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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가 끝났다고? 슬로우뉴스를 보라.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11, 2013

블로그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슬로우뉴스를 보라고 말한다. 슬로우뉴스는 블로거들이 모여서 만든 대안 언론이다. 나도 편집진으로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슬로우뉴스는 원고를 쓰면 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달마다 회비를 내야 하는 이상한 조직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곳에서 만들어 내는 콘텐츠가 나름 괜찮다. 요즘처럼 언론이 욕을 많이 먹는 때는 웬만한 주류 언론 보다 낫다는 과분한 평가도 듣는다.

슬로우뉴스는 우선 속보 경쟁에서 자유롭다. 모든 언론이 다 쓰는 이슈 추종형 기사를 쓸 필요가 없다. 다만 한 번 더 뉴스를 뒤집어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훈련을 한다. 프로패셔널 기자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다. 나름 글깨나 쓴다는 블로거들이 모인 데다 그 와중에 억지 춘향으로 편집장 역할을 맡게 된 민노씨의 마당발 덕분에 꽤나 풍성하고 깊이가 있는 콘텐츠들을 뽑아낸다.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우선은 재미있기 때문이고 노력을 들일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조금이나마 우리가 쓰는 글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더 솔직하고 직접적인 이유는 이곳에서 충분히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독자들이 최고의 유인이고 동력이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애초에 블로깅이라는 게 얄팍한 권력욕에서 비롯했거나 지난한 인정투쟁의 과정일 수도 있다. 슬로우뉴스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였다. 글 쓰기 좋아하고 어울리기 좋아하고 오지랖깨나 넓은 사람들, 기꺼이 비주류를 선택하고 그러면서도 자존감과 자부심을 잃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블로거라고 부른다. 블로그라는 게 한때 유행처럼 지나간 분위기지만 그런 사람들이 아직 남아서 블로깅을 하고 있다.

슬로우뉴스 내부에서도 창간하기 한참 전부터 여러 차례 블로그의 위기를 이야기한 적 있다. 다들 블로그 링크를 넘나들면서 알게 된 사이지만 정작 블로그를 소홀히 한 지 오래됐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즉각적인 반응이 오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들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할 이야기가 넘쳐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할 이야기가 있을 때는 어디엔가 끄적거려야 잠을 잘 수 있는 사람들이다.

슬로우뉴스는 팀 블로그처럼 출발했지만 이제는 독립 언론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쓰는 글이지만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좋은 글이 많다. 반응도 폭발적이어서 1000개 이상 ‘좋아요’가 달리는 경우도 있다. 슬로우뉴스는 이를 테면 블로그들의 느슨한 연대 같은 성격이다. 낱낱의 블로그도 훌륭했지만 모아놓으니 강력한 매체 파워를 갖게 된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 신문으로 등록하고 유한회사로 법인 등록까지 마쳤다.

버젓한 회사의 꼴을 갖췄지만 민노씨써머즈 등 슬로우뉴스 실무자들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활동비만 받고 일한다. 외부 필자들을 섭외하고 원고를 청탁하고 편집진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주도하는 게 이 두 사람이다. 써머즈는 시스템 관리까지 맡는다. 최근에는 외부 기고에 약간의 원고료를 주고 있지만 슬로우뉴스를 움직이는 동력은 여러 블로거들의 선의와 기여다. 슬로우뉴스가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새삼스럽게 놀라는 것은 강호에는 고수가 많고 드러나지 않은 실력 있는 숨은 블로거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글을 잘 쓰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관점과 주장이고 아이디어다. 메시지만 명확하면 글은 읽히게 돼 있다. 팩트의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팩트는 넘쳐난다. 오히려 뉴스가 넘쳐나서 문제다. 여러 팩트를 종과 횡으로 엮고 현상의 표피를 관통해 핵심을 짚어내는 작업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블로거 아거는 블로그+저널리즘이라는 어딘가 잡탕스러운 개념을 거부하고 블로기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 적 있다. 민노씨의 해석에 따르면 블로기즘은 전통적 저널리즘의 불편부당이라는 객관성의 신화 그 반대편에서 그것을 극복하거나 혹은 거기에 저항할 수 있는 에너지와 가능성을 갖는 어떤 글쓰기를 말한다. 실제로 블로고스피어에는 주류 언론의 시공간 구조를 넘어서는 멋진 글쓰기를 하는 보석 같은 블로거들이 너무나도 많다.

