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땅에 떨어졌다. 횡령과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파격적인 판결이 멋쩍었던지 신문기고와 강연 등의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고질적인 유전무죄 판결이지만 이를 비판하고 바로 잡아야 할 언론의 시각은 솜방망이 판결만큼이나 관대하기만 하다. 일부 언론은 오히려 “족쇄가 풀렸다”느니 “감옥이 능사가 아니라”느니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경영에 탄력이 붙었다”느니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다.

중앙일보는 6면 머리기사에서 이번 재판을 담당한 이재홍 부장판사의 말을 옮겨 “돈 많은 사람, 돈으로 사회공헌”이라는 경악할만한 제목을 뽑았다. 중앙은 “거액의 사회공헌기금을 내라고 판결문에 명시, 정 회장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집행유예 선고에 대한 일각의 비난을 완화라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중앙은 1면 머리기사에서는 “감옥이 능사 아니다, 실질적 죗값 치러야 한다”는 제목을 뽑기도 했다. 중앙은 관대한 판결에 대한 이 부장판사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비중 있게 옮겼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현대차의 파급 효과는 상당하다”거나 “미국에서는 엔론 같은 회사가 20개 부도나도 끄덕없지만 엔론은 이미 죽은 회사였고 현대차는 살아있는 회사다”, “재능 있는 사람은 재능으로, 돈이 많은 사람은 돈으로 사회에 실질적인 공헌을 하게 하는 게 진정한 사회봉사명령이다” 등등.

한국경제는 아예 현대차의 사보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1면 머리기사에서 “정몽구 현대차 회장 다시 뛴다”는 제목 아래 “글로벌 톱 5를 향해 다시 뛸 수 있게 됐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차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가 막대하고 정 회장은 현대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이 부장판사의 말을 옮기기도 했다.

한경은 5면을 털어 현대차 그룹의 분위기를 자세하게 전했다. “정 회장이 기업인으로 사회적 소명을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재다짐을 한 것”이라거나 현대차 임직원들의 말을 인용, “이제야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 나온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고 “협력사와 상생 협력을 통해 고용 창출 확대와 수출 증진, 선진 기술 지원 등에 지속적으로 매진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는 등 낯 뜨거운 찬사를 잔뜩 늘어놓았다.

매일경제는 잔뜩 흥분한 한국경제보다는 좀 더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그냥 지나치기는 멋쩍은 듯, 재판 결과를 두고 “다소 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서울경제나 파이낸셜뉴스 등 다른 경제지들도 논조는 비슷했다. 파이낸셜은 현대차 관계자의 말을 인용, “중국 시장에 이상 기운이 감지됐지만 정 회장이 발목을 잡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며 족쇄가 풀린만큼 조만간 중국 시장에서 낭보가 날아올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일보는 13면 머리기사에서 “현대기아차 일단 큰 고비를 넘겼다”고 제목을 뽑았다. 재판 결과를 둘러싼 논란은 거의 언급이 없고 다만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 정 회장과 현대기아차에 반성할 기회를 줬다”고 애매모호한 평가를 내렸다.
가장 비판적인 논조를 보인 곳은 한겨레였다.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에서 “재벌 봐주기 집유… 정몽구 회장 웃었다”고 제목을 뽑고 실제로 웃고 있는 정 회장의 사진을 실었다. 한겨레는 “법원이 유독 재벌에 관대하다는 비판이 또 나오고 있다”면서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겨레는 3면에서 익명의 변호사의 말을 인용, “돈 많은 사람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사회봉사명령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강연과 신문 기고에 대해서도 “사회봉사가 부하 직원들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하면 죄짓고 빠져나올 수 있는지 기법이라도 전수하려는 것이냐”는 김형탁 민주노동당 대변인의 말을 인용한데 이어 해설 기사에서 “회장이 구속되면 부도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논리는 황제경영의 폐해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울신문은 “기부가 사회봉사? 재벌 봐주기 논란”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인터넷 기사에서는 이번 재판과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재판 결과를 비교해 눈길을 끌었는데 배달판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됐다. 임 회장은 219억원을 횡령했다가 1심에서 징역 4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1년 7개월 동안 복역 끝에 올해 2월 사면을 받고 풀려난 바 있다. 정 회장이 2개월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결국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과 비교된다.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한 언론 보도는 ‘총수=기업’이라는 퇴행적인 사고방식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우리 언론의 현 주소를 그대로 드러냈다. 2000억원 이상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기부금만 내면 풀려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우리 언론은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 땅에 떨어진 사법 정의만큼이나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경제개혁연대는 5일 “돈으로 산 집행유예, 돈 앞에 무릎 꿇은 사법정의”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재판 결과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법원이 판결문에서 어떠한 수사를 동원하여 합리화했든, 이번 집행유예 선고는 정몽구 회장의 재력으로 이루어진 것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독자들을 위해 이번 사건을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다.
