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종합주가지수가 이틀 연속 크게 폭락했다. 종합주가지수는 22일 한때 1600선이 무너지기도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턱걸이, 1609.02로 장을 마감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가가 크게 폭락했고 특히 그동안 미국 서브프라임과 무관하다고 여겨졌던 중국과 인도 주식시장의 하락폭이 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부랴부랴 기준 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했지만 주가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2일 현지 시간으로 뉴욕 주식시장 다우지수는 128포인트나 빠졌다.


23일 주식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펀드런의 가능성이다. 펀드런이란 펀드의 수익률 악화를 우려한 가입자들이 일시에 환매를 요청하는 현상을 말한다. 은행이 예금지급 불능 사태에 빠질 것을 우려해 가입자들이 일시에 예금 인출에 나서는 뱅크런에서 따온 말이다.

가뜩이나 세계적으로 주가가 급락하는 가운데 투자자들이 공황에 빠져들고 너도 나도 주식을 현금화하기 시작하면 추가 폭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한동안 침체국면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면서도 펀드 환매는 아직 이르다고 조언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쉽게 말하면 혼자 살겠다고 빠져 나가지 말라는 이야기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23일 주요 일간지에 게재한 의견 광고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미래에셋은 이 광고에서 “역사적으로 시장에는 언제나 시장 변동 요인이 존재했다”면서 “시장은 가끔 우리에게 실망을 주기도 하지만 이런 변동은 투자에 있어서 또 다른 기회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미래에셋은 “최근의 미국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도 마찬가지”라며 “당장은 세계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지금 이 위기는 길게 보면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미래에셋은 “순간의 시장 변화에 민감하기 보다는 세계 경제의 잠재력을 믿고 좀 더 길게 보시기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장기투자가 투자의 기본”이라는 미래에셋의 의견 광고는 물론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광고에는 그동안 공격적인 운용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던 미래에셋의 위기의식이 묻어난다.

주식투자의 기본 원칙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높은 수익을 얻으려면 그만큼 높은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위험 부담을 줄이려면 그만큼 기대 수익도 낮춰야 한다. 종합주가지수가 1300수준에서 가파르게 치고 올라 2000을 넘나들었던 지난 1년 미래에셋의 수익률은 단연 돋보였다. 물밀 듯이 자금이 몰려들었고 미래에셋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시장의 흐름을 주도했다.

미래에셋은 소수의 우량 종목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주가를 띄우는 전략을 썼다. 마케팅 능력도 뛰어났다. 시장에서는 미래에셋이 손만 대면 무조건 주가가 오른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다른 자산운용사들까지 미래에셋이 사는 종목을 따라 사는 경우도 많았다. 자금 쏠림이 심하다는 지적도 많았지만 이런 우려는 오히려 더욱 더 미래에셋에 힘을 실어줬다.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미래에셋이 사는 종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쉽게 내지 못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주가가 오를 때 수익을 내는 건 쉽다. 주식시장의 격언을 인용하자면 “밀물 때는 모든 배가 떠오른다”. 대세 상승국면에서 가뜩이나 미래에셋처럼 막대한 자금력과 시장 지배력을 동원, 물량 공세를 쏟아 부어 주가를 띄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세 하락국면에서 미래에셋은 덩치가 너무 커진 탓에 움직임이 둔할 수밖에 없다. 주식을 처분하고 현금 비중을 늘리기도 어렵고 종목을 갈아타기도 만만치 않다. 가뜩이나 설정규모 5조원에 육박하는 인사이트 펀드 같은 경우는 주식 편입비율이 90%를 웃돈다. 그만큼 시장의 등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미래에셋의 이번 광고는 다분히 이런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만약 펀드 가입자들이 환매를 시작하고 미래에셋이 주식을 내다팔기 시작하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지고 시장은 공황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미래에셋이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면 개인 투자자는 물론이고 기관 투자자들까지 투매가 이어지고 자칫 펀드런으로 확산돼 걷잡을 수 없이 주가가 폭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미래에셋의 위기는 곧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위기이기도 하다.

22일 문화일보와 23일 중앙일보에는 <그래도… 미래에셋은 산다>와 <미래에셋은 주식을 샀다>라는 거의 비슷한 기사가 연달아 실렸다. 문화일보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저가 메리트가 발생한 종목이 많은데다 최근 미래에셋이 운용하는 펀드의 수익률이 급감하자 이를 방어하는 성격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앙일보는 펀드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 “미래에셋이 외국인 매도 공세를 이겨낼 수 있느냐 여부는 결국 국내 투자자가 얼마나 미래에셋이라는 브랜드를 믿고 돈을 맡기느냐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는 <인사이트 펀드 주식 '올인' 급락불구 채권보다 매력>이라는 다소 뜬금없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한국경제는 “이번 증시 조정이 기업 펀더멘털 보다는 일시적인 수급 요인 때문에 일어났다고 판단한다”는 미래에셋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일시적인 수급 요인 때문이라 공급만 충분하면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철저하게 수급 논리에 의존하는 미래에셋 자산운용 철학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매일경제는 21일 <지수 급락한 지금이 오히려 투자 기회>라는 제목으로 박현주 미래에셋 그룹 회장의 인터뷰를 23면 전면에 걸쳐 실기도 했다. 언론 노출을 꺼리던 박 회장이 미묘한 시점에 추가 투자를 독려하고 나선 모습이 심상치 않다. 이를 두고 펀드런 사태를 우려한 박 회장이 의도적인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량 공세로 주가를 끌어올리고 높은 수익률을 내세워 새로운 가입자들을 끌어 모으는 미래에셋의 공격적인 투자와 마케팅이 세계적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가운데서도 먹혀들 것인가는 의문이다. 문제는 덩치가 너무 커진 탓에 미래에셋의 몰락이 자칫 우리나라 증시의 동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데 있다.

미래에셋의 딜레마는 사실 우리나라 주식시장과 주식 투자자들의 공통된 딜레마이기도 하다. 주가가 오를 거라는 기대만으로 자금이 밀려들고 실제로 주가가 오른다. 언론은 끊임없이 투기적 욕망을 부채질하고 자산 가격의 거품을 정당화한다. 문제는 주가는 펀더멘털을 반영하기 마련이고 거품은 언젠가는 꺼질 수밖에 없고 높은 수익만큼 위험도 감당해야 한다는데 있다.

재정경제부는 펀드런이 발생하면 환매조건부채권(RP) 등을 통해 유동성을 긴급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국민연금은 주식 투자를 1조원 이상 늘리겠다고 밝혔다. 주가가 필요 이상으로 빠졌고 저평가된 것이 분명하다면 세금을 쏟아부어서라도 주식을 사들여야 하는 것일까. 장기적으로 반등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나라 전체가 주식시장에 발목이 잡혀 있는 국면이다.

Similar Pos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