우들보다 4년 이상 더 살더란 연구 결과도 있었다. 이들이 돈을 더 많이 벌었기 때문일가. 더 많이 행복했기 때문일까. 소득과 수명은 상관관계가 있지만 단순히 많이 벌기 때문에 오래 사는 건 아니다. 잘 사는 사람들에게 있고 못 사는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무엇일까.
영국 런던대 공중보건학 교수 마이클 마멋에 따르면 소득 7만달러 이상인 사람들 사망 위험률을 1로 잡으면 5만~7만달러인 사람들은 1.34, 3만~5만달러인 사람들은 1.59, 2만~3만인 사람들은 2.21로 나타났다. 그런데 1만5천~2만인 사람은 3.04, 1만5천 미만인 사람들은 3.89로 사망 위험률이 갑작스럽게 올라갔다. 가난한 사람들이 죽을 확률은 잘 사는 사람보다 4배 가까이 높다.
소득이 높은 사람이 더 오래 사는 것은 통계적으로 입증돼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이런 건강 불평등이 1970년대보다 1990년대에 훨씬 더 심각하게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회계사와 엔지니어, 의사 같은 전문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단순 노동자보다 훨씬 더 오래 사는데 1990년대의 단순 노동자들은 1970년대 전문직종 종사자들보다 수명이 더 짧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조사 결과가 있다. 서울만 놓고 보면 강북구에 사는 사람이 서초구에 사는 사람보다 사망 확률이 30%나 더 높다. 서울 서초구는 지난 5년 동안 인구 10만명당 1772명이 죽었다. 경기도 과천시는 1805명, 서울 강남구는 1809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경남 합천군은 3547명이 죽었다. 서울 서초구의 두배다. 서울에서도 강북구는 2334명이 죽었다.
연령이나 소득 분포 등 자세한 비교가 아쉽지만 환경이 건강과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리처드 윌킨슨은 소득과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첫째, 소득 불평등이 클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들의 건강은 더 나빠진다. 둘째, 소득 불평등은 사회적 불안 같은 사회문제를 낳아 사회 구성원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셋째, 소득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의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다. 그러나 소득이 낮을수록 사회 참여가 제한되고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마이클 마멋은 지아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의 미미와 로돌포를 비교한다. 똑같이 가난한데 왜 미미는 죽고 로돌포는 살았을까. 여 주인공이 죽는 줄거리가 훨씬 더 감동적이라 그랬겠지만 마멋은 이들의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주목한다. 로돌포와 그 보헤미안 친구들은 시인이고 예술가고 음악가고 철학가다. 그런데 미미는 좁은 아파트에서 바느질을 하는 게 직업이다. 마멋은 삶에 대한 지배력, 사랑, 사회적 관계 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아카데미상을 받았다는 행복한 경험이 수명을 4년씩 늘려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래에 대한 희망, 사랑, 성취감, 자부심, 권력 등이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답답하고 우울한 경험, 절망과 좌절, 단절된 관계, 억압 등이 건강을 갉아먹고 수명을 줄인다는 이야기다. 가난이 건강 불평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난이 만드는 삶의 조건이 건강 불평등을 만든다.
마멋은 소득 불평등을 없애자고 말하지 않는다. 소득 불평등은 어쩔 수 없더라도 소득 불평등이 만드는 건강 불평등은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한 기업의 사장이나 집값이 떨어진다며 공업고등학교나 장애인 특수학교를 폐교시키려 했던 사람들은 당신들이 그들의 수명을 줄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봐야 한다. 당신들은 그들의 평온한 일상과 행복, 소속감, 유대감, 그리고 그들의 건강한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 / 마이클 마멋 지음 / 김보영 옮김 / 에코리브르 펴냄 / 1만8천원.
정말 멋진 글 감사합니다.
10만 명 당 몇 명이 죽는가로 빈부를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예라고 생각합니다.(지은이가 쓴 비유인가요?) 어차피 10만 명 모두는 다 죽기 때문에 올해 적게 죽으면 다음 해 많이 죽겠죠. 사망 위험과 빈부 관계를 비교하려면 아카데미 수상자 비교처럼 서초구 사망자가 죽었을 때의 평균 나이와 합천군 사망자의 평균 나이를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김중태 선생님의 지적은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책과 이정환 기자님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을 위한 부적절한 예가 아니라, 소득 불균형에 따른 건강 불균형인 것 같습니다. 지적하신대로 인구통계학적인 근거가 선행되지 않아 마치 이 글만을 놓고 보면 비약은 충분해 보입니다만, 우리가 일상에서 저지르는 소외계층에 대한 만족할만한 수준의 배려가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중태 선생님께서도 선생님의 책을 통해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정보 소외계층과 인터넷의 배려 등을 말씀하신 것과 다르지 않을것 같습니다.
무심코 내뱉었던 나의 생각이 남들에게 칼날이 되어 그들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중태 선생님도, 이정환 기자님도 충분히 옳다고 봅니다.
수학적으로 보면 이정환 기자님의 의견이 타당합니다.
개체의 수명과 개체의 유입 (출산) 혹은 유출 (사망)의 비율은 서로 비례하게 되는데 이를 리틀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김중태 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모든 개체가 사망을 맞이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리틀의 법칙에 따르면 인구대비 사망률은 인구의 평균 수명에 정비례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 집단에서 1년에 1%의 사람이 죽어 나간다면 그 집단의 평균 수명은 100살이 됩니다. 만일 1년에 2%의 사람이 죽어 나간다면 그 집단의 평균 수명은 50살이 됩니다.
물론 리틀의 법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모집단의 연령 분포 형태가 동일하거나, 혹은 아주 긴 기간 조사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게 되지만, 대략의 통계치를 내기 위한 방법으로는 상당히 적절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