정 회장의 죄목은 크게 횡령과 배임이다. 정 회장은 2000년 4월∼2006년 3월, 비자금 1034억원을 조성해 696억원을 횡령하고 역외펀드 수익 1830만 달러를 횡령하는 등 900억원대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 본텍을 계열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아들 의선씨와 글로비스에 실제 가치보다 훨씬 미달하는 가격에 신주를 배정해 이익을 준 동시에 지배주주인 기아차에 손해를 떠넘겼다.
또 청산이 예정돼 있던 현대우주항공 채무에 대한 정 회장 개인의 연대보증 책임을 면하기 위해 계열사들을 유상증자에 참여시켰고 자금난을 겪던 현대강관이 유상증자를 하자 손실이 예상되는데도 역외펀드를 설립해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등을 증자에 참여시켜 손해를 끼쳤다. 횡령과 배임의 전체 규모는 모두 2100억원대에 이른다.
정 회장은 지난해 4월 구속 수감됐다가 두 달 만에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풀려났고 올해 3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6일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그리고 사회봉사활동을 명령 받았다. 2100억원에 이르는 배임과 횡령의 규모로 볼 때 정 회장의 집행유예는 이례적인 판결이다. 사회공헌기금과 강연, 언론 기고 등의 사회봉사활동 명령 역시 전례가 없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그렇다면 반대로 현대자동차를 망하게 하고 MK를 잡아 넣는 것은 어떨까요? 그럴 경우 현대자동차와 연관된 납품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현대차 노동자들이 받아야 하는 타격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면책 특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나라처럼 쓸데없는 국회의원들에게 이런 특권은 낭비라고 봅니다만 적어도 대통령의 직무행위가 사법적 이유로 수시로 중단되어서는 안되겠죠. 국가 위기가 닥치니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좋든 싫든 현대차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통령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인정하기 싫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정몽구가 한국 경제나 노동자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한 이번 판결과 같은 결정이 재판부에서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게다가, 앞으로의 대기업 총수의 횡령 사건은 지금보다 법 적용을 엄격히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오히려 여론이나 언론은 이 부분을 명확히 사법부에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기서 사법부를 비난해봐야 결국 돌아오는 것은 이번 케이스가 차후에도 판례로 정착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몽구의 구속 이후 사실 회장님 없는 현대차가 이번 위기를 기회삼아 나름대로 경영진의 체질개선과 노사 단합및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 낼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대차의 행보는 현대차 경영진, 노조 모두 MK없이는 갈팡질팡밖에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뼈져리게 보여준 셈입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현대차를 통해 보는 한국과 한국사람들의 한계입니다.
언제까지나 이런 재벌 위주의 논리로 한국 경제를, 사회를 호도할 수 있겠습니까?
MK 하나 부재로 인하여 제대로 굴러가지 못할 현대자동차라면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나을 것이고, 현대자동차 범법자 사주 하나로 인해 휘청거릴 대한민국 경제라면 아예 엎어놓고 다시 시작하는 게 낫습니다.
