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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넘겨주고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그레이켄 론스타펀드 회장이 재판을 받기 위해 9일 저녁 입국했다. 그레이켄은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의 핵심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11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릴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론스타가 외환카드의 주가조작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했느냐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직전인 2003년 11월 외환은행과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외환카드의 유동성 위기를 심화시키고 허위 감자 계획을 유포해 주가를 떨어뜨린 혐의를 받고 있다. 외환카드 주가는 감자 계획을 발표한 뒤 6700원에서 2500원까지 떨어졌고 외환은행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외환카드를 합병할 수 있었다.

만약 론스타의 주가 조작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면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대주주 자격이 박탈된다. 문제는 이제 와서 대주주 자격이 박탈돼 봐야 팔고 떠나면 그만이라는데 있다. 이는 론스타 입장에서는 기꺼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하루 빨리 팔고 떠나고 싶은 마당에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될 수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원천 무효로 하고 인수 시점으로 돌아가 인수 대금에 이자만 지급하고 나머지 시세차익을 환수하는 방법도 있는데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와 법원의 의지에 달린 일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미 기업하기 좋은 나라, 금융 시장 개방 등을 여러 차례 천명한 바 있다.

데이비드 엘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은 최근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익금은 본국 송환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로 번 돈을 본국으로 가져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주식 양도차익의 경우 20%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데 있다. 소액 주주들은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지만 30% 이상 대주주는 1년 이상은 30%, 1년 이하는 20%를 내야 한다.

외환은행의 실질적 대주주인 론스타펀드 4호는 본사가 벨기에에 있는데 벨기에는 우리나라와 이중과세 방지협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론스타는 우리나라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벨기에는 주식을 비롯해 자본이득에 대해 세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론스타는 우리나라나 벨기에나 그 어디에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론스타는 제도적 허점을 파고들었고 론스타의 탈세는 분명히 합법적이다.

그레이켄의 자신감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만약 그레이켄이 증인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법원이 피의자가 아닌 그를 강제 소환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런 그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검찰은 그를 곧바로 출국정지시켰고 강도 높은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명박 정부의 의중이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판은 5조5천억원에 이르는 론스타의 시세차익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재판과 관련해 몇 가지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다.

첫째, 외환은행은 이미 외국계 은행이라는 사실이다. 외환은행을 국내 은행이 다시 사들이느냐, 다른 외국계 은행에 넘기느냐는 국부 유출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국부는 이미 2003년 12월에 유출됐고 이를 원점으로 되돌리기는 결코 쉽지 않다.

둘째, 론스타가 많은 돈을 벌었다는 이유로 무작정 비난하기 어려운 것도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능력껏 투자하고 벌어들인 만큼 세금만 잘 내면 되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허점을 만들어 놓고 있다.

셋째, 민족주의로는 국부 유출을 막지 못한다. 론스타는 외국 자본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수 없는 사모펀드라서 문제가 된다. 은행법의 예외조항을 적용해 가며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허용해준 금융감독위원회에 1차적인 책임이 있고 그 과정에서 뇌물 수수 등이 밝혀진다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원천 무효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시세차익을 토해내게 만드는 일은 국제 관례에 비춰 볼 때 쉬운 일이 아니다.

핵심은 지나간 일을 안타까워하고 감정적인 분노를 토해내는데 그칠 게 아니라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사모펀드에 은행의 경영권을 넘겨서는 안 되고 은행의 공공성을 확보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하고 은행에 사회적 책임을 강제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의 분위기는 전혀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수위는 금산분리를 완화해 사모펀드의 은행 소유를 제도적으로 허용할 계획이고 장기적으로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은 금융기관 최고경영자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금융을 기관이 아니라 산업으로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인수위는 또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민영화는 물론이고 여기에 예금보험공사와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우리은행과 대우증권 등을 묶어서 한꺼번에 매각한다는 계획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시가총액이 무려 80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금융지주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시가총액 76조원의 삼성전자보다 더 큰 규모다. 벌써부터 국민연금기금 등이 인수 주체로 나서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또는 이 모두를 포함한 산업은행지주회사의 매각은 자칫 제일은행이나 한미은행, 외환은행 등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얼마나 더 많은 은행이 팔려 나가야 깨닫게 될까. 외국 자본에 파느냐 국내 자본에 파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설픈 민족주의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은행을 소유할 자격이 없는 자본에 은행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외환은행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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