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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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과제로 쓴 서평.
미래는 오지 않는다 / 전치형 홍성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꿈을 깨라.
미래 설계는 정치의 영역, 미래는 ‘만드는’ 것.

인공지능 컴퓨터가 바둑을 제패했지만 아직도 우리는 비가 오면 우산을 펼쳐드는 것 외에 비를 피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없다. 공상과학의 무대가 됐던 2020년이 며칠 안 남았지만 우리가 상상했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등장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한동안 어려울 것이다. 광선 검이나 레이저 건도 없다. 홍역은 사라졌지만 인류는 아직 그 흔한 감기 백신도 만들지 못했다.

대서양을 가로질러 영국과 미국을 세 시간 만에 주파했던 콩코드는 시장에서 퇴출됐고 스티브 잡스가 “PC보다 더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치켜세웠던 세그웨이는 유원지에서나 볼 수 있다. 정지위성 55개를 띄워 지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다던 이리듐 프로젝트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우주의 고철덩이로 전락했다. 천하의 구글은 프로 9단 이세돌을 무너뜨렸지만 야심차게 내놓았던 구글 글래스는 결국 포기했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이 책의 제목은 사실 ‘당신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게 그만큼 어렵지만 때로는 허무맹랑한 상상력이 실제로 미래를 견인하거나 예정된 미래를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예측 보다 더 중요한 게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하고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제안을 담은 제목이다.

과학자들은 ‘설명’을 할 수 있으면 ‘예측’도 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곤 한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내놓으면서 태양 뒤쪽의 별빛이 휘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별빛이 휘어진다는 사실이 관측됐다. 그러나 이건 예측이라기 보다는 가설과 검증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만유인력의 법칙 덕분에 사과가 떨어지는 속도를 계산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예측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의 상식과 달리 과학은 예측의 학문이 아니다.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의 핵심은 입증이 아니라 반증”이고 “과학은 이미 반증된 것이거나 반증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많은 반증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과학은 상대적으로 더욱 굳건할 거라는 이야기다. 포퍼에 따르면 새로운 지식은 과거의 지식이 반증되면서 나오는데 어떤 반증이 가능한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포퍼가 미래 예측을 사이비 과학이라고 불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책의 저자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과학보다는 SF(과학 소설)에 가깝고 사회과학보다는 인문학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지나온 과거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복잡한 세상을 상상력을 사용해서 관통해야 하고 여러 가능성과 제약에 대해 비판적이고 성찰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단순히 미래를 전망하고 적중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찾고 대응하는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고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유전자 치료 기술로 수명이 늘어날 거라는 등의 예측은 시기의 문제일 뿐 가깝거나 먼 미래에 가능할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전망은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기술은 이미 가까이 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발전하면 사회도 진보한다는 기술결정론적 믿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방향을 성찰하고 회의하고 현재의 관점에서 미래를 계속해서 다시 구성하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마냥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될 수도 있고 편견과 차별이 확대될 수도 있다. 암이 정복되고 유전자 치료로 젊음을 되돌릴 수 있게 돼 평균 수명이 200살까지 늘어난다면 마냥 행복할 일일까. 당장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고 알고리즘이 단순 업무를 대체하면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벌써부터 데이터 세금과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중립적일 수 없다. 그것 자체로 담론이고 정치와 권력의 영역일 수도 있다. 앨런 케이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발명(invent)하는 것”이라고 했다. 피터 드러커도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만드는(create) 것”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건 “과학과 기술에 대한 기대와 약속, 희망을 투기의 거품 속에 방치하지 말고 공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소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을 감시와 비판의 대상으로 끌어올리고 예측의 영역에서 토론과 논쟁의 영역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기술의 지배와 부의 집중, 노동의 소외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시스템 리스크가 될 것이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넨 빨간 약과 파란 약처럼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이고 결국 나의 몫이다.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미래를 만드는 것이고 미래를 발명하는 것이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미래는 예측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본과 권력의 산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술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것도 환상이다. 특이점(singularity)는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전망하고 설계하고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절실하게 원하는 미래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자유다. 다만 누군가는 단순히 상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상상을 현실로 밀어붙인다. 미래는 한가롭게 꿈꾸는 자의 것이 아니라 강력한 동기를 갖고 미래를 만드는 자의 것이다. 그들이 만드는 미래는 모두가 꿈꾸는 미래가 아닐 수도 있고 애초에 그런 미래는 가능하지도 않다. 그래서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각각의 과제다. 철저하게 권력의 문제고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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