IMF의 모진 시련도 이겨낸 대한민국 국민, 대한민국 경제입니다. 위기감을 부풀려 국민을 위협하는 이런 (그 자체가 이미 재벌이 된) 주류 언론의 교묘한 논리 이제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
힘있는 범법자들이 언제나 이런 식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데, 이 나라에 진정한 정의가 구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어떻게 이 나라의 법정은 이렇게 강자에게만 관대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 나라의 언론은 이렇게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쪽을 위해서만 그렇게 교언영색을 늘어놓습니까?
저는 좌파라고 하기는 너무도 그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만, 소위 보수라고 하는 힘가진 무리들이 저지르는 짓거리에는 참으로 절망을 느낍니다.
우리의 대한민국, 이렇게는 안됩니다.
nekoneko // MK를 ‘잡아 넣으면’ 현대자동차가 망한다고 생각하시는 점이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글쓴이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황제경영, 족벌경영의 현실이 우리나라의 기업의 발목을 묶고 있다고는 생각안하시는지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를 망하게 하고 MK를 잡아넣는 것이 어떻게 ‘반대’입니까? 이번 판결의 ‘반대’는 정확히 말하자면 ‘MK의 구속’입니다. ‘현대자동차 망하게 하고’는 ‘nekoneko님이 붙인 수식어에 불과하지 않지요.
회장 잡혀들어가고 그에 대한 처벌 내린다고 현대가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MK 잡아가면 현대 망하고, 현대 망하면 나라 망한다’는 것은 예전부터 재벌과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국민에게 내세웠던 논리입니다.
‘MK’와 ‘현대자동차’,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라는 퍼즐을 억지로 끼워맞추려는 언론과 법원을 보고있자니 구역질이 나는군요. 언제는 삼성이 우리나라 경제를 다 책임진다더니, 또 언제 그 대상이 현대와 MK로 바뀌었답니까. -_-;;
“앞으로의 대기업 총수의 횡령 사건은 지금보다 법 적용을 엄격히 할 수도 있을 것이고”와 정확히 반대의 경우가 예상되지 않나요?
그때마다 “현실적 고려(대기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총수감옥행이 대기업에 미칠 영향을 볼때?)”를 안할 수 없을테니깐 말이죠.
nekoneko님의 이번 사건 인식에 대해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지식은 앞서가는 것 같지만 의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 않은지 숙고해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내 자식들은 기득권이 주는 빵부스러기 받아 먹으면서 만족하면서 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힘들더라도 내일의 희망이 있는 나라에서 떳떳하게 자라게 하고 싶습니다.
nekoneko님의 이번 사건 인식에 대해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지식은 앞서가는 것 같지만 의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 않은지 숙고해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내 자식들은 기득권이 주는 빵부스러기 받아 먹으면서 만족하면서 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힘들더라도 내일의 희망이 있는 나라에서 떳떳하게 자라게 하고 싶습니다.
nekoneko// “정몽구가 한국 경제나 노동자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 맞거든요? 그래서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는 거거든요? 제발 좀 좋은게좋은거, 막중한 책임을 맡은 재계 회장, 재벌이 우리의 살 길, 국제경쟁력, 이딴 망상에서 깨어납시다
“정의가 땅에 떨어졌다”라는 글의 첫마디처럼 고질적인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건입니다.
정리해주신 주류 중앙일간지들의 논조와 그와 반대인 몇안되는 한겨레의 보도 그리고 배달판에선 기사가 빠졌다는 서울신문까지 많이 달라지지 않은 고질적인 판결과 언론의 반응에 다시한번 실망스럽습니다.
회장님과 재벌이라는 기득권 그리고 그 나팔수인 주류언론들의 행태는 권력답게 ‘공포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안계시면, 현대가 곧 망할 것같은 논조가 그와같은 장치겠지요.
진짜 공포스러운 것은 “진짜 정치나 진짜 경제”를 저버리는 이합집산하는 현재 대선정국을 보면서 이제는 이러한 말도안되는 판결을 보면서도 무덤덤해지는 제 자신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좋은 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nekoneko // 님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할따름입니다..휴…
nekoneko // 아직까지 이런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대해 신기할따름이네요..후…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