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40일 앞둔 시점이라 집회를 허용할 수 없다.” 한 달 전부터 계획돼 있었던 집회를 정부가 집회를 사흘 앞둔 시점에 불법으로 규정했을 때 이미 충돌은 예견돼 있었다. 일단 집회 불허의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고 노동자·시민단체들은 섣불리 물러설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부가 집회를 원천 봉쇄하고 나선 상황에서 애초에 합법적인 집회는 불가능했고 대규모 충돌은 불을 보듯 뻔했다.


11일 경찰은 서울광장 등 도심 일대에 전경 2만3000명을 배치해 시위대의 진압을 원천봉쇄했고 시위대는 남대문과 시청 일대를 장악하고 시위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이날 오후 광화문 일대는 교통이 완전히 마비됐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면서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고 141명의 시위대가 연행됐다. 한·미 FTA 저지와 비정규직 철폐, 반전평화를 요구하는 이날 집회는 저녁 8시30분이 돼서야 끝났다.

예견된 불법집회… 막무가내 노동자 때리기.

12일 아침 종합 일간지와 경제지들은 일제히 이날 집회의 현장사진을 1면에 배치했다. 한겨레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이 이날 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강력히 비판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들 언론이 이 불법집회를 비판하는 방식이다. 불법집회로 몰고 간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없고 휴일 교통 마비를 강조하고 있다. 휴일 교통 마비가 정부쪽의 무리한 원천봉쇄에 있음을 지적한 신문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들이 왜 불법집회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는지에도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경제는 5면 <시위… 점거… 폭력… 노동계 떼쓰기 도졌다>에서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집단적 떼쓰기가 또 다시 노동 현장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경은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라며 “불법파업으로 해고돼도 취업 규칙상 3년 또는 5년 내에 복직될 수 있도록 명시돼 있어 불법파업이 판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일경제는 1면 <대선 틈탄 노동계 '떼병'>에서 “이들 떼쓰기식 횡포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 정권 말기 사회 기강 혼란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염려된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며 금산분리 완화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떼쓰기를 해온 이들 경제지들이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집단적 떼쓰기라고 매도하는 것은 다분히 폭력적인 태도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우리 사회의 각 집단들이 법질서를 무시한 채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너도나도 거리로 뛰쳐나간다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묻고 “국가 기강이 흔들리고 국가 경제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라며 자문자답했다. 국민일보는 “법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엄중히 처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역시 사설에서 “설사 합법이라도 주말 대규모 도심 시위는 국민 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며 “머리띠를 두르고 길을 막는 형태의 구태의연한 시위문화는 이제 졸업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파이낸셜뉴스는 또 16일 파업을 예고한 철도노조에 대해서도 “노조가 끝내 파업에 돌입한다면 민형사상 엄격한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며 “대선이 불법파업을 눈감아주는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국민의 뜻” 단정짓는 동아일보.

동 아일보도 사설에서 “무법천지가 따로 없다”고 개탄했다. 동아일보는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불법집회는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다”고 단정짓고 있다. 동아일보는 대다수 국민의 뜻을 어떻게 확인한 것일까. 동아일보는 “국민의 염증과 불편만 키운다는 사실을 주최측만 모르니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세계일보는 “정부의 집회 불허에 대해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 후보가 헌법재판소에 위헌여부를 묻겠다고 한 발언은 온당치 못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 언론의 이런 독단적인 주장은 기본권 침해의 요소도 있다. 도대체 누가 이들 언론에 위헌 여부를 판단할 자격을 줬단 말인가.

실종된 똘레랑스.

대부분 언론은 교통 혼잡에 초점을 맞췄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각각 <불법 시위에 빼앗긴 '서울의 휴일'>과 <불법집회… 서울 도심 마비됐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문화일보는 10일 5면 <"빼빼로데이에 진압출동이라니">에서 “마침 이날이 연인들 사이에서 제2의 발렌타인데이라고 불리는 빼빼로데이여서 전의경 여자친구들을 더 애태우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화일보는 “시위는 왜 자꾸 하는 겁니까. 걱정돼 죽겠네요”라는 인터넷 게시판에 오른 한 여자친구의 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만 다른 시각을 보여줬다.

경향신문은 14면 <경찰 6만명 동원 '과잉봉쇄'>에서 “경찰이 지방 시위대의 상경을 막기 위해 전세버스 운송회사에 협박성 공문을 보내는가 하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버스까지 가로막아 과잉봉쇄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박탈당했고 평화시위의 의지는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혔다”는 집회측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이번 집회가 “민주노동당 세력의 결집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농성의 정치의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회를 핵심 선거전략으로 추진했던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정치력에 대한 불만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한겨레는 민주노총 관계자의 말을 인용, “1988년부터 열린 노동자 집회가 불허된 것은 노태우 정부 시절 두 차례를 제외하고 이번이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교통혼잡을 만드나.

이 날 집회 사진을 보면 정작 교통혼잡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해진다. 경찰은 전경버스 600대를 동원, 집회예상지역 차도와 주변 인도를 차량으로 막아 통행을 원천 봉쇄했다. 정부가 집회를 불허했을 때부터 경찰과의 대치는 예견돼 있었고 교통혼잡은 피할 수 없었다. 경향신문이 지적한 것처럼 집회의 원천봉쇄가 도심 교통도 봉쇄한 것이다.

Similar Posts

3 Comments

  1. 기막혀가 더 기가 막히네^^ 어떤 단순 논리로 이분법 사고 하시는거도 아니고
    자기 해석에 알맞게 해석 하시면 곤란 한거죠

    시위에 대해서는 훗님의 말대로 몇달전부터 밝힌거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약속좀 다른곳에 잡고 그럼 될껄 관심도 없으면서 괜히 와서 단순한 논리 펴면서
    이거 아니면 이거네? 그러니까 너도 이거네? 재미있으시네요

    임기 말년 되니까 노통도 막장이고 공권력도 막장이고 인간들도 막장이고
    답이 안나오는구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