블로그는 진화하고 분화하고 있다. 10여년 전, 초창기 파워 블로거라고 불렸던 블로거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라졌거나 어딘가 빛이 바랜 모습이지만 블로고스피어의 외형은 훨씬 넓어졌다. 그리고 더욱 강력해졌다. 콘텐츠만 충실하다면 충분한 트래픽과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소셜 네트워크는 블로그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 새로운 유통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블로그하기 좋은 때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유용원은 조선닷컴 트래픽의 3분의 1 이상을 끌어온다고 한다. 최병성은 쓰레기 시멘트를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렸다. 선대인은 블로그를 키워서 연구소를 만들었고 김종배는 블로그 토씨를 키워 이털남이라는 브랜드로 팟캐스트를 하고 있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윤창중은 블로그로 청와대 대변인까지 올라갔다. 한윤형은 미디어스 기자가 돼서도 블로그 같은 글을 쓰고 있고 캡콜드김우재 등은 주류 언론에서 칼럼니스트로 모셔가기도 할 정도다.

미디어몽구는 요즘 한참 뜨는 뉴스타파로 옮겨갔다. 뉴스타파야말로 블로기즘의 원칙에 충실한 대안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로그 기반의 블로터닷넷은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텍스트큐브(태터툴즈) 기반 블로그 커뮤니티로 출발했던 티앤엠미디어에서 만든 벤처스퀘어는 벤처 업계 허브 사이트로 자리잡았다. 슬로우뉴스에서 갈라져 나온 ㅍㅍㅅㅅ는 전성기 딴지일보의 잉여력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에 사는 안치용은 탐사 블로거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BBK 사건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밀 문건 등 수많은 특종을 터뜨렸다. 아이엠피터는 많지 않은 전업 블로거 가운데 하나인데 제주도에 살면서 날카로운 정치 평론을 쓴다. 그가 글을 쓸 때마다 수많은 RT와 ‘좋아요’가 날아다닌다. 아마추어 만화가들의 웹툰을 올리곤 하던 레진닷컴은 아예 전면 유료화를 선언,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언젠가 블로그로 떼돈을 버는 블로거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이퍼텍스트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김익현은 해외 정보기술 큐레이션 서비스를 월 3300원에 서비스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1년이면 4만원, 유료회원 1만명을 모으면 연봉 4억원이 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뉴스타파는 후원금이 월 3억원에 육박하고 프레시안은 협동조합 모델로 전환해 광고 의존적 수익모델을 벗어나겠다고 선언했다.

분명한 것은 과거처럼 자전거까지 끼워주면서 신문을 찍어서 뿌리고 여론을 쥐락펴락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런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류 언론의 영향력이 한동안 지속되겠지만 공짜 콘텐츠에 광고를 끼워 파는 주류 언론의 핵심 수익 모델이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다. 독자들은 얼마든지 좋은 콘텐츠에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지만 수익 모델의 한계가 콘텐츠의 한계를 만든다. 큰 덩치를 유지하려면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정환닷컴이라는 블로그를 13년째 운영하고 있다. 자기소개를 할 때면 우스갯소리로 직업은 블로거고 부업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글 쓰는 일을 부업으로 삼고 있지만 나는 본업이나 부업이나 블로깅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생을 불의에 맞서면서 공부하고 글 쓰고 소통하는 블로거로 살 생각이다. 이정환닷컴은 내 정체성이고 사고의 흐름이고 사상의 데이터베이스다.

주류 언론의 몰락이 블로기즘에는 기회가 될 거라고 본다. 슬로우뉴스를 보라. 원고료도 주지 않는데 슬로우뉴스에 글을 싣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필자들이 많다. 수많은 독자들의 링크와 추천이 슬로우뉴스의 영향력을 만든다. 자본에 빌붙지 않아도, 포털에 트래픽을 구걸하지 않아도 오로지 메시지만으로 독자들을 끌어 모으고 감동을 주고 강한 울림을 만든다. 블로기즘이 기존의 전통적인 저널리즘과 차별화된 미디어로서 의미를 갖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굳이 블로그라는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텍스트큐브든, 워드프레스든, 드루팔이든, 심지어 네이버 블로그든,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채울 것이냐다. 판단하고 발언할 것, 그게 블로거의 최선의 덕목이다. 그걸 담아내는 틀은 블로그가 될 수도 있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또는 팟캐스트나 1인 출판 같은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당신의 작은 아이디어가 당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사회적 합의의 인사이트가 될 수 있다.

월간 웹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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