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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만의 경제위기… 한국만 안전지대?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가 “지난 60여년간 지속해 온 슈퍼 호황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소로스는 23일 블룸버그통신 등과 인터뷰에서 “최근 위기는 수십년간 지속돼 온 신용 팽창이 몰고 온 재앙”이라며 “이번 사태의 배후엔 시장은 마술을 부린다고 현혹해 온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있다”고 비난했다.


소로스는 또 파이낸셜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현재의 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4~10년 간격으로 찾아오는 위기와 비슷하지만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미국 달러를 기반으로 하는 신용 팽창 시대가 끝났다는 점에서는 명백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투자의 귀재라는 찬사와 투기꾼이라는 비난이 엇갈리지만 소로스의 발언이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쉽게 무시하기 어렵다.

주목할 부분은 이런 위기의식이 소로스 뿐만 아니라 시장의 불안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로스는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은 것은 시장이 아니라 당국의 개입이었다”고도 지적했다. “시장 참가자들이 각자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공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시장 근본주의의 위기”라는 소로스의 진단은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소로스 뿐만 아니라 다른 전문가들의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한 것은 최근의 위기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게다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언론의 보도는 미국의 위기가 우리와 아무런 상관없는 일인 것 같은 분위기다. 이명박 정부는 애초 7% 성장에서 조금 낮추긴 했지만 6% 성장을 공언하고 있고 보수·경제지들은 규제 완화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역설하고 있다. 기업들은 매출이 늘고 있고 주가는 곧 반등할 것이고 한반도 대운하도 곧 건설할 것이고 일자리도 늘어나고 경기도 살아날 것인데 도대체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국내 언론은 소로스의 발언을 비중있게 인용 보도하면서도 “중국과 인도 등 신흥 시장의 고속 성장으로 침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부연 설명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세계적인 동반 불황은 없다”는 이야기다. 해법 역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일부 언론은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고 경제지들은 여전히 주식시장의 반등을 점치고 있다.

동아일보는 25일 사설에서 “현 정부와 이 당선인 측이 합심해 국내적 불안 요소를 줄일 지혜를 짜내야 한다”면서 “금융 시장 뿐만 아니라 실물 부문도 다시 점검하고 각국의 금리 인하에 공조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또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는 정책은 더욱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배명복 논설위원은 좀 더 신중한 접근을 선택했다. 배 논설위원은 25일 칼럼에서 “(6~7%의 성장 공약이 기업을 옥죄고 있는 규제만 철폐하면 가능하다는데 과연 그럴까”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24일 사설에서 “이제 우리 한국은행도 금리 인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라고 본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우리 경제라고 세계 경제와 따로 놀 수 없다”면서 “어차피 한은은 물가 안정과 글로벌 금융불안·경기침체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예전처럼 부동산 값이 한참 오른 뒤에야 금리를 올렸던 치명적인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며 “금리를 조정할 때는 무엇보다도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일보도 15면 에서 “금리 인하 결행은 가뜩이나 불난 고물가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좀 더 직설적이다. 한겨레는 25일 사설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주가 하락을 걱정하거나 국민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겨레는 “국민에게 근거없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기 보다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겨레는 5면 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통제 되지 않은 투자 붐이 미국 주택시장의 금융 부실을 키웠다”며 “쉽게 갖다 쓰는 ‘이지 머니’가 주택 경기를 한창 띄웠다가 거품이 꺼지는 바람에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부담을 주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래에셋의 언론 플레이도 계속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라는 제목으로 E1면 전면에 걸쳐 박현주 미래에셋 금융그룹 회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그가 사면 뭔가 있다”거나 “참고 기다리면 성공할 것”이라는 등 다분히 선정적인 부제목을 내걸었다.

이 인터뷰에는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과 관련, 아무런 질문도 답변도 없다. 다만 박 회장은 “국민연금을 비롯해 연기금의 주식 매수 여력이 엄청나다”면서 “퇴직연금도 앞으로 5년 안에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고 “국내 투자자의 수준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주가가 떨어졌다고 한꺼번에 돈을 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질문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박 회장의 철학이 애초에 편향됐을 수도 있다. 이 인터뷰에는 펀더멘털이나 세계 금융시장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다만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에 주가가 오를 거라는 다분히 주식시장을 머니게임으로 보는 단편적인 시